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가족 여행 1번지였던 경남 창녕 부곡면이 코로나 시대에 다시 주목받고 있다. 모르는 사람과 섞이지 않고 온천을 즐기는 ‘가족탕’이 많아서다. 서지현씨와 아들 박준범·준우가 한성호텔 가족탕에서 즐겁게 지내는 모습. 송봉근 기자
비대면 여행지로 뜬 부곡온천
수온 78도…가족탕 갖춘 곳 많아
아이들 취향으로 꾸민 키즈룸도
호텔 안 묵고 온천만 이용해도 돼
객실 난방도 온천수로

온천 숙소 24곳이 모여 있는 창녕 부곡면. 송봉근 기자
온천법 제2조에 나온 온천의 정의다. 25도는 퍽 차가운 물이다. 그런데도 온천으로 인정해준다. 전국 598개 온천 이용 시설 가운데 상당수가 25도 수준의 찬물을 데워서 쓴다. 부곡은 다르다. 온천수 온도가 78도에 이른다. 활화산 지대도 아닌데 전국에서 가장 뜨거운 물이 지하 380m 아래에 가득 차 있다.

부곡의 온천수 온도는 78도에 달한다. 송봉근 기자
부곡면 온천 시설 24개 중 목욕탕만 운영하는 곳은 없다. 모텔, 호텔 같은 숙소를 겸한다. 숙소 80% 정도가 가족탕을 갖췄다. 숙소 객실에 2명 이상 들어갈 만한 큰 탕을 갖췄다는 뜻이다. 가족탕은 하룻밤 묵어도 되지만 2~3시간 ‘대실’ 방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코로나 사태에도 부곡은 가족탕 덕분에 불황을 피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98개 객실을 갖춘 로얄관광호텔은 일요일인 지난달 22일 210개 팀이 대실 형태로 가족탕을 이용했다. 로얄관광호텔 나동기 총지배인은 “올해 들어 대중탕 대신 가족탕을 이용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며 “아이가 놀기 좋은 키즈룸 10개의 경우 주말에 이용하려면 두 달 전에 예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객실 두 개 터 가족탕으로

로얄관광호텔의 가족탕. 송봉근 기자
부곡 온천 시설이 애초부터 가족탕을 갖췄던 건 아니다. 부곡온천관광협의회 남영섭 회장은 “30~40대 가족을 겨냥해 객실 두 개를 터서 큰 가족탕을 만드는 게 5년 전부터 유행했다”고 설명했다.
가족탕 분위기는 천차만별이다. 욕조보다 조금 큰 탕을 갖춘 낡은 숙소가 있는가 하면, 커플용 월풀을 갖춘 곳도 있다. 한성호텔이나 레인보우호텔처럼 테라스에 큼직한 탕을 설치해 노천욕을 만끽할 수 있는 곳도 있다.
요즘 대세는 아이를 겨냥한 ‘키즈 룸’ 콘셉트다. 방 한쪽에 놀이기구를 설치하거나 어린이 취향으로 실내를 꾸민다. 키즈스테이호텔이 대표적이다. 이 호텔은 온천 비수기인 8월에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여름 휴가철 갈 곳이 마땅치 않았던 가족이 온천 호텔로 몰렸다. 뜻밖의 ‘코로나 수혜’라 할 만하다.
경남 창원에서 두 아이와 함께 부곡을 찾은 서지현(36)씨는 “가족여행으로 거제, 여수에 있는 풀빌라 펜션을 많이 다녔는데 부곡에 이런 시설이 있는지 몰랐다”며 “아이를 씻겨보니 물이 좋다는 걸 알겠더라. 피부가 매끈해졌다”고 말했다.
80년 묵은 여관부터 대형 리조트까지…가족탕 갖춘 전국 온천
![속초 척산온천휴양촌의 아담한 가족탕. [사진 척산온천휴양촌]](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2/04/7f2e38d4-c950-4e61-acba-859a2ecf299a.jpg)
속초 척산온천휴양촌의 아담한 가족탕. [사진 척산온천휴양촌]
부산에 오래된 가족탕이 많다. 해운대구와 동래구에 각각 다섯 곳 정도의 온천 업소가 가족탕을 갖췄다. 80년 역사를 자랑하는 해운대 청풍장여관도 가족탕을 갖췄다. 충북 충주 수안보면에도 가족탕을 갖춘 숙소가 여럿 있다. 수호텔, 패밀리스파텔, 리몬스호텔이 대표적이다. 강신조 수안보온천관광협의회 사무국장은 “옛날엔 주변 관광지를 들렀다가 온천을 찾는 단체가 많았다면 요즘은 자가용 몰고 오는 가족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온천 여행지로 익숙하지 않은 지역에도 가족탕으로 주목받는 숙소가 있다. 이를테면 경북 영주 ‘영주호텔’은 지하 1000m에서 끌어올린 온천수를 쓴다. 전남 담양 ‘담양리조트’는 3시간 즐기는 가족온천 6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박상우 담양리조트 홍보실장은 “주말에 가족온천을 이용하려면 3~4주 전 예약해야 한다”며 “먹거리까지 챙겨와 여유를 즐기는 사람이 많다”고 설명했다.
창녕=최승표 기자 spchoi@joongang.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