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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실 백드롭만 만드는 당 아닌가요" 이게 국민의힘 현실

[외면받는 보수정당] ①가치상실 

 
요즘 정치권에선 단연 윤석열 검찰총장이 화두입니다. 여론조사에 따라 차기 대선후보 1위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꼭 1위가 아니더라도, 어느 여론조사를 막론하고 야권 잠룡들 중엔 가장 많은 지지를 받습니다. ‘윤석열의 부상’은 누가 봐도 문재인 정부의 위기입니다. 그렇지만 제1야당 국민의힘의 위기이기도 합니다. 현 정부에서 임명된 검찰총장이 야당의 존재를 지우다시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외면받는 보수정당①]

 
문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은 떨어지는데, 국민의힘 지지율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 1~3일 전국 18세 성인남녀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그 전주보다 2%포인트 낮아졌습니다.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p,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총선 패배 후 지금까지 국민의힘 지지율은 20% 박스권을 못 벗어나고 있습니다. 심지어 보수 성향 유권자들조차 국민의힘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응답자 가운데 스스로 보수 성향이라고 응답한 이들(22.8%) 중에서 국민의힘을 지지한다는 이들은 43%로 과반에 못 미쳤습니다. 한 마디로 ‘윤석열을 택할지언정, 국민의힘은 아니다’란 겁니다. 왜 이렇게 보수야당의 존재감이 희미해진 것일까요. 건전한 정당 정치를 위해선 능력있는 제1야당의 재건이 필수적입니다.
 
중앙일보는 보수야당이 처한 현실을 ①가치상실 ②세대고립 ③지역고립 ④인재고립 ⑤계급고립의 5개 분야로 나눠 하나씩 짚어볼 예정입니다.
국민의힘 당사. 오종택 기자

국민의힘 당사. 오종택 기자

 
대한민국 제1야당의 최우선 정책 순위가 뭐냐고 묻자 모른다는 대답이 가장 많았다. 이화여대 재학생 102명에게 ‘국민의힘이 최우선으로 추구하고 있는 가치ㆍ정책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어본 결과다. 부정적 반응보단 “모르겠다”(34명)는 반응이 압도적이었다. 악플보다 무섭다는 무플에 가깝다. 대화체로 재구성한 그들의 생각.
 
A(경영학부)=“그런 거 없는 듯. 그냥 민주당 막기에 급급해 보여요. 분명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을텐데…당 지도부 회의할 때 뒤에 거는 배경 문구를 제일 열심히 만드는 것 같아요. 정작 내세우는 정책은 뚜렷하지 않아요. 최우선으로 추구하고 있는 가치ㆍ정책이 있는지 의문.”
 
B(정치외교학과)=“대안이 너무 부실해요.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려면 주택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는 초딩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원론적인 얘기만 하지말고 제대로 된 대안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C(사회학과)=“거대 여당 아래서 103석은 힘조차 느껴지지 않아서… 현재로선 ‘일단 살아남자. 민주당이 국회를 장악한 마당에 뭘 할 수 있겠나’는 생각만 하는 것 같아요. 그들의 목표는 생존.”
 
D(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특정 가치를 추구하는 것 보단 현정부 비판이 최우선 아닌가요. 저는 여당의 빈틈을 노려 보수정당 중심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려는 걸로 봐요. 문제는 알맹이가 없다는 거죠. 현재로서 추구하는 가치는 반문재인, 친재벌, 기득권 지키기, 대북강경정책, 틀딱이미지 벗기….”
 
20대 이대생이 바라본 보수정당.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20대 이대생이 바라본 보수정당.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국민의힘 내부에선 “정체 불명이란 비판을 스스로 자초한 측면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유한국당은 2017년 출범과 동시에 정강정책에서 박 전 대통령을 연상케 하는 ‘국민행복’과 ‘창조’ 등을 삭제하고 7가지 핵심가치를 내세웠다.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이 우선 순위에 올랐다. 그러나 총선을 앞둔 2월 미래통합당을 출범시킬 땐 ‘삶의 질 선진화’를 필두로 경제 이슈로 우선 순위가 이동했다.
 
김종인 비대위원장 체제에서 당의 기본정책은 더 크게 달라졌다. 김 위원장은 6월 취임후 첫 당 경제혁신특위 회의에 참석해 “사회적 약자를 어떻게 지금의 현상보다 나은 위치로 옮겨놓을 것이냐, 이것이 지상 목표”라고 했다. 그의 말처럼 ‘모두에게 열린 기회의 나라’ ‘경제 혁신’ ‘약자와의 동행’ ‘경제민주화’ 등의 문구가 전면에 배치됐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리더십 교체기마다 당 핵심가치가 달라지면 당이 정신적으로 공중분해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제시한 대안이 제대로 대안으로 인정받고 있냐”고 반문했다.
 
국민의힘이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것에 대해 민주당에서도 냉소 어린 시선이 적지 않다. 민주당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박근혜 이후 유권자와 소속 의원의 제대로 된 지지를 받는 리더십이 없다. 김종인 위원장도 능력은 있는 사람이지만 보수정당에 로열티와 정통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지 않느냐”며 “리더십이 없기 때문에 결국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관된 가치와 그에 기반한 리더십이 없다 보니 ‘반대’에 방점을 찍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대를 위한 반대만 일삼는다”는 비판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나온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정치 투쟁에 몰두하기 보다 정확한 데이터로 구체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현재 국민의힘은 전략 기획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것 같다”며 “그러니 국민 입장에선 민주당이 아무리 못해도 국민의힘을 찍는다고 나아질 거란 확신이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탄핵’ 후 주저앉은 보수정당 지지율.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박근혜 탄핵’ 후 주저앉은 보수정당 지지율.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더욱이 최근에는 ‘여당 vs 제1야당’의 지지율 싸움이 동반 상승·하락 추세를 보이는 경우가 잦다. 11월 2주차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율이 전주 대비 1.9%포인트 하락할 때 국민의힘 역시 0.7%포인트 동반하락했다. 9월 4주차 같은 조사에서도 민주당(34.6%→34.0%), 국민의힘(29.3%→28.2%) 지지율이 함께 떨어졌다. 정영태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인 취향이 예전보다 존중되면서 고정적으로 정파성·당파성이 고정되지 않고 사안에 따라 표류하는 층이 늘어났다. 예전에는 여당 아니면 제1야당을 선택하는 이분법적 경향이 강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결국 대안으로 비전을 인정 받아야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비호감의 벽’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폭죽을 쏘아올리며 파면을 축하했고,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탄핵 무효를 외쳤다. 오종택·조문규 기자

