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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란 600㎏, 곶감 4만개, 김치 3000포기…맛도 꿈도 익어가네

[맛따라기] 지리산 바람골 귀향한 셰프

봄 가숭어 알과 가을 보리숭어 알(붉은빛)어란. 보통 봄에 800㎏, 가을에 400㎏을 사들여 어란 600㎏을 만든다. 신인섭 기자

봄 가숭어 알과 가을 보리숭어 알(붉은빛)어란. 보통 봄에 800㎏, 가을에 400㎏을 사들여 어란 600㎏을 만든다. 신인섭 기자

“양 교수, 밥 묵자.”
 

발효식품회사 ‘찬해원’ 양재중씨
14년 이어온 대학 강의 멈추고
부모님 농장서 식품 연구·생산

소금·증류주만 쓴 독창적 어란
슬라이스·플레이크 등 제품화

김치 3000포기 6시간 만에 완판
5가지 견과류 넣어 곶감강정 창작

지리산의 아침, 밥상을 차린 72세 어머니가 아들을 부르는 말이 가슴을 울렸다. 이 산골에서 아들이 교수가 되도록 뒷바라지하느라 겪었을 곡절과 끝내 이뤘다는 성취감·자부심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화음처럼 들렸다.
 
하지만 아들은 14년 동안 매주 2~3일 나가 정규과목을 가르치던 강의(장안대 식품영양학과 겸임교수)를 지난 8월 스스로 중단했다. 유명 일식당 총괄셰프 자리를 내놓고 2013년 3월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고향으로 돌아간 다음에도 15학기를 더 계속한 일이다.
 
양재중 교수

양재중 교수

그는 지리산 능선을 마주 보는 매봉날 중턱 바람골에 부모님이 일군 5000평 주영농장에서 전통발효식품회사 ‘찬해원’을 차리고 연구와 생산을 병행하고 있다. 양재중어란, 김장김치, 곶감과 곶감강정, 전통 장류와 장아찌, 희귀 채소 등을 생산한다.
 
호를 ‘어란(魚卵)’이라 하고, 농부 셰프가 된 양재중(47·사진)씨 얘기다. 어렵사리 명성을 쌓은 세상에서 출가하듯 귀향한 그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찬해원에서 1박2일씩 두 차례 지내며 곶감·김장 작업을 기웃거렸다. 중간에 하루는 그가 어란 특강하러 서울에 왔기에 강의와 시연을 참관하고 설명을 들었다.
  
◆배추 3000포기, 총각무 2t 김장=11월 마지막 일요일, 요리 관련 종사자 10명이 전국에서 찬해원으로 모였다. 사흘간 뽑고, 절이고, 헹군 배추에 준비한 재료를 섞어 양념 만들고 소를 넣는 일을 도우면서 배우려는 사람들이다. 동네 아주머니 15명도 놉으로 왔다.
 
찬해원 김장에는 30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배추 3000포기를 김장 전날 헹구고 있다. 뒤로 대봉감 4만 개를 깎아 곶감을 말리는 덕장이 보인다. [사진 이택희]

찬해원 김장에는 30가지 재료가 들어간다. 배추 3000포기를 김장 전날 헹구고 있다. 뒤로 대봉감 4만 개를 깎아 곶감을 말리는 덕장이 보인다. [사진 이택희]

배추김치 3000포기를 담그는 김장은 나흘이 걸렸다. 일손을 4~5명씩 불러도 하루해가 짧았다. 양 셰프 어머니는 절일 때는 짤까, 헹굴 때는 싱거울까 노심초사하며 현장을 지휘했다. 양념도 시종 어머니 의도대로 준비되고 있었다. 김치에는 재료 30가지가 들어갔다. 설탕이나 인공조미료는 안 쓴다. 해산물 이외의 재료는 모두 직접 농사지은 것이다. 찬해원 주변 주영농장에 식용작물이 빼곡하게 자라는 덕에 가능한 일이다. 눈에 띄는 대로 확인한 것만 71가지였다. 푸르던 게 익으면 완전히 까맣게 변하는 흑감, 방울토마토의 3분의 1 크기 마이크로 토마토는 처음 보았다.
 
김장 한 달 전 그는 SNS에 푸념 겸 자랑을 했다. “김장준비 밤 썰기. 이틀 밤 5시간씩 무려 120kg을 썰었다. 밤이 무섭다. 5일 동안 썰어야 할 밤 채를 이틀에 끝냈다고 엄니는 좋아하신다. 손가락 마디가 저린다.” 김장 나흘 전에는 “총각무 2t을 가볍게 김치 담갔다”고 알렸다.
 
양 셰프 음식 솜씨는 어머니의 내림인 듯하다. 김장 밥상에 나온 동치미 맛이 놀라웠다. 톡 쏘는 탄산감과 시원하게 달고 신 맛에 눈이 커졌다. 표정을 본 양 셰프는 “소금만 넣고 담갔다”고 했다. 재료를 묻자 어머니는 “우리 집 물, 무시, 소금, 파, 생강 쬐깐, 청양고추 댓 개, 그렇지 뭐. 늘 게 뭐가 있간”이라며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수돗가에 둔 통을 몰래 열어 봤더니 정말 그뿐이다. 심지어 항아리가 아닌 플라스틱 통이다. 맛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근본적 의문이 떠올랐다.
 
