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미국과 연결돼야 경제 발전 가능
한국이 그랬듯 북한도 마찬가지
중국은 북한 성장 욕구 못 채워줘
김정은, 역사의 대전환 결단해야
북한의 밝은 미래는 중국에 있지 않다. 중국은 북한의 성장 욕구를 다 채워줄 수 없다. 북한의 성장을 원하겠지만 일인당 국민소득이 중국을 추월하는 것은 반기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북한을 자기의 영향력 내에서 관리하기 원하지만 잘살게 된 북한이 이에 순응할 가능성은 적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이 북한에 양질의 기술을 전수할 유인도 적다. 중국이 필요로 하는 북한 자원은 저렴한 노동력과 광물 정도다. 북한에 투자되는 중국 자본 대부분도 이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제재 이전 중국이 자국 소비를 목적으로 북한으로부터 수입한 것은 주로 광물, 어패류였다. 북한이 이런 재화만 수출한다면 빈곤의 함정을 벗어나기 어렵다.
최근의 연구 결과도 중국과의 교역이 북한의 장기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KDI의 김규철, 정연하, 한국은행의 이종민 박사가 독립적으로 수행한 세 편의 연구는 2000년대 후반부터 북한의 대중 수출액이 증가할수록 그 질은 오히려 하락했음을 보여준다. 지나친 광물 중심 수출과 높은 중국 의존도가 수출 고도화를 막았을 뿐 아니라 인적·물적 자본의 축적을 방해했고 산업 구조를 왜곡했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중국이 북한 제품을 수입한 가격은 타국의 동종 제품보다 30% 낮았다. 중국이 수입 독점력을 이용하여 단가를 후려친 것이 한 이유다.
북한도 이를 모르지 않는 듯하다. 중국이 북한의 발전 기회를 앗아가고 자국을 예속 경제로 만든다며 격정을 토하는 북한 관료와 무역일꾼 이야기가 종종 들린다. 오히려 한국과 일본에 수출했을 때는 중국보다 높은 단가를 받았고 수출품의 종류도 다양했었다. 개성공단에서 전자제품과 기계 부품 등 부가가치가 상대적으로 높은 재화를 생산했을 땐 북한 미래가 지금보다 훨씬 밝았다. 1960~70년대에 유행했던 종속이론이 다시 살아난다면 자본주의가 아니라 사회주의 국가 간의 무역 관계에 적용돼야 할 것 같다.
미국과 직접 연결될 기회는 여전히 살아있다. 전 세계가 비핵화 여부에 주목하는 이때가 북한 경제발전 및 외교 정상화의 최대 기회다. 특히 미국의 신정부가 들어서는 지금이 그 갈림길이다. 이 국면에서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한다면 제재는 더욱 강화되거나 최소한 지속될 것이다. 자력갱생을 외치며 버티는 것도 자해 행위다. 그럴수록 북한의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하는 미국은 북한 문제를 당분간 밀쳐놓으려 할 것이다. 그런 가운데 경제는 더 어려워지고 환율이 요동칠 수 있다.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통치력도 잃어버린다.
김정은은 결단해야 한다. 핵과 경제를 동시에 쥐고 장기 집권하겠다는 허황한 꿈을 버리고 핵을 내려놓고 경제를 택하는 길로 나와야 한다. 무엇보다 내년 8차 당 대회에서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에 진지하게 임할 것을 대내외에 천명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개혁·개방으로 북한 주민에게 번영의 기회를 줘야 한다. 이것이 미국과 직접 연결되는 통로다. 이 통로가 열리면 한국과도 상생할 수 있고, 중국과 선린을 유지하면서도 예속되지 않을 수 있다. 이와 반대의 길은 절벽을 향한다. 북한 발전의 마지막 기회를 잃어버릴 뿐 아니라 자신의 명운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김정은은 북한 어린이와 청년의 미래를 봐야 한다. 그들의 한껏 푸른 가능성을 계속 막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그들이 북한 경제 기적의 주역으로 힘차게 일어설 기회를 줄 것인가. 역사적 선택의 때가 다가오고 있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