2017년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폭죽을 쏘아올리며 파면을 축하했고, 태극기집회 참가자들은 탄핵 무효를 외쳤다. 오종택·조문규 기자

 
높은 비호감도 역시 국민의힘을 대안 세력으로 인정받지 못하게 하는 큰 장애물이다. “너무 높은 비호감도가 오래 누적돼 국민이 대안으로 보지 않는다. 메시지를 떠나 메신저의 신뢰도가 떨어져있어 어떤 말을 해도 듣지를 않는다”(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비호감도는 한국갤럽의 9월 넷째주 여론조사에서 60%를 기록했다. 3개월 전에 비해 9%포인트 낮아지긴 했지만, 지난해 10월 조국 사태 때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 비호감도 62%와 큰 차이가 없다.
 
보수 유권자도 외면하는 보수정당.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보수 유권자도 외면하는 보수정당.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비호감도를 낮추기 위해선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입장 정리가 선결 과제란 주장이 나온다. 탄핵 이후 떨어져 나간 보수정당 전성기의 40% 가량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복원하는 데서 비호감도 낮추기를 시작하자는 것이다. 한국리서치가 4월 총선 직후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은 과거 새누리당 지지층의 62.9%(잔류보수)밖에 복원하지 못했고, 37.1%는 민주당 지지층에 편입되거나 무당파로 이탈(이탈보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를 진행했던 정한울 한국리서치 전문위원은 “정책적 요인이 아니라 박 전 대통령 탄핵에 대한 보수정당의 태도 때문에 보수가 균열한 것”이라며 “딜레마적 상황이다. 경제 이슈에 대해 유능하다는 과거 이미지도 많이 사라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정희 고도성장시대,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패러다임이 세계화, 탈이념화 등으로 전환됐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며 “기존 보수가 집중하지 않았던 양극화 등에 대해 고민하고 새로운 해법을 보여줘야 회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보수정당이 제시해야 할 비전ㆍ담론’에 대해 다시 이대생 102명에게 물었다. 냉소적인 시선도 적지 않았지만 “탈이념ㆍ실용적 경제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취지의 주문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경제정책’(9명) ‘탈이념ㆍ실용’(8명) ‘시장 존중’(7명) ‘부동산 정책’(4명), ‘자유민주주의’(3명) 등의 순서였다.

 
A(국제학부)=“진정성부터 가져라. 뭘 하든 쇼로 보이는 게 문제다.”
 
B(국어국문학과)=“진보와 보수 프레임을 버리고 실용정책에 집중해달라. 20대는 이념에 더 이상 의미를 두지 않는 세대다. 2020년에 ‘보수의 희생’을 논하다니…호텔개조와 같은 대책을 말로만 제압하지 말고 실용적 정책으로 제압해달라. 부디 보수의 도그마에 빠지지 말고 어느 정도는 시대변화에 발맞춰 나가야 한다. 지금이 80~90년대는 아니지 않은가.”
 
C(사회학과)=“일단은 시장경제가 제대로 돌아가도록 하는 정책을 내놓으라. 대신 인권 감수성을 함양해 사회 문제와 관련해선 진보적 정책을 내달라. 여성ㆍ환경ㆍ재해 이슈에는 진보보다 더 진보적이어야 한다. 승부는 경제로 내라. 경제를 못 살린다면 보수정당이 있을 이유가 없다.”
 
일반적으로 젊은 고학력 여성들은 보수야당에 대해 가장 비판적인 계층으로 분류된다. 이런 지적들을 겸허히 수용하고 기존 외연을 확대할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면 보수 야당의 재기는 요원하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카멜레온’처럼 변하면서도 핵심가치는 지킨 영국 보수당
국민의힘의 현 상황은 영국 보수당과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닮은 점은 1997년 역사적인 총선 참패 이후 13년 간의 방황기다. 보수당은 1997년 36세 윌리엄 헤이그를 당수로 선출하고 “새로운 출발”을 선언하는 등 쇄신에 박차를 가했지만, 집권 노동당의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제3의길’을 주창 중도 노선을 강화하며 사면초가에 놓였다.
 
돌파구를 마련한 건 2005년이었다. 그해 12월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는 보수당 당수로 당선되면서다. ’온정적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를 내세워 영국 보수당의 ’대처리즘‘ 이미지 극복에 나섰다. 시장과 자유교역을 중시하되, 약자에 대한 배려ㆍ분배에 관심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대신 완고한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에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환경ㆍ여성 등 사회적 이슈에 대해 자유주의적 색채를 강화하며 이슈 선점에 나섰다. 환경친화적 정당임을 강조하기 위해 당 로고를 연두색 나무 모양으로 바꾸기도 했다. 내부 불만도 나왔지만 보수당이 2008년 5월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을 20%포인트 앞서고 런던시장직을 빼앗아오며 당 내부의 비판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한영익·윤정민·정진우 기자, 김수현 인턴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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