예약 판매하는 김치는 10월 20일 공지 6시간 만에 매진됐다. 새로운 주문은 내년에나 가능하다.
 
◆가을 보리숭어 어란=양 셰프는 어란으로 이름을 알렸다. ‘어란’으로 호를 삼기도 했지만, 자신의 어란 이름을 ‘양재중어란’이라고 강조한다. 만드는 방법이 기존과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일본 방식을 절충하면서 새로운 처방을 더했다.
 
그에게 어란은 필생의 과제다. 첫 직장인 타워호텔 일식당에서 일할 때 어란을 처음 봤다. 도시락에 얇게 저며 올린 두 점이 처음엔 단무지인 줄 알았다. 비싸니까 먹지 못하게 해 몰래 먹고 단무지를 같은 모양으로 잘라 올렸다. 두 번을 그랬다. 맛있어서 그때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처음엔 손질한 숭어 생란에 참기름을 바르며 말렸더니 오래 두면 참기름이 변질돼 절은 내가 났다. 일본에서는 일본술을 발라 말리는데 깊은 맛은 있지만 좀 비리고 뒷맛이 단 게 흠이다. 한·일 방식의 이로운 점만 취하면서 어란 자체의 맛이 우러나게 하려면 소금과 증류주라는 결론이 나왔다. 증류주로는 어란 말릴 때 땀처럼 표면에 배 나오는 기름을 닦는다. 이취(異臭)가 적은 문배술을 거즈에 적셔 아침저녁 닦는다. 양 셰프 독창적 방법이므로 ‘양재중어란’이라는 것이다.
 
알집의 핏줄과 핏물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인 생란을 바람이 잘 통하는 반그늘에서 20~30일 말려 영상 5~10도, 습도 40% 조건에서 한 달쯤 두면 어란이 건조·숙성돼 표면에 하얀 분이 피고 맛은 녹진하게 익는다. 흰 분은 곰팡이라는 오해가 있지만, 알집 속에서 배 나온 타우린이다.
 
찬해원에서는 한 해 숭어 생란 1200㎏(봄 가숭어 800㎏, 가을 보리숭어 400㎏)을 남·서해에서 구해 600㎏의 어란을 생산하는데 올가을에는 생란을 200㎏밖에 구하지 못했다고 울상을 지었다.
 
그는 지난달 9일 경희대 호텔관광대학 현장 요리사와 석·박사과정 20여 명을 대상으로 어란 특강을 했다. 알배기 숭어 한 마리를 준비해 생란을 채취·손질해 절이는 과정을 보여 주고, 어란으로 파스타와 부르게스타를 만들었다. 이런 음식을 하려고 한 쌍(250g)에 45만원 하는 비싼 어란을 구입하긴 어려우므로 어란 슬라이스(2장 포장)와 플레이크도 제품화했다.
 
열 달 숙성 곶감에 5가지 견과류를 섞어 만든 ‘곶감강정’. [사진 이택희]

열 달 숙성 곶감에 5가지 견과류를 섞어 만든 ‘곶감강정’. [사진 이택희]

◆대봉감 4만 개 곶감과 곶감강정=김장하는 수돗가 뒤로는 대봉감 4만 개를 깎아 곶감으로 말리는 덕장이 성처럼 버티고 있다. 6만 개를 작정했는데 감이 비싸 4만 개밖에 못 했다. 마른 곶감과 볏짚을 켜켜이 상자에 담아 저온창고에 열 달쯤 두면 숙성되면서 당분이 겉으로 배 나와 밀가루에 굴린 듯 하얀 분이 덮인다. 곶감씨를 발라내고 갈아서 5가지 견과류(아몬드·호두·땅콩·캐슈넛·호박씨)를 넣고 반죽으로 치댄 다음 사각 틀에 넣고 납작하고 넓게 성형한다. 밀대로 밀어 평평하게 고른 다음 반듯반듯 잘라 초콜릿처럼 금박지로 싼다. 이 ‘곶감강정’ 또한 양 셰프의 창작품이다. 그는 농장에 감나무를 계속 심으면서 곶감 카스텔라도 구상하고 있다.
 
많은 요리사가 스스로 키운 식자재로 요리하는 음식점을 꿈꾼다. 양 셰프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시작해 28년 요리 외길을 걸었다. 1997년부터 8년 동안은 일본에서 핫토리(服部)영양전문학교 조리사 본과 2년 과정을 마치고 현장 요리사로 일하기도 했다. 귀국해 요리사로 이름을 얻기도 했지만, 그는 더 근본적인 요리를 탐구하기 위해 고향 농장으로 돌아갔다. 걱정스러운 면도 없지 않아 ‘수익은 어떠냐’고 좀 속된 질문을 했다. 희망찬 답이 돌아왔다.
 
“서울서 일할 때보다는 낫습니다.”
 
이택희 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전직 신문기자. 기자 시절 먹고 마시고 여행하기를 본업 다음으로 열심히 했다. 2018년 처음 무소속이 돼 자연으로 가는 자유인을 꿈꾸는 자칭 ‘자자처사(自自處士)’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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