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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노블레스 오블리주, ‘지공거사’도 해당하나요?

기자
한익종 사진 한익종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64)

로댕작 칼레의 시민. 14세기 영불전쟁 당시 처형의 자청으로 칼레시민들의 생명을 구한 6인의 시민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상징이 됐다.

로댕작 칼레의 시민. 14세기 영불전쟁 당시 처형의 자청으로 칼레시민들의 생명을 구한 6인의 시민을 기리기 위해 만든 작품. 노블레스 오블리쥬의 상징이 됐다.

 
요즘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가치가 그리워지는 시대도 없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그 단어 자체만으로도 풍기는 격이 달라서인지 점점 보기가 힘들어지는 듯하다. 주지하다시피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사회 고위층 인사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로 해석되는데, 쉽게 얘기하자면 ‘누리려면 그에 맞는 의무를 다하라’다. 

 
고대 로마 시대에서부터 유래된 이 가치는 전쟁이 났을 때 맨 먼저 왕족이나 귀족이 앞장서 전장에 나간 데서 시작됐다. 14세기 영불전쟁 당시 전쟁에 패한 칼레시의 전 시민을 구하기 위해 6명의 고위층이 단두대에 서겠다고 자청하기도 했다. 그 이후 평화 시에는 가진 사람이 못 가진, 미천한 사람에게 베푸는 시혜 행위를 통칭하면서 고위층 인사의 솔선수범을 칭송하는 단어로 사용됐고 서구권 국가의 보편적 가치로 이어져 선진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가진 자가 더 가지려고 못 가진 사람 것을 빼앗는 파렴치한 행위가 이어지고, 고위층이 자녀를 위해 온갖 편법과 비리를 저지르며 이를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행태를 보면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커녕 일반 국민이 지켜야 할 도덕과 규율을 앞장서서 무너뜨리는 듯하다.

 
귀족은 귀족답게 처신하고 귀족의 지위는 의무를 동반한다는 이 명제는 그렇다면 옛 사전 속에서나 찾아봐야 할 단어인가? 그렇지 않다.

 
중세 봉건사회 이후 시민의식의 향상과 교육의 발달, 산업화를 통한 경제적 여유의 공유는 현대에 이르러 계급 없는 사회를 가능케 했다. 이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노블레스가 계급과 가진 것에 따른 명칭이라기보다는 그 사람이 갖춘 도덕률과 품격을 가리키니 누구든 노블레스가 될 수 있고 그에 따라 누구든 오블리주를 갖추어야 하는 세상이다. 그러기에 누구든 지켜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기본적으로 사회의 보편타당한 규범을 준수하고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지될 수 있는 가치가 됐다는 얘기다. 또한 그런 태도를 모든 사회구성원이 가질 때 비로소 건전한 사회, 국가로서 지속발전 가능한 모델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젊은이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경험과 지혜로움을 갖춘 인생 후반부를 살아가는 사람의 행동은 후손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이상하다. 나는 가진 것도 별로 없고, 사회적 지위도 낮은 것 같고, 학식도 높지 않은 데 내가 어떻게 노블레스가 되고 내가 어떻게 오블리주를 행하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노블레스가 되는 방법과 오블리주를 행하기는 의외로 쉽다.

 
얼마 전 아직도 대기업의 고위층으로 재직하고 있으며 재산도 꽤 돼 남에게 베풀 위치에 있는 선배가 SNS에 65세가 되어 지하철 무임승차카드를 발급받은 기념으로 천안, 춘천 등으로 여행 한번 다녀오겠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올린 얘기지만 기분이 썩 즐겁지 않았다. 노인의 장거리 무임승차로 인해 젊은이가 통학과 출퇴근에 불편을 겪고, 무임승차가 지하철공사의 만성적자 운영 원인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리를 공익을 위해, 아니면 다른 이들을 위해 사양하는 것도, 자신의 편리를 유보하고 젊은이의 편의를 도모하는 것도 다른 의미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한라산을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에 등산로 옆 휴식 데크에서 한바탕 간식 타임을 갖는 한 무리의 중·노년을 보았다. 플라스틱 물병에 소주를 넣어 마시는 게 분명하다. (물을 조그마한 플라스틱 잔에 마시며 마신 후 인상 찡그리는 사람이 어디 있나?) 거기까지는 모른 척하려 했었다. 그런데 구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닌가? 도저히 묵과하고 넘어갈 수 없어 한마디 했다. “아니 국립공원 안에서 담배를 피우면 어떻게 합니까?”
 
한라산을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에 등산로 옆 휴식 데크에서 한바탕 간식 타임을 갖는 한 무리의 중·노년을 보았다. 플라스틱 물병에 소주를 넣어 마시는 게 분명하다.[사진 pixabay]

한라산을 올랐다가 하산하는 길에 등산로 옆 휴식 데크에서 한바탕 간식 타임을 갖는 한 무리의 중·노년을 보았다. 플라스틱 물병에 소주를 넣어 마시는 게 분명하다.[사진 pixabay]

 
경고한 후 그 일행을 스쳐 내려오는데 여러 생각에 발걸음이 무겁다. 국립공원 무료입장 조치가 대표적인 포플리즘 정책의 결과이고 그 포플리즘은 필연적으로 선의의 제3자에게 피해를 준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기본 정신은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다. 그만한 대우를 받으려면 그만한 역할과 의무를 다하라 이다. 이는 민주주의의 기본 철학과도 상통한다. 수익자 따로 부담자 따로의 사회는 공산주의나 전제주의 사회에서나 있을 일이다. 포퓰리즘에 의해 장거리까지 지하철 노인 무료승차증을 발급한 것이나 국립공원에 가지도 않는 국민의 세금으로 무료 입산정책을 펴는 거나 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을 해치는 일이다. 무료 입산의 국립공원에서 돈을 내고 입산하겠다고 우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포퓰리즘 정책의 폐단이지만 기왕 마련된 상황에서 자신의 노블레스를 지킬 수 있는 쉬운 방법은 무엇인가? 규범과 법규를 준수하는 솔선수범을 후손에게 보이는 일이며 타인을 위해 자신에게 부여된 권익을 시급하지 않으면 유보하는 것이다.
 
고대 로마를 세계의 맹주로 자리매김한 귀족, 왕족의 희생과 14세기 백년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칼레 시민의 몰살을 막은 생 피에르와 5인의 처형 자청, 1,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을 승전국의 반열에 오르게 한 이튼스쿨 출신의 참전을 따르자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노블레스는 누구나가 될 수 있고, 아니 누구나 됐고, 그에 따르는 오블리주는 누구나가 행해야 할 가치가 됐다. 베풂과 공헌이 과거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형이었다면 오늘날엔 가치의 준수와 겸양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 될 수 있다. 기부와 봉사와 기여가 적극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면 도덕의 준수와 사양지심을 통해 급하지도 않은 자신의 이익을 유보하는 것, 이것이 소극적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인생 후반부의 삶은 노블레스를 지키며 오블리주를 행하는 삶이 돼야 한다.
 
푸르메재단 기획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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