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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간장이 염산간장 섞은거라고?"…억울한 '간장 괴담'

혼합간장 라벨의 뒷부분을 보면 산분해간장과 양조간장의 혼합 비율이 적혀있다. 배정원 기자

혼합간장 라벨의 뒷부분을 보면 산분해간장과 양조간장의 혼합 비율이 적혀있다. 배정원 기자

“왜 간장만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가요?”
 
정부가 간장 표기법을 바꾸겠다며 공표한 행정예고에 간장 제조업체가 반발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 5월 국민의 알 권리를 이유로 혼합간장 상표 앞쪽에 ‘70% 산분해 간장’ 등 혼합 비율을 표기하도록 ‘식품 등의 표시 기준’을 개정했다. 계도 기간을 거쳐 시행하겠다고 행정 예고했지만, 간장제조 업계 반발이 워낙 커 시행할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지난 10월 국감에서 이의경 식약처장은 “최근 논란이 되는 간장 표기와 관련, 소비자와 학계·업계와 충분히 논의해 문제가 없도록 조치하겠다”며 한발 물러서는 입장을 드러냈다. 업체들은 이참에 “아예 시행을 접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염산 간장' 오명에 간장 업계 긴장  

이 제품은 상표 앞 부분에는 '국간장'이라고 쓰여있지만, 라벨 뒷부분을 보면 양조간장 5%, 산분해간장 95%가 섞인 '혼합간장'이다. 배정원 기자

이 제품은 상표 앞 부분에는 '국간장'이라고 쓰여있지만, 라벨 뒷부분을 보면 양조간장 5%, 산분해간장 95%가 섞인 '혼합간장'이다. 배정원 기자

혼합간장은 산분해 간장과 양조간장을 섞어서 만든다. 산분해 간장은 ‘염산 간장’이라는 '식품 괴담' 속 주인공이다. 전통적인 방식의 발효를 거쳐 만든 간장이 아니라 콩에 염산을 넣어 만든 ‘가짜 간장’이라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용어에 속지 말라”고 설명한다. 고농도 염산은 살을 태울 정도로 위험한 물질이지만, 식용 염산은 식약처에서 허가한 식품 첨가물이다.  
 
간장은 콩 단백질 덩어리를 잘게 부순 아미노산으로 만든 액체를 말하는데, 이 과정에서 단백질을 분해하는 방법으로 미생물이 만드는 효소나 산을 이용한다. 이때 식용 염산을 사용해 분해하면 효소를 이용할 때보다 공정이 간단하고, 제조 시간을 줄일 수 있어 가격을 낮출 수 있다. 노봉수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명예교수는 “간장에 사용하는 염산은 알칼리 성분으로 중화 과정을 거치면 소금물이 되기 때문에 인체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간장 업계는 상표 뒷면에 적혀 있는 산분해 비율을 굳이 앞면에 또 한 번 적을 경우 유해 물질이라는 왜곡된 인식과 함께 소비자 공포를 조장할 수 있다며 우려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에 이미 산분해 간장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가득한데, 혼합 비율을 앞면에 잘 보이는 곳에 밝히라는 것은 마치 산분해 간장을 먹으면 안 된다는 근거 없는 주장에 날개를 달아주는 꼴”이라고 말했다.  
 

"산분해 간장이 혐오 식품?"

식약처의 공식 간장 분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식약처의 공식 간장 분류.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산분해 간장이 식용 염산을 사용하는 유일한 식품도 아니기 때문에 간장 업계는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산분해 공법은 캐러멜·물엿·시럽·이온음료·비타민 등을 제조할 때 널리 활용되는 기술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된 식품 첨가물 3위는 염산이 차지했다. 1위는 수산화나트륨으로 주로 염산을 중화할 때 사용된다.    
 
남윤기 한국장류협동조합 전무는 “산분해 간장과 혼합간장은 이미 안전성을 인정받았는데, 2004년 쓰레기 만두 사태처럼 혐오 식품으로 매도돼 매출이 급감하는 게 아닌지 조합 사들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다른 식품은 제조 과정에 염산을 사용해도 표시 규제를 안 받는데, 간장만 유독 산분해라는 제조 공법에서 따온 명칭으로 불이익을 받아 억울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표시 기준을 바꿔야 한다면 혼합간장과 유사한 혼합 식용유, 혼합 음료, 혼합 절임, 혼합 소시지 등도 혼합 비율을 앞에 적어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내 간장 생산량의 절반은 혼합간장이 차지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해 간장 판매액 기준으로 혼합간장은 1785억원으로 간장 시장의 49%를 차지했다. 양조간장과 산분해 간장은 각각 1184억원, 399억원으로 33%와 11%였다. 한국장류협동조합에 따르면, 해외로 수출되는 간장의 80%는 혼합 또는 산분해 간장이다.  
 

진간장·국간장·조선간장·양조간장…

간장은 진간장·맛간장·조선간장·국간장·양조간장 등 모호한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다. 배정원 기자

간장은 진간장·맛간장·조선간장·국간장·양조간장 등 모호한 기준으로 분류되어 있다. 배정원 기자

혼합 간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만으로도 간장 산업은 위축될 수 있다. 장류 산업의 90%는 소상공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산분해 간장을 제조하던 업체가 양조간장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더 넓은 부지와 고가의 설비가 필요하다”며 “결국 대기업만 남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작 고쳐야 할 문제는 따로 있다. 진간장·국간장·맛간장·양조간장·조선간장·조림간장 등 소비자 혼란만 불러일으키는 모호한 간장 분류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제조법에 기반을 둔 식약처 분류와 다르게 시중에서 파는 간장 명칭은 제각각이다. 예컨대, 진간장도 제조업체에 따라 양조간장 또는 혼합간장을 지칭한다. 요리 초보자가 마트에서 간장을 고를 때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업계에서는 차라리 모든 간장을 ‘간장’이라고 표기해 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물엿도 산분해 물엿, 효소 물엿이라 구분하다가 ‘물엿’으로 통일했고 된장도 비슷했다”며 “모두 간장으로 표기하게 해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간장 표시뿐만 아니라 유형이나 정의 등까지 전반적인 부분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정원 기자 bae.ju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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