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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은의 야·생·화] 그래서, 선수협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과도한 판공비 인상 문제로 논란에 휩싸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이대호가 2일 해명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여 사과의 뜻을 전하고 있다. [뉴스1]

과도한 판공비 인상 문제로 논란에 휩싸인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회장 이대호가 2일 해명 기자회견에서 고개를 숙여 사과의 뜻을 전하고 있다. [뉴스1]

 
[배영은의 야野·생生·화話]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선수협)가 또 휘청거리고 있다. 8년 만이다. 이번에도 '돈'이 문제다. 선수협 회장 이대호(38)가 2400만원에서 6000만원으로 대폭 오른 판공비를 받아갔다. 이대호가 추천한 김태현(45) 사무총장은 법인카드로 지급되던 판공비를 몰래 현금으로 수령했다. 두 사람 다 이 일로 불명예 퇴진했다. 이대호는 2일 해명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그 과정에서 선수협의 씁쓸한 민낯이 드러났다. 이대호는 기자회견에서 "판공비를 사실상 월급 개념으로 여겼다. 관행에 따라 받았을 뿐, 문제가 될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대호 회장 추대'를 목적으로 열린 임시 이사회에서 "회장 판공비를 대폭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그다. 그런데도 "내가 판공비를 더 받겠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선수협 회장은 선수 모두가 꺼리는 자리니, 돈이라도 많이 줘야 한다는 취지였다. 나 역시 떠밀려서 (회장을) 맡았다"고 해명했다.
 
논란의 출발점은 '선수협 회장이 왜 판공비를 받았느냐'가 아니다. "선수협 회장 업무로 발생하는 비용을 모두 자비로 부담할 수는 없다"는 이대호 측 항변도 일리가 있다. 의문과 아쉬움은 다른 지점에서 발생한다. 이대호는 왜 전 회장보다 3600만원을 더 받았을까. 왜 프로야구 선수 상당수가 "이대호가 '무보수 봉사'를 하는 줄 알았다"고 할까. 김태현 총장은 왜 8년 전 어렵게 개선한 판공비 정산 방식을 현금 지급으로 바꿨을까. 그리고 왜 선수협 회장직은 선수들의 '애물단지'로 전락했을까.
 
이대호 회장 체제 선수협이 저연봉·저년차 선수 권익 향상에 앞장섰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비난이 덜 거셌을 수 있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다. 선수협은 지난해 말 '자유계약선수(FA) 총액 상한제'를 막기 위해 '최저 연봉 인상'과 'FA 등급제 도입' 안을 거부했다. 오히려 KBO와 10개 구단에 '고액 연봉 선수 감액' 규약 폐지를 추가로 요구했다. '연봉 3억원 이상 선수가 경기력 저하 등의 이유로 1군에서 제외되면, 선수 연봉 300분의 1의 50%와 미등록일수를 곱한 액수를 연봉에서 감액한다'는 조항이다.
 
KBO는 이 규정을 도입하면서 '연봉 5000만원 이하 선수가 1군에서 뛰면, 등록 일수만큼 연봉 5000만원에 해당하는 일당을 계산해 지급한다'는 보완책을 함께 마련했다. 일례로 KBO가 공시한 2017년 이정후(키움 히어로즈)의 연봉은 2700만원이었지만, 그는 프로 첫 시즌 전체를 1군에서 뛴 덕에 최종 5000만원을 수령했다. 그런데도 선수협은 연봉 3억원 이상 선수에게 불리한 조항만을 유독 문제 삼았다. 선수협 대의원 대부분은 각 팀 고액 연봉자다. "역시 '귀족 선수'를 위해 존재하는 노조"라는 비난에 휩싸인 이유다.
 
선수협은 과거 수많은 선수가 크고 작은 불이익을 감수하며 만들어 낸 단체다. 1988년 처음으로 선수 노조 설립을 추진한 고(故) 최동원은 "연봉 낮은 동료들과 연습생 선수들의 복지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한탄했다. 선수협은 그로부터 12년이 더 지나서야 비로소 닻을 올렸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0년간 존립해왔다. 선수협의 역할 논란은 그럼에도 여전히 가라앉지 않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진짜' 달라져야 할 때다. 김태현 총장 판공비 관련 의혹을 낱낱이 밝혀 도덕적 신뢰를 회복하는 게 먼저다. 그 후 차기 사무총장은 프로야구 선수의 현실을 잘 파악하고 능동적으로 협상할 자격을 갖췄는지 철저히 검증해야 한다. 내부 자금을 축내면서 초상권 마케팅에만 신경 쓰는 집행부는 선수협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
 
투명한 자금 관리도 최우선이다. 선수협이 투표를 통해 이대호를 회장으로 추대한 건, 그가 남달리 선수 권익 보호에 관심이 많은 선수여서가 아니다. 현역 최고 연봉(25억원) 선수가 '무보수 명예직'인 선수협 회장을 맡아 의미 있는 목소리를 내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기대한 '솔선수범'은 뜻밖의 실망으로 돌아왔다. 차라리 선수협 회장에게도 적정선의 급여를 지급하는 게 공정성과 책임감을 높이는 길이다. 
 
무엇보다 지금 선수협은 출범 시절의 근본적 취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고 최동원이 내뱉은 한숨은 3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야구계를 맴돌고 있다. 
 
야구팀장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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