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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17년 동안 17만명 의견 물어 세금 정책 편 세종

기자
윤경재 사진 윤경재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74)

'블러드 문'은 태양과 달 사이에 지구가 껴들어 개기월식일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진 pixabay]

'블러드 문'은 태양과 달 사이에 지구가 껴들어 개기월식일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사진 pixabay]

 
블러드 문 

 
늘 저기서 밝게 빛날 줄 알았던
보름달이 핏빛으로 변하자
달을 가리키던 검지도 따라
생인손 앓더군
 
저절로 일어설 거라 뜬소문을 드잡고
믿거니 살펴보지 않는 무심함도 그렇고
기껏 달무리에 빠져 턱 괴는 일
그런 건 사랑이 아니란 거지
 
가끔은 말이지 바다 제 갈 곳 아는 강물도
바닥에 흐르는 음률의 외로움으로
파문이 일더란 말이야
무전취식 같은 물수제비라도 튕겨봤냐는 거야
 
널 바라기만 한다고
보이지 않는 뒷모습마저 없었겠냐고
사라져야 소중한 줄 알 거라며
선문답 하듯 슴벅슴벅 신음하더니만
선분홍 손톱마저 빠트리더군 
 
해설
작년 말 중국 우한에서 시작한 코로나19가 전 지구를 강타해 1년 만에 6400만여 명이 감염되었고 사망자가 150만 명 가까이 발생했다. 이렇게 급속히 확산할 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큰 피해는 모든 사람이 여행이나 운동 등 자유로운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게 된 점이다. 그나마 인간의 의학, 과학 능력이 예전보다 발전해 조만간 최악의 상황은 면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지난날을 반성해보면 우리의 대처가 과연 최선이었는가는 의문이 든다. 여전히 지뢰밭을 걷는 심정으로 막연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
 
마크 트웨인은 “우리는 그 일이 일어날 거라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막연한 믿음 때문에 위험에 놓인다”고 말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 KAL기 폭파, 세월호 침몰 등 ‘사고 공화국’이란 오명을 세계에 떨쳤다. 그래서 실제 경제력보다 못한 높은 국가 리스크 비용을 지불해야만 했다. 모두 설마라는 방심이 빚어낸 불행이다.
 
수많은 사건·사고를 분석한 허버트 하인리히는 대형사고 한 건이 발생할 때, 그 이전에 관련된 소형사고가 29번 발생하였고 이미 그와 관련된 사소한 징후들이 300번씩이나 나타난다는 통계적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러한 1대29 대 300 법칙을 ‘하인리히 법칙’이라고 부른다.
 
왜 300회나 되는 사전 신호를 알아채지 못하고 무시하게 될까. 게다가 29회나 되는 위험경고를 가볍게 넘길까. 그 이유는 질문하는 습관이 들지 않고 어떤 일에 대해 접근하는 생각과 방법이 게으르고 잘못돼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서 그렇다고 한다. 개인의 삶이나 회사의 경영, 국가의 정책에서도 어떤 주제에 대해 항상 질문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그중에서도 무엇을 질문할 것인가 하는 방향이 중요하다. 개인이라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은 무엇인가”를 질문할 것이 아니라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하고 물어야 한다.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고객은 누구인가”, “고객이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물어야 한다. 국가 정책을 입안하는 사람이라면 “이 정책을 시행할 때 국민 여론이 어떠한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행복할까”를 물어야 한다.
 
자녀 교육에서도 질문·경청·피드백의 3단계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얼른 밥 먹고, 숙제하라거나 학원에 가라고 명령조로 말한다.[사진 pickpik]

자녀 교육에서도 질문·경청·피드백의 3단계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얼른 밥 먹고, 숙제하라거나 학원에 가라고 명령조로 말한다.[사진 pickpik]

 
자녀 교육에서도 질문·경청·피드백의 3단계가 중요하다. 대부분의 부모는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얼른 밥 먹고, 숙제하라거나 학원에 가라고 명령조로 말한다. ‘~해라’와 ‘~하지마라’는 말밖에는 할 줄 모른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무엇을 배웠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묻고는 한번 안아준다. 그러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 무엇인지 묻는다. 그러면 아이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간다. 세수하고 나오면 ‘이렇게 예뻐졌네’하고 긍정적 피드백을 해준다. 밥 먹고 뭐 할래하고 물으면 아이들은 대개 ‘좀 놀래요’ 한다. ‘얼마나 놀 거야’하고 물으면 1시간 정도 놀겠다고 답한다. ‘그래, 건강도 챙겨야지’하고 또 긍정적 피드백을 해준다. 놀기를 멈추고 약속을 지키면 약속을 잘 지켜서 대견하다고 신뢰의 피드백을 해준다. 다 놀았으면 ‘그 다음은 뭐 할래’하면 열에 여섯은 공부나 숙제할 거라고 답한다. 공부하는 데 뭐가 필요한지 물으면서 간식을 챙겨준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임금인 세종은 즉위하고 첫 말씀이 ‘의논하자’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세종은 토론과 소통의 대가였다. 무엇이든 신하와 토론했다. 토론에 상하가 없었다. 훈민정음 반포 반대와 불교 배척에 앞장섰던 최만리와의 끝장토론은 특히 유명하다. 임금과 신하와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논쟁하였다.
 
