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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재택근무 일상화…동네마다 구내식당 있었으면

기자
박헌정 사진 박헌정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83)

tvN의 ‘삼시세끼’를 보면 먹고 싶기도 하지만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허름해도 친근한 시골집에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소박하게 밥을 해 먹는다. 여유롭게 식사를 준비하기 힘든 현실이다 보니 그런 식사는 놀이이자 힐링이다.
 
퇴직 후 집에서 밥 챙겨 먹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아침은 빵·커피·우유·달걀 등으로 간단히 해결하고 저녁은 조금 길어져도 무방하니 시간을 두고 제대로 준비해서 먹지만, 앞뒤로 일과가 있는 점심이 문제다.
 

요즘은 '집밥'을 표방하는 식당도 많다. 집밥에는 가족을 위한 영양과 정성뿐 아니라 입맛이 있든 없든 때 되면 먹는 정시성이 있었음을 깨닫는다. [사진 박헌정]

 
나의 아내는 집에서 일하지만 엄연한 사장님이고, 나는 나름대로 바쁜 프리랜서 작가다. 그러니 시간 되었다고 하던 일 멈추고 밥 차리기가 서로 번거롭다. 그래서 저녁에 먹다 남긴 거나 라면으로 때우기도 하고, 배달시키거나 나가서 사 먹기도 하는데 일단 들락거리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맥이 끊긴다. 가끔 고민 없이 점심을 해결하는 날은 업무효율도 높아질 정도라 가끔 ‘우리도 학생처럼 급식 먹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다.
 
우리는 ‘집밥’의 가치를 잘 안다. 집밥에는 달고 짜고 기름진 맛 대신 억지로 조미하지 않은 수수함과 투박함이 있다. 그건 곧 건강과 정성의 징표라 집밥을 표방하는 식당도 많다. 우리 부부도 한동안 집밥 형태의 식사를 찾아다니며 먹었는데 맛과 구성이 집밥과 비슷하고 가격대도 큰 부담 없었지만 생각만큼 편하지는 않았다.  
 
국과 반찬을 가져다주는 도시락 배달 서비스. 값과 맛은 무난하고, 무엇보다도 점심시간을 앞두고 고민할 일이 줄어들어 만족스럽다.

국과 반찬을 가져다주는 도시락 배달 서비스. 값과 맛은 무난하고, 무엇보다도 점심시간을 앞두고 고민할 일이 줄어들어 만족스럽다.

 
요즘에야 그 이유를 깨달았다. 집밥의 특징은 정시성이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때 되어 엄마가 부르면 후딱 나와서 먹어야 하는 약간의 규율이 있었다. 물론 관점을 달리해 생각하면 거기에는 엄마, 아내, 며느리의 정성과 희생이 숨어있었다.
 
그렇게 편히 받아먹던 시절을 생각하니 단체급식도 새삼 그립다. 대기업에 다닐 때는 구내식당에서 선택의 여지 없이 정해진 식단대로 식판에 받아(‘철판정식’이라 했다) 먹었는데, 편하기는 했지만 맛에 대한 특별한 기대는 없었다. 그러다 식비를 주는 회사로 옮겼더니, 처음에는 좋았는데 점점 선택 장애에 빠지고 인기 있는 식당은 자리 잡기도 힘들어 나중에는 ‘아무거나 한 그릇 뚝딱 먹고 들어와 눈 좀 붙이자’ 하게 되었다.
 
아무 신경 쓰지 않고 주는 대로 받아먹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얼마 전 동네에서 도시락 배달 차를 보았다. ‘맞아! 가게나 사무실에는 자리 비울 수 없는 사람이 많겠구나!’ 싶어 검색해보니 사무실, 아파트, 일반주택 할 것 없이 2인분 이상이면 배달해준다. 그래서 도시락을 시켜 먹기 시작했다.
 
집에서 일하는 우리 부부로서는 학생들처럼 단체급식을 먹거나 아무 때나 편하게 학생식당을 이용하던 시절이 부럽고 그립다.

집에서 일하는 우리 부부로서는 학생들처럼 단체급식을 먹거나 아무 때나 편하게 학생식당을 이용하던 시절이 부럽고 그립다.

 
밥은 빼고 국과 반찬 다섯 가지를 받는데 하루 7000원(2인분), 주 5일씩 한 달이면 14만 원이다. 해 먹거나 사 먹는 것보다 저렴하지만 음식이 어떨지 몰라 일단 한 달만 먹어보자며 주문했는데 비싼 재료는 아니어도 맛이 담백해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사실 예전 같으면 앞뒤 사정 듣지 않고 ‘둘 다 집에 있으면서 매일 밥을 시켜 먹냐’는 타박을 받을만한 일이다. 아내는 20년 가까이 집에 사무실을 꾸려 ‘비대면’으로 일해왔지만, 소호 개념이 약하던 시절에 사람들은 출근 안 하면 ‘자유’라고, 기혼여성이 집에 있으면 무슨 일을 하든 ‘논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일하면서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없어도 어른은 무슨 일만 있으면 아내부터 불렀고, 이웃은 놀러 와 소파에 눌러앉으면 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친구도 한번 전화하면 끊으려 하지 않았다. 여자가 집에서 하는 일이란 남편이나 아이가 오면 옆으로 밀쳐두고 밥 차려준 다음 계속하면 되는 부업 정도로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그때 같았으면 집으로 도시락을 정기 배달시키는 건 구설에 오를 일이었다.
 
그래도 우리 부부는 둘이 붙어있으니 효율성 측면에서는 좀 낫다. 집에서 거의 혼자 지내는 전업주부는 점심을 어떻게 해결하는지 봤더니 늘 ‘아점’을 먹거나 대충 때우거나 약속을 만들어 밖으로 나간다. 최근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재택근무가 일상의 업무 패턴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아 우리 부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직장인도 많을 것 같다. 그러니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점심 패턴이 사무실 아닌 가정에도 필요하다.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점심이 가장 애매하다. 앞뒤로 일과가 있어 제한된 시간에 해결해야 하니 있는 것으로 간단히 때우곤 한다.

삼시 세끼를 해결하는 데 있어 점심이 가장 애매하다. 앞뒤로 일과가 있어 제한된 시간에 해결해야 하니 있는 것으로 간단히 때우곤 한다.

 
그 핵심은 ‘남이 해주는 밥’이다. 한번은 아내와 점심 먹다가 동네 단위로 구내식당이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노인만 사는 곳도 많고, 재택근무자도 많고, 가사만 전담할 수 없는 사람도 많으니 아파트 1층마다 식당을 만들어 주민이 이용하고 관리비에 포함하면 어떨까? 콩나물국, 고등어구이, 김치, 깻잎, 달걀부침, 김치, 두부조림 같은 소박한 식단에 무리하지 않은 가격의 집밥이면 서로 좋지 않을까.
 
하루 세끼 챙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점심이 늘 애매하다. 옛날 중국에서는 점심이 마음에 점 찍는 일, 즉 차와 간식을 즐기고 담소하는 일이었다지만 현대사회에선 아침을 거르니 하루 중 가장 무거운 식사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바쁜 일상 중에 대충 때우거나 굶기도 한다. 어떻게 먹든, 간단한 것과 부실한 것은 다른 일이니 안정적인 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정말 급식 먹던 시절이 그리워진다.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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