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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그들이 그리는 ‘부동산 유토피아’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발단은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록』이다. 책에서 루소는 “빵이 없으면 브리오슈를 먹으면 되지”라는 ‘어떤 고귀한 공주’의 말을 소개했다. 특별히 비난의 뜻을 담은 것도 아니었다. 이 말이 프랑스 대혁명을 겪으며 마리 앙투아네트의 망언으로 둔갑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리라. 책이 나올 때 앙투아네트는 겨우 12살이었다! 그렇다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낸 민중을 탓할 수 있으랴. 그저 왕실이 누렸던 세상과 민중이 겪었던 세상 사이의 아득한 거리를 탓할밖에.
 

뿌리 깊은 주택 소유욕 아직 견고
정책 모델 삼는 독일도 집값 몸살
‘딴 세상 정책’으로 조롱받아서야

“아파트에 대한 환상을 버려라”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워서라도 굽겠다.” ‘진투아네트’ ‘빵투아네트’ 별명을 얻게 한 이 말의 당사자들도 억울할 것이다. 진의는 왜곡되고, 말꼬투리만 남은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그 전에 그들이 그리는 ‘부동산 유토피아’와 국민이 겪는 현실 사이의 거리부터 돌아봐야 한다.
 
정부가 그리는 부동산 유토피아는 대강 이런 그림이 아닐까 싶다. 1가구 1주택이 보편화하고, 불로소득이 생기면 세금으로 환수하고, 세입자들은 임대료와 임대기간 걱정 없이 산다…. 그런 유토피아의 꿈 위에서 실거주 요건 강화, 보유세·양도세 중과세, 임대차보호법 강행 등을 쏟아냈다. 유토피아로 가는 징검다리는 공공임대다. 2025년까지 임차인의 25%는 공공임대주택에 살게 하겠다는 것이 정부 목표다. 중산층이 30년 동안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질 좋은 평생주택’도 만들겠단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추진하는 ‘기본주택’도 취지는 비슷하다.
 
부동산 유토피아의 현실 모델은 독일이다. 현 정부 주택정책의 설계자인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부동산은 끝났다』도 독일을 모범 사례로 꼽았다. 임대차보호 정책도 독일을 본떴다. 독일은 2차대전 후 빠른 속도로 주택 건설을 늘리기 위해 민간의 힘을 빌렸다. 민간 사업자가 집을 짓고 세를 주면 보유세를 경감하는 혜택을 줬다. 대신 세입자의 주거권 보호를 위해 각종 장치를 뒀다. 거의 무제한의 계약갱신권, 강력한 임대료 인상 억제 등이다. 정책은 집값 안정으로 이어졌다. 굳이 집을 사야 한다는 압력이 낮아지면서 자가 보유율은 우리보다 15%포인트 가까이 낮은 44%(2018년 OECD 통계)에 불과하다.
 
세상이 이렇게 평온하게 굴러가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곳’이라는 유토피아의 뜻이 독일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세계에서 가장 안정된 주택시장을 뽐내던 독일도 세계적 유동성의 쓰나미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지난 10년간 독일 7대 도시의 주택가격은 118.4% 오르고, 임대료는 57% 상승했다(한국건설산업연구원 자료). 집값이 오르자 무주택으로 만족했던 중산층이 유주택 부유층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추격 매수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 집은 신앙에 가깝다. 그 신앙은 독일과 다른 역사적 경로를 따라 형성됐다. 고도 압축성장, 높은 물가상승률, 수도권 인구 집중 등이 대표적이다. 아파트는 그 신앙의 성물(聖物) 격이다. 갑자기 그 신앙을 버리고 정부가 그리는 유토피아로 귀의하라고 떠민들 먹힐 리 없다. “아파트 아니면 어때서” “임대주택이면 어때서” “전세 아닌 월세면 어때서” 같은 우악스러운 개종 시도는 반발과 혼란만 불러온다. 인정하기 싫지만, 욕망은 선의보다 힘이 세다. 적어도 시장에서는 그렇다. 유토피아는 유토피아일 뿐이다.
 
앙투아네트는 그렇게 개념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사치의 화신’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감자 재배를 장려하기 위해 모자에 감자꽃을 꽂고 다녔고, 화려한 베르사유 궁보다는 소박한 별궁에 머물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딴 세상을 살았던 왕비의 선의를 민중은 알아주지 않았다. 대중과 호흡하지 않는 정책은 또 다른 앙투아네트만 소환할 뿐이다. 자꾸 반복되면 종래에 대중은 정책에서 선의를 보지 않고 꿍꿍이를 읽게 된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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