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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살기는 좋다, 이러다 처진다는 불안만 없다면…”

중산층 공공임대 성공할 수 있을까

지난달 19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산층 주거안정 브리핑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대책에서 중산층을 위한 중형 공공임대 6만3000호 확보 방안을 밝혔다. [뉴스1]

지난달 19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산층 주거안정 브리핑을 마친 뒤 인사하고 있다. 정부는 이날 대책에서 중산층을 위한 중형 공공임대 6만3000호 확보 방안을 밝혔다. [뉴스1]

정부가 전세 시장 안정을 위해 꺼내 든 카드는 공공임대 확충이다. 11·19 전세 대책의 골자는 오는 2022년까지 11만4000가구의 공공임대주택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관심을 끈 것은 중산층이 살 수 있는 ‘질 좋은 평생주택’ 계획이다. 3~4인 가구가 선호하는 중형 공공임대(60~85㎡) 6만3000호를 2025년까지 확보하고, 이후에도 지속해서 확대한다는 방안이다. 입주 소득 요건을 완화하고, 품질도 높이기로 했다. 한마디로 가난한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공공임대의 오명을 벗고 중산층까지 아우르겠다는 구상이다.
 

정부 ‘질 좋은 평생주택’ 확대 계획
좌에선 “빈곤층 우선 원칙 흔들려”
우에선 “시장의 역할을 정부가 왜”
집 통한 재산 욕구 이길 수 있을까

A씨를 만난 이유는 그가 이미 이 취지와 비슷한 중산층 공공임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2007년 도입했던 장기전세주택(시프트)이다. 시프트는 정부가 전세 대책 중 하나인 공공전세와 거의 같은 개념이다. 전세금은 주변 시세의 80% 이하이며, 최장 20년까지 거주할 수 있다. 소형은 물론 중대형까지 포함해 중산층도 살 수 있도록 했다. 시프트는 2011년 8월 오 시장 퇴임 후 사업자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부담이 크다는 이유로 공급을 점차 줄여나가다 사실상 멈춘 상태다.
  
인근 민간 아파트 전세의 절반 가격
 
A씨가 사는 곳은 서울시내 SH 시프트의 전용면적 114㎡ 아파트다. 다자녀 우선 공급 적용을 받아 입주했다. 만나기 전 잠시 단지를 둘러봤다. ‘소셜 믹스’ 정책에 따라 공공임대와 분양분, 큰 평수와 작은 평수가 골고루 배치됐다. 관리 상태는 서울 시내 여느 단지와 다를 바 없었다. 서울 중심은 아니지만 비교적 교통도 좋고, 주변에 산과 공원이 있어 환경도 쾌적한 편이다.
 
사는 데는 만족하나.
“대체로 만족한다. 아이들과 함께 살기에 큰 부족함이 없다. 독일 유학 시절 살았던 사회주택(Sozial Wohnung)보다 나은 것 같다. 독일의 사회주택은 낡고, 방음도 제대로 안 됐다. 게다가 월세였다. 시프트는 전세라서 안정감이 더 있다.”
 
가장 장점이 뭔가.
"2년마다 이사 다니는 스트레스가 없어 좋다. 2년마다 재계약하는데, 인상 제한 폭이 5%다. 초기에 입주해 인근 단지 비슷한 평수의 민간 아파트 전세 시세의 절반 정도에 살고 있다. 시프트에 빈집이 생기면 새 입주자는 시세의 80% 정도에 계약한다고 들었다. 선호도가 높아 경쟁률이 높다.”
 
아쉬운 점은.
"전세 만기 후 주택 마련이 걱정이다. 주택 가격 급등으로 내 집 마련이 점점 멀어지는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있다. 조금씩 저축하고 있지만, 아파트값 상승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다자녀 가족의 경우 교육비와 생활비를 지출하면 저축할 수 있는 데 한계가 있다. 우리 같은 다자녀 중산층이 안정적인 주거를 할 수 있고, 저축을 통해 주택을 마련할 수 있는 대책이 나왔으면 좋겠다.”
 
재정 부담이 중산층 임대의 딜레마
 
변창흠

변창흠

재산 형성에 대한 불안감을 빼고 나면 중산층을 위한 공공임대는 사실 로또에 가깝다. 장기간 주변 시세보다 훨씬 낮은 비용으로 주거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프트 공급에 수십 대 1의 경쟁률이 몰렸던 이유다.
 