황희 정승을 비롯해 맹사성,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김종서, 신숙주, 박연, 장영실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의 공통점은 바로 한 시대에 배출된 인재라는 점이다. 바로 세종 때 사람이다. 이렇게 쟁쟁한 인물들이 수많은 왕 중에서 하필 세종대에 나왔을까. 또 그런 세종이 가장 자주 썼던 말은 무엇일까. ‘경의 생각은 무엇이요’란다. 신하들의 생각을 끄집어내어 능력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었다. 노비 출신과도 허물없는 대화를 직접 나누었다. 노비였던 장영실이 물시계인 자격루와 앙부일구 등 조선의 고유한 표준시계를 발명하도록 이끌었다. 특히 사람을 한 번만 보면 그의 이름과 내력, 세계(世系)를 기억해 주위를 감동하게 했다. 마음으로 존경하게 하였다.
 
요즘 생각해도 놀라운 건 나라가 거두는 세금을 여론 조사를 통해 결정한 점이다. 세종 이전에는 과전법이라 하여 일정한 소출에 대해 세금을 물렸는데 관리가 직접 밭에 나가 소출을 계산하고 세금을 매겼다. 그러다 보니 관리의 재량이 문제가 되었다. 필요에 따라 세금을 매겼다. 이런 폐단을 없애려 일정한 공세(貢稅)를 정하도록 했다.
 
무려 17년에 걸쳐 17만2806명의 의견을 물었다. 더 놀라운 점은 조사 방법이다. 먼저 지역별로 나누었고 벼슬아치의 의견도 전직과 현직관리 개인별로 나누었다. 찬성 비율이 전직관리가 4배 정도 높았다. 역시 현직관리는 무언가 자신의 권한을 나누는 게 싫었다는 뜻이다. 농민에게는 호주가 답을 하게 하였는데 지역 편차가 컸다. 평지가 많은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는 찬성비율이 98.7%였다. 그러나 산지가 많은 평안, 함경, 강원도는 반대가 많았다. 겨우 5%만 찬성했다. 황해도와 충청은 28%가 찬성했다. 전체적으로는 찬성 9만8657명 대 반대 7만4149명으로 찬성이 더 많았다.
 
황희 정승을 비롯해 맹사성,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장영실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의 공통점은 바로 세종 때 배출된 인재라는 점이다. [사진 public domain]

황희 정승을 비롯해 맹사성, 정인지, 박팽년, 성삼문, 장영실 등 우리에게 친숙한 이름의 공통점은 바로 세종 때 배출된 인재라는 점이다. [사진 public domain]

 
결과를 숙고한 세종은 먼저 찬성이 많은 경기도, 전라도, 경상도부터 실시하였다가 차차 다른 지역으로 확대하였다. 찬반여론을 고려하여 과거 3등급이었던 토지 비옥도를 6등급으로 세분하였으며, 풍년과 흉년이 들었을 때를 고려해 미리 9등급으로 상세하게 정했다. 그리하여 관리의 농간을 최대한 막았다. 그야말로 데이터를 과학적으로 해석하고 누구라도 이의를 달지 못하게 하였다.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깊이 드러났다. 현대 AI 컴퓨터 통계 해석도 정확한 데이터 확보와 공정한 입력, 해석이 관건이다. 자기 입맛에 맞는 해석은 잘못된 정책을 만들어 모든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블러드 문’은 태양과 달 사이에 지구가 껴들어 개기월식일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태양 빛을 지구가 가로막아 달이 점점 어두워지다가 마지막엔 파장이 짧은 푸른색은 흩어지고 파장이 긴 붉은색만 달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지구에서 달을 보면 붉은 핏빛으로 보이게 된다. 서양에서는 블러드 문을 불길한 징조로 여겼다. 실제로 흉년이 자주 일어났으며 동로마 제국도 블러드 문이 뜨고 닷새 만에 수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었다.
 
우리는 매사에 자기가 모르는 허물이 없는지 물어야 한다. 참된 가치가 어디에 있으며 그것을 추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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