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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울고 있기보단 걷기가 나을 것 같아서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68)

 
어느새 12월입니다. 일 년 내내 우리를 위협하는 코로나19로 인해 몸은 을씨년스레 춥고 마음은 회초리 맞은 어린아이같이 무기력한 하루하루가 지나갑니다. 휴일이지만 외출도 눈치 보이고, 의미 없이 책갈피 훌렁훌렁 넘겨보다가 시간 보내기로 영화 한 편 아무거나 눌러봅니다.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도 절박한 상황에 부닥친 영화 속 주인공은 세상살이에 실망해 죽으려고 산에 오릅니다. 예전부터 답사해 두어 지리를 익혀 두었지만 들어가면 갈수록 너무나 다른 미로 속의 울창한 숲길입니다. [사진 needpix]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도 절박한 상황에 부닥친 영화 속 주인공은 세상살이에 실망해 죽으려고 산에 오릅니다. 예전부터 답사해 두어 지리를 익혀 두었지만 들어가면 갈수록 너무나 다른 미로 속의 울창한 숲길입니다. [사진 needpix]



열심히 부지런히 살아도 절박한 상황에 부닥친 영화 속 주인공은 세상살이에 실망해 죽으려고 산에 오릅니다. 예전부터 답사해 두어 지리를 익혀 두었지만 들어가면 갈수록 너무나 다른 미로 속의 울창한 숲길입니다. 인생도 힘들었는데 마지막 가는 길까지 이렇게 힘들다니, 자신은 정말이지 되는 일도 없고 실패한 못난이라 자책하며 걷습니다. 걷다가 길을 잘못 들어 그만 허둥댑니다. 허허, 어차피 죽으려고 오르는 길인데 길을 잘못 들면 어떻습니까? 주인공은 컴컴한 산길을 헤매다가 지쳐 잠시 쉬는데, 영화를 보는 내가 더 힘듭니다.

 
캄캄한 산꼭대기에 올라 드디어 자신이 답사한 곳을 찾았습니다. 커다란 고목이 있고 주위엔 고요함만 있는 산꼭대기에서 남자는 배낭에서 줄을 꺼냅니다. 몇 번이나 고목에 줄을 던져 걸리기를 바라지만 계속 실패하고, 직접 나무에 올라 줄을 매기로 하고 나무에 오릅니다. 또 몇 번이나 발을 헛디뎌 떨어지고 미끄러집니다. 드디어 나무에 줄이 걸렸네요. 성공했습니다. 줄이 단단히 매이고 목을 매지만 가지가 부러져 줄과 함께 땅에 다리가 닿아버립니다. 다시 올라가 목을 매면 이번엔 줄이 미끄러져 떨어지고요. 살기도 힘들지만 죽기는 더 힘듭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실랑이하다가 기진맥진 다시 나무에 오릅니다. 성공이란 말이 우습지만, 또다시 성공하고, 잠시 숨을 돌리려고 나뭇등걸에 누워 쉬다 보니 손에 향기가 납니다. 향기를 맡아보니 살구나무입니다. 허기까지 밀려와 하나를 베어 물고 있으려니 저 멀리서 어둠이 걷히고 새벽이 열립니다.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며 처녀들이 한 무리 지나갑니다.



척박한 고산지대에도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산나물을 뜯으러 나온 동네 여자들입니다. 나무에 올라가 있는 그를 발견한 여자 한 무리가 살구를 따는 남자로 알고 던져 달라고 요청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남자는 나무를 흔들어 살구를 떨어뜨리고, 처녀들은 바구니에 가득 담고 웃으며 행복해합니다.

 
남자의 자살 기도는 실패했지만, 그들에게서 희망의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아무런 의미 없는 작은 일에도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겠지요. 나무에서 내려와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다시 죽을 힘을 내어 열심히 살아갑니다.

 
나무에 올라가 있는 그를 발견한 여자 한 무리가 살구를 따는 남자로 알고 던져 달라고 요청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사진 pixabay]

나무에 올라가 있는 그를 발견한 여자 한 무리가 살구를 따는 남자로 알고 던져 달라고 요청하며 미소를 짓습니다. [사진 pixabay]

 
어느 날 실패한 인생을 살았다 자책하며 죽으려 했던 그날이 문득 떠올라 그곳을 다시 찾아가 봅니다. 그 고산지대엔 삶이 너무 척박하고 힘듭니다. 아직 시집을 못 간 처녀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푸념하거나 힘들어하지 않고 상황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그를 알아본 여자들은 그를 초대해 밥을 차려주고 환대합니다. 그는 그들과 함께 마을의 힘든 일을 도우며, 거기서 많은 여인의 사랑을 받고 정착해 잘 살아갑니다.

 
코로나19 사태로 모두가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영업을 하는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혼자서 북한산 자락 길을 걷고 있다고요. 하필 올해는 일 년 내내 몹쓸 병균이 따라와 괜스레 우울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누군가가 그러더군요. 한해가 끝나갈 때면 수많은 일상 중에 아무런 일도 아닌, 그 아무 일 하나하나가 모두 서운하고 외롭게 한다고요. 나이 드니 그렇게 가슴을 파고들어 공허하고 쓸쓸하게 했던 시간도 세월에 무뎌져서 떠났는지 그것마저도 그리운 때가 있더라고요.
 
“울고 있기보단 걷기가 나을 것 같아서.” 
 
얼버무리며 말을 흐리는 지인에게 무어라 위로의 말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방에 웅크리고 누워 영화를 보던 내가 멀리서라도 동행하면 힘이 되리란 생각에 벌떡 일어나 운동화 끈을 조여 봅니다.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힘든 고비를 이겨 내고 나면 향기로운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는 날이 있기를 바라면서 말입니다.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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