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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율 3%와 50% 정당 의석이 같다? 본회의 통과한 '상법 3%룰'이 이렇다

‘A민국’이라는 국가가 있다. 이 나라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평등. 국회 비례대표(의원)를 뽑을 때도 정당 투표 득표율이 3%만 넘으면 한 석씩 동등하게 준다. 선거에서 50%가 넘는 정당 지지율을 얻었던, 3%를 받았던 이 원칙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래서 단순 계산이지만, 50% 지지율을 가진 정당이라면 이를 쪼개서 3%짜리 정당 15개 이상으로 만드는 게 더 합리적이다.  
 

[현장에서]

‘A민국’은 물론 상상 속의 나라다. 일단 이건 대한민국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평등선거의 원칙’에 반한다. 평등 원칙에 따라 모든 유권자는 한 사람당 한 표를 행사한다. 또 유권자가 행사한 투표의 가치도 평등해야 한다. ‘지지율을 떠나 모든 정당에 동일한 비례의석’이란 식의 선거법 개정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유다. 참고로 현행 선거법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고 있다. 한 마디로 지역구 의석수와 정당 득표수가 많은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총 54석)을 더 많이 가져가는 구조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8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여당의 상임위원회 단독 의결 추진을 강력히 비판했다. 박 회장은 “기업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렇게까지 서둘러 규제를 통과시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니길 바라지만 강행될 경우 혹시라도 부작용이 생기거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이번에 의결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도 했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8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여당의 상임위원회 단독 의결 추진을 강력히 비판했다. 박 회장은 “기업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이렇게까지 서둘러 규제를 통과시켜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니길 바라지만 강행될 경우 혹시라도 부작용이 생기거나 예기치 못한 문제가 생기면 이번에 의결한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도 했다. 사진 대한상공회의소

일명 '기업규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중에서도 기업들이 가장 심하게 반대하는 상법 개정안의 ‘3% 룰’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A민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국회는 9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이같은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3% 룰의 핵심은 상장사의 감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 지배주주나 특수관계인이 가진 주식 중 3% 만큼만 인정하겠다는 거다. 대주주 지분이 50%든 60%든 이 중 3%만 인정한다는 게 핵심이다. 지지율 50% 정당이나, 3% 정당이 비례의석을 동일하게 가져가는 것과 유사하다. 그나마 재계의 반대가 워낙 거세자, 여당은 이를 조금 완화해 사외이사 중 감사위원을 선임할 때에 한해 최대 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을 개별적으로 3%씩 인정해주기로 했다. '둘이 합쳐 6%까진 인정해준다'는 의미다. 
 
개정안이 통과됨에 따라 대한민국은 기업 이사회에서 주주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전 세계 유일한 나라가 된다. 선거법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상법에선 가능해졌다. 지난 10월 말 현재 코스피 시총 대비 외국인 지분율은 35.8%다. 그나마 현행법상 외국인은 지분 5%를 넘길 때까지 이를 공시하지 않아도 된다. 기업으로선 누가 자기 회사 지분을 3% 넘게 가졌는지도 모른다. 헤지펀드나 해외 투기 자본 여럿이 지분을 3%씩을 쪼개 일을 도모할 수 있다. 이 경우 투기 자본이 선임한 감사위원 등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게 될 수 있다. 영업 기밀이나 핵심 기술 유출 우려마저 나오는 이유다.  
자료: e-나라지표

자료: e-나라지표

돈 안 되는 연구개발 투자, 가능할까? 
자(子)회사 이사의 잘못을 모(母)회사 소액주주들이 물을 수 있도록 한 '다중소송제도' 역시 상법 개정안에 담겨있다. 취지는 물론 소액주주 보호다.  
 
하지만, 다중소송제도가 도입되면 기업의 장기적인 투자나 연구·개발(R&D)을 어렵게 할 것이란 우려도 만만치 않다. 투자나 연구·개발은 원래 돈이 드는 작업이다. 오랜 세월 돈이 벌리지 않아도 밀어붙여야 하는데, 모회사의 주주가 이를 반대하면 이런 투자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개정안대로라면 뇌전증 신약 개발에 성공한 SK바이오팜 같은 회사는 앞으로 찾아보기 힘들어질 듯하다. 참고로 SK바이오팜은 2001년부터 수천억 원 단위의 연구개발 투자를 계속해 왔다. 2018년 투자금액만 1256억원이다.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성분명 세노바메이트)가 나온 건 투자가 시작된 지 20년 가까이 지난 2019년의 일이다. SK바이오팜의 현재 시가총액은 13조4307억원(8일 종가 기준)에 이르지만, 올해 들어 3분기까지 1860억원의 영업적자를 기록 중이다. 아직까진 '꿈만 먹는' 회사다. 모 회사(SK㈜) 지분을 단기 투자 중심의 외국계 헤지펀드가 다수 갖고 있다면 이런 유의 투자를 내버려 둘까.
 
법무부는 지난 6월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면서 “기업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하도록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불합리하거나 불명확한 법령을 정비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기업의 합리적인 지배구조’란 결국 주식을 누가 얼마큼 가지고 있는가를 기초로 한다. 그게 ‘주식회사 제도’의 기초이고 근간이다. 
 
경영 성과가 나빠 주가가 출렁이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 역시 대주주다.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자. 정부와 국회 다수당이 얼마의 표를 얻었든 간에 전체 권력의 3%만 인정하고, 책임은 100% 지라고 하면 참을 수 있겠나.  
 
이수기 산업1팀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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