이런 개인의 행운은 공급자인 공공기관의 부담으로 직결된다.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SH 공사 사장으로 재임하면서 시프트에 부정적인 인식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변 후보자는 "시프트가 임대아파트치고 규모가 크고 임차료도 시세에 비해 지나치게 저렴하다”는 입장이었다. 변 사장 재임 당시 SH는 중대형 주택을 시작으로 시프트의 공급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정부가 구상하는 중산층 공공임대도 이런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기재부는 중산층용 공공임대 확대에 다소 부정적인 기류였다. 재정 부담 때문이다. 11·19 대책 발표 전 기재부는 공공임대에 중형을 포함하더라도 공급 물량은 최소한으로 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까지 ‘질 좋은 평생주택’에 관심을 표명한 마당에 기재부가 이를 거스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산층 임대 확대에 대해 좌우 양쪽에서 비판적 시각이 나온다. 왼쪽에서는 중산층 주거 안정에 쓸 돈을 취약층 주거 복지에 더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공공임대주택 공급확대 토론회’에서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문재인 정부 들어 공공임대주택 정책은 최저소득계층 우선이라는 공급원칙이 훼손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오른쪽에서는 시장에 맡겨야 할 기능을 정부에서 나서는 바람에 실패를 자초했다고 비판한다. 민간임대주택사업자의 역할을 축소하면서 그 공백을 시장 호응도가 낮은 공공임대로 메우려 한다는 것이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취약층 공공임대의 확충을 위해서라도 중산층 임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 교수는 "취약층 임대주택 확보 과정에서 마주치는 가장 큰 어려움은 주변 주민들의 거부감”이라며 "중산층 임대주택을 섞어 지으면 이런 거부감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 교수는 "공공임대는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임대료 등에서 중산층을 위한 과도한 혜택을 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변창흠의 ‘공공자가’ 실험, 성공할까
 
중산층 공공임대의 기본 철학은 주택 소유욕과 주거 안정 욕구를 분리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철학을 집약한 것이 ‘집은 사는(buy) 것이 아니라 사는(live) 곳’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여전히 집을 통한 재산 형성 욕구가 강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철학의 구현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변창흠 장관 후보자가 밀고 있는 ‘공공자가(公共自家)주택’은 이 두 가지 욕구의 절충이라고 볼 수 있다. 집을 개인에게 분양하되 소유권을 일부 제한해 소유욕과 공공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개념이다. 구체적인 방식은 환매조건부와 토지임대부 주택이다. 환매조건부 주택은 수분양자가 주택을 매각할 때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급자에 미리 협의된 가격으로 팔아 시세 차익을 줄이는 방식이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수분양자가 건물만 소유하고 토지는 임대받는 방식이다. 변 후보자는 3기 신도시에 이런 분양 방식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구상이 얼마나 실효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2007년 경기 군포 부곡지구에서 환매조건부 토지임대부 주택 합쳐 804채가 공급됐지만, 이 중 119채만 청약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집의 소유를 통해 자산 형성까지 노리는 개인의 욕구를 얼마나 억제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을 주거 수단으로뿐만 아니라 투자 대상으로도 본다”며 "시세 차익 등을 통해 재산을 형성하겠다는 욕구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주거 안정이라는 목표도 달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형 공공임대 실험의 흑역사 ‘프루이트 아이고’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공공 아파트 단지 프루이트 아이고가 폭파 해체되는 장면.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공공 아파트 단지 프루이트 아이고가 폭파 해체되는 장면.

1972년 3월 16일,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대단위 공공 아파트 ‘프루이트 아이고(Pruitt-Igoe)’의 해체 폭발음이 들렸다. 건축역사학자 찰스 젱크스는 이 폭발음을 "모더니즘 건축의 종말”이라고 평했다.
 
2차 대전 후 흑인 인구 유입으로 주거 문제가 심각해진 세인트루이스는 1954년 연방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아 시내 57에이커(약 7만평)의 땅에 11층 판상형 아파트 33동을 세웠다. 설계 책임자는 일본계 건축가 미노루 야마사키. "집은 인간이 사는 기계”라던 모더니즘 건축의 아버지 르 코르뷔지에의 실용주의 철학에 기반해 단지를 디자인했다.
 
미국 건축가협회상까지 받을 정도로 획기적 건축이었지만, 준공 20년도 안 돼 해체가 시작됐다. 초기 입주율이 90%까지 육박했으나 겨우 3년 만에 빈곤층 유입, 범죄 소굴화 등의 문제로 슬럼화가 진행됐다. 백인들이 떠난 자리는 흑인들로 채워졌고, 거주율이 낮아지면서 유지 관리가 허술해져 엘리베이터 대부분이 운행되지 않을 정도였다. 시 정부는 결국 4년에 걸쳐 단지를 해체하고, 그 자리를 공원으로 만들었다.
 
이후 프루이트 아이고는 공공 정책에 의한 도시 재건축 실패의 상징이 됐다. 미국이 공공임대주택 대신 주택 바우처와 같은 수요자 보조 정책으로 방향을 전환한 계기이기도 하다. 건축가 유현준 교수는 프루이트 아이고를 공공임대가 지닌 한계라고 본다. 유 교수는 "입주민들이 자기 집이라는 애착을 가질 수 없어 돈을 벌면 이곳을 떠날 생각만 가졌다”고 말했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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