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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계산하겠다”…다시 도진 김여정의 대남 히스테리

김여정은 왜 강경화를 타깃으로 삼았나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참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을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보좌하고 있다. 김여정은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의전 등을 챙겼지만, 최근들어 대남·대미 현안 등 통치활동 관여 폭을 넓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 참가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왼쪽)을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보좌하고 있다. 김여정은 김정은의 최측근으로 의전 등을 챙겼지만, 최근들어 대남·대미 현안 등 통치활동 관여 폭을 넓히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갈 데까지 가보자”고 역정 내던 그녀가 꼬리를 내린 건 오빠의 만류 때문이었다. 180억원 짜리 건물 하나를 백주에 폭파하고 나서야 남매의 직성이 풀린 것이다. 한동안 잠잠하던 그녀의 화병이 반년 만에 도졌다. 이번엔 말꼬리를 잡아 “두고두고 기억하겠다. 계산하겠다”며 목청을 높였다. 거친 말을 다시 쏟아내는 심사를 도무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 아무튼 2020년을 이대로 보내기는 싫다는 몽니 꾼의 기질은 여전해 보이니 걱정이 앞선다. 거친 발언과 돌출 행동을 해온 전력을 찬찬히 살펴보면 더욱 그렇다. 북한 국무위원장 김정은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얘기다.
  

미 향한 불만 문 정부에 화풀이
김여정 대남 비방 선봉에 설까
대북전단 금지법 공들인 문 정부
북한은 ‘반동 사상 배격법’ 제정

김여정이 이번에 발끈한 건 북한 코로나19 실태에 의구심을 보인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발언 때문이다. 지난 5일 바레인에서 열린 한 국제세미나 연설에서 “북한이 우리의 코로나19 대응 지원 제안에 반응하지 않고 있다”고 김정은 체제의 방역 대처에 문제를 지적한 걸 빌미 삼았다. 김여정은 어제 관영 선전 매체로 발표한 담화에서 “남조선 외교부 장관 강경화가 중동 행각 중에 우리의 비상방역 조치들에 대하여 주제넘은 평을 하며 내뱉은 말들을 보도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었다”며 운을 뗐다. 그러면서 “앞뒤 계산도 없이 망언을 쏟는 것을 보면 얼어붙은 북남관계에 더더욱 스산한 냉기를 불어오고 싶어 몸살을 앓는 모양”이라고 비난했다.
 
강 장관의 발언은 좀 생뚱맞은 측면이 있다. 김정은 정권이 코로나19에 고립적 태도를 보인 걸 두고 “북한을 더 북한답게 만들고 있다”고 비꼰 것이다.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면서 북한이 방역에 집중하는 데 문제가 있다면서 “이건 좀 이상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문재인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데 집중력을 발휘해 온 강 장관에겐 탈선이다. 그렇다 해도 김여정의 대응은 지나치게 민감해 보인다. 별로 주목받지도 못한 중동 순방 중의 발언을 끄집어냈다는 측면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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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이 단 네 문장짜리 비난 담화를 낸 배경이 짐작 간다. 그녀는 담화에서 강 장관의 발언을 겨냥해 “그 속심 빤히 들여다보인다”고 했지만, 정작 드러낸 건 자신의 속내다. 문재인 정부에 쌓인 울화를 토해내겠다는 포석이 깔려있을 공산이 크다. 지난해 2월 하노이 북·미 회담 결렬의 충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 가서 눈 흘기는’ 식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강경화 장관의 발언은 그저 기폭제일 뿐이다.
 
김정은·여정 남매에게는 꿈이 있었을 것이다. 2018년 4~5월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6월 열린 싱가포르 첫 북·미 정상회담은 두 사람을 부풀게 했다. 하지만 8개월 뒤 하노이에서의 만남은 김정은에게 굴욕을 줬다. 그 원통함을 미국에는 따지지 못하고 문 대통령과 한국 정부에 쏟아내려 했다.
 
그나마 미 대선 직전까지는 실낱같은 희망이라도 있었다. 지난 10월 김여정이 대미 특사로 워싱턴을 방문하는 깜짝쇼인 ‘옥토버 서프라이즈(October surprise)’가 거론된 건 그중 하나다. 하지만 조 바이든 후보자의 승리는 김정은과 여정 남매에게 당혹감과 암담함을 남겼다. 대선 결과에 대해 아직도 사실 보도조차 못 하며 침묵하는 북한의 모습은 이를 반영한다.
 
이런 미묘한 시기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세 관리에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양상이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은 부임하자마자 국회 정보위에 “김여정이 위임통치를 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건강이 좋지 않은 김정은이 스트레스 경감 차원에서 일부 업무를 분담하고 있다는 차분한 분석보다는 ‘위임통치’라는 자극적 용어를 택했다. “김여정이 후계자이자 2인자”라는 관측이 나오는 등 언론과 여론의 시선이 쏠린 건 당연했다. 김정은으로선 자신의 권력에 왈가왈부하는 모습으로 비쳤을 테고, 김여정에겐 오빠와 자신을 갈라치기를 하려는 ‘남조선의 오그랑수’로 읽혔을 수 있다.
 
