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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경제위기에 '노조판 뉴딜' 내민 정부·여당

'노조가 움직이는 경영, 노조에 의한 경제, 노조를 위한 사업장'
 
9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에서 통과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을 비롯한 노조3법에 대한 압축형 평가다.
 
이 법을 적용하면 해고자와 실업자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해고된 사람이 해고한 회사를 상대로 임금·단체협상을 벌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정책 입안의 책임자 격인 고위공무원도 노조를 설립하거나 가입해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며 노동운동을 해도 된다. 6급 이하 공무원에게만 노조 가입을 허용하던 현행 공무원노조법 규정을 삭제했기 때문이다. 퇴직한 교원이나 공무원, 소방공무원에게도 노조 가입의 길을 열었다.
 
노조 전임자에게 사용자가 임금을 주지 못 하게 한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 규정도 삭제했다. 회삿돈을 받으며 회사를 상대로 투쟁하게 됐다는 의미다.
8일 오전 서울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다 관계자들의 제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전 서울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다 관계자들의 제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슈퍼 파워 가진 노조 vs 최소한의 대항권마저 잃은 경영계

한마디로 노조의 힘은 막강해진다. 그래서 경영계는 그동안 대항권을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특히 대체근로 허용을 강하게 요청했다. 정부도 그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에 대체근로는 빠졌다. 노조의 강한 반발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대신 '시설 점거 금지' '비종사자(해고자와 실업자)의 사업장 출입 제한' 등의 조항을 넣었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마저도 모조리 뺐다. 노동계가 이 조항을 문제 삼자 별다른 논의도 없이 정부 개정안에서 들어냈다. 총파업과 천막 투쟁, 기습 점거 투쟁 등 실력행사를 하는 아군을 끌어안은 모양새다.

"경영권 허수아비 됐다" 경영계 격앙…극한 투쟁 벌이던 노동계는 조용

노조3법이 이날 새벽 환경노동위원회에서 통과된 뒤 노사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경영계는 강하게 반발했다. 경제단체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잇따라 성명을 냈다. 그 어느 때보다 정부와 여당을 성토하는 수위가 높다. 격앙 그 자체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강한 유감' '일방적' '세계적 추세에 역행'이라는 단어를 구사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심각한 우려' '무력감과 좌절감' '세계 최하위 노사관계에 감당하기 힘든 기업 부담' 등으로 충격을 표현했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사실상 경영권을 잃었다. 경영권은 허수아비가 됐다"고도 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경총 노사관계발전자문위원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노사관계발전자문위원회를 통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논의했다. 뉴스1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포시즌스 호텔에서 열린 '경총 노사관계발전자문위원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날 노사관계발전자문위원회를 통해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등을 논의했다. 뉴스1

 
반면 노동계는 비교적 조용하다. 노조법 통과 이전에 점거농성과 기습 시위, 총파업으로 힘을 과시하던 노동계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뭇 달라졌다. 기껏해야 "단체협약 유효기간 연장 (현행 2년→3년) 조항이 폐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정도다. 더불어민주당은 이 조항을 '최대 3년'으로 바꿨다. 유효기간을 1년으로 하든 2년으로 하든 상관없다는 의미다. 사실상 노동계의 뜻을 반영했다.
 
경영계는 최소한의 방어권조차 상실했다. 사용자에게 사업장 시설관리권이 있지만 보장받지 못한다. 개정법에 따라 시설을 점거하면 막을 수 없어서다. 해고된 근로자가 노조원 신분으로 회사에 나와 사내에서 투쟁활동을 해도 제어할 방법이 없다.

'한국판 뉴딜'의 끝판왕이 '노조판 뉴딜'

특히 실업자의 노조가입은 대기업을 타깃으로 한 노조조직률 확대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삼성이나 현대차, SK 등을 타깃으로 삼아 실직 상태이거나 직장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해당 회사의 노조에 가입하고, 사업체 안에서 투쟁하며 자신들의 이익을 관철하려 들어도 별도리가 없다. 사실상 노조가 힘으로 산업현장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위기에 청와대가 내세운 '한국판 뉴딜'의 끝판왕이 결국은 '노조판 뉴딜'이었다"고 말했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이 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에서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화진 고용노동부 차관이 4일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법안심사소위에서 관계자와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조가 산업현장 규율하는 형국…노동부, 존재감 옅어져 자승자박

고용노동부의 위상도 추락했다. 노조법이 산업현장에 적용되면 굳이 노동부가 필요 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개정된 노조법이 사실상 노조가 산업현장을 규율토록 하는 토대 역할을 할 전망이다. 막강한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단체협상과 임금협상, 정치적 의견 피력 등을 통해 산업현장을 제어할 수 있는 형편이다. 대항권이 없는 기업은 경영의 주체가 아니라 들러리로 전락할 판이다. 이런 상황에선 노동부가 노조의 민원 해결 부처의 역할밖에 할 수 없다.
 
특히 노동부가 자초한, 자승자박의 형국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국회에서 개정안이 처리되는 과정에 노동부가 여당을 측면 지원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직장점거 규정 삭제나 비종사자 사업장 출입제한 조항 삭제 등에 모두 노동부가 동의했다"고 말했다. 노동부 관계자도 "부인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다른 노동부 관계자는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정된 노조법은 대등성과 균형성을 완전히 허물었다"며 "미래지향적 모멘텀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노동기본권은 보장하면서 불합리한 노사관계를 시정할 기회로 삼아야 했는데, 노조의 민원해결형 법체계로 흘렀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날 통과된 근로기준법은 주52시간제에 맞춰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현행 3개월에서 6개월로 확대했다. 연구개발(R&D) 업무에 한해 선택근로제의 정산 기간을 3개월로 확대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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