김여정은 강 장관을 겨냥해 “정확히 들었으니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문재인 정부에 짐을 떠안긴 것이다. 앞서 지난 6월에는 문 대통령의 연설을 트집 잡아 “철면피한 감언이설을 듣자니 역스럽다”는 말까지 했다. 김여정이 이처럼 통제 불능의 상황을 보이는 건 든든한 뒷배인 오빠가 있기 때문이다. 또 무슨 저지레를 하든 이를 없던 일로 눈감아주거나 딱 부러진 대응조차 하지 못하는 문재인 정부가 우습게 보인 이유도 있다. 엄청난 국민 세금을 투입해 지은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폭파했지만 사과 요구나 배상, 재방 방지 약속 등을 요구했다는 얘길 듣지 못했다.
 
압권은 김여정의 말 한마디에 정부·여당이 대북 전단을 막는데 전력 질주하고 법제화까지 추진한다는 점이다. 선봉장 역할을 맡은 게 이른바 민주화 세력을 자칭하는 이 정권의 핵심 인사들이다. 암울했던 권위주의 정권에서 ‘독재 타도’와 ‘민주 수호’의 숭고한 뜻을 알린 대자보와 전단의 가치를 모를 리 없는 그들이다. 통일문제 씽크탱크를 자부해온 한 국책 연구기관은 박사들을 동원해 대북전단 금지를 위한 논리를 개발해 연구보고서라고 내놓았다. 친여성향의 교수·전문가 그룹은 “대북전단법은 ‘김여정 하명법’이 아니라 ‘국민 하명법’”이란 해괴한 논리까지 들고 나왔다.
 
‘김여정 하명법’이라는 야당과 일부 비판 세력의 주장은 과한 측면이 있다. 평양 당국과 문재인 정부가 ‘하명’을 주고받기할 정도의 소통이나 신뢰가 가능하다면 다행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심전심법’이나 ‘심기 챙기기 법률’ 정도가 적합하다. 청와대는 남북 정상 간의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며 그 증좌로 9월 문 대통령과 김정은 간의 친서를 뒤늦게 공개했다. 하지만 행간을 읽어낼 줄 아는 사람이라면 그건 상대와의 교감이라기보다는 안타까운 현실 확인과 자기 위로뿐이라는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북한은 지난 4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에서 ‘반동(反動) 사상·문화 배격법’을 제정했다. “반(反) 사회주의 사상문화의 유입·유포 행위를 철저히 막고 사상·정신·문화를 수호하기 위한 법”이란 게 북한 설명이란 점에서 주민의 사상의 자유를 억압할 악법임이 자명하다. 박물관의 유물이 된 줄 알았던 ‘반동’의 재림이다. 문재인 정부와 여당을 압박해 대북전단 금지법을 트랙에 올리더니 곧바로 또 하나의 갑옷을 입고 양수겸장으로 가겠다는 게 북한 태세다.  이런 상황에 눈감은 정부는 시시포스(Sisyphos) 왕이 울고 갈 대북 감싸기에 일로매진이다. 통일부 장관은 어제 “북한을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게 만드는 것은 대한민국을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하게 만드는 것과 직결된다”고 주장했다. 6건의 대북 코로나 방역물자 반출 승인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이를 모두 거부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가왕 나훈아의 독백처럼 ‘턱 빠지게 웃을 일’만 남게 될 듯하다.
 
코로나 3차 대유행에 긴장한 북, 백신 소식에는 침묵
북한 노동신문은 9일 평양 대동강변 미래과학자 거리에 위치한 기상수문국에서 방역활동을 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 노동신문은 9일 평양 대동강변 미래과학자 거리에 위치한 기상수문국에서 방역활동을 하는 주민들의 모습을 소개했다. [사진 노동신문]

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 상황을 거의 실시간으로 전하던 북한 매체들이 국제사회의 치료제와 백신 개발 소식에는 침묵하고 있다. 9일 자 노동신문에는 코로나19 관련 기사가 10건 실렸다. 북한 비상방역 활동의 성과를 강조하면서, 해외의 코로나 전파 실태를 자세히 다뤘지만 치료제·백신 얘기는 빠졌다.
 
북한은 지난 7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웹사이트 ‘미래’의 과학기술 성과 코너를 통해 코로나19 후보 왁찐(백신) 개발을 주장한 바 있다. 당시 동물 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면역성이 확인됐고 임상시험에 들어갔다고 발표했지만, 북한의 열약한 보건·의료 시스템에 비춰 체제 선전과 결속을 위한 ‘정치적 프로파간다’라는 지적이 있었다.
 
10월 내놓은 북한의 비상방역법은 감염병의 위험성과 전파 속도에 따라 1급·특급·초특급으로 분류해 상황에 따른 대응체계를 규정했다. 북한 당국은 코로나 청정국임을 강조하면서도 지난 2일 코로나 대응 단계를 최고 수위인 ‘초특급’으로 끌어올리며 방역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 세계가 코로나 19의 3차 대유행에 직면한 상황에서 북한 당국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정유석 한국수출입은행 북한·동북아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내년 1월 8차 당 대회 준비를 위한 80일 전투의 우선 사업으로 비상방역을 규정한 상황에서 방역의 고삐를 죄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이영종 통일북한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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