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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호의 시시각각] 훅 날아간 아시아 금융허브의 꿈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최근 글로벌 유력지 파이낸셜타임스(FT)의 서울발 기사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국의 사모펀드 산업을 흔든 스캔들’. 몇 줄 읽자마자 할 수만 있다면 지면을 감추고 싶었다. 한국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들춰냈기 때문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 부끄러웠다. 지난해부터 금융사고가 줄줄이 터지고 있지만, 굳이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터였다. 허술한 금융감독, 사기에 가까운 사모펀드의 폭주, 고객에게 부실 상품을 판매한 은행을 비롯해 감독기관과 금융회사의 잘못이 명백했다. 검찰이 곧 진상을 밝혀줄 것이라고 봤다. 더구나 투자 판단과 책임은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라고 봤다. 그게 투자 세계의 철칙이기 때문이다.
 

‘라임·옵티머스 사태’ 정부 무능 탓
선량한 사람들 사기에 휘말아 넣어
사기꾼 벌 주기보다 금융교육 시급

그런데 놓친 게 있었다. 훅 날아간 아시아 금융허브의 꿈이다. 한국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동북아 물류허브와 금융허브를 꿈꿔 왔다. 30여 년 전 노태우 정부 때 결단한 인천공항은 그런 목표의 기본 인프라를 깔아줬다. 외국인이 드나들 수 있는 반듯한 허브공항이 있고, 경제 규모가 세계 10위권에 이르니 금융허브를 노려볼 만하다. 안타깝게도 이 꿈은 당분간 물거품이 될 것 같다. 이번 정부에서 한국 금융산업의 신인도가 심각하게 손상되면서다.
 
금융의 생명은 신뢰 아닌가. 단 1원조차 안전하다는 믿음에 예금하고 투자한다. 미국 뉴욕, 영국 런던, 아시아의 홍콩·싱가포르 같은 글로벌 금융허브에서 라임·옵티머스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경기 침체와 기업 실적 악화로 투자 손실을 보기는 해도 선의의 고객을 대상으로 부실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사례는 보기 드물다.
 
더 큰 문제는 자금을 빼돌리고 부실 투자로 고객의 돈을 탕진하고 있는데도 정부는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 현실이다. 수많은 선량한 고객이 사실상 사기 금융에 휘둘리고 부실 금융상품이 신뢰가 생명인 은행을 통해 팔려 나가는데도 정부와 금융감독 당국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금융감독시스템에 총체적으로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도 돌아보면 정부의 무능 탓이 컸다.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정부는 외환 규제를 급속히 완화했다. 하지만 감독에는 소홀했다. 그 결과 기업들이 앞다퉈 달러를 빌려 쓰면서 불어난 외채가 외환위기의 화약고가 됐다. 선진국 클럽인 OECD에만 들어가면 저절로 선진국이 되는 줄 알았던 셈이다.
 
라임·옵티머스 사태도 판박이다. 정부는 금융시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사모펀드를 2015년부터 적극적으로 키웠다. 우후죽순으로 모집된 사모펀드는 2015년 615개에서 2019년 3324개로 불어났고, 전체 자산은 400조원에 달한다. 누구나 소액투자가 가능한 공모펀드와 달리 애초 49명 이하로 투자자가 제한된 사모펀드는 자기 책임 아래 투자하는 금융 수단이라는 이유로 공시 의무가 대폭 철폐됐다. 그 결과 사모펀드의 세계는 깜깜이 속으로 들어갔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듯 사기꾼들이 달려들었다. 국채 같은 안전자산에 투자한다고 투자자를 모집한 뒤 불량 채권에 투자했다. 나아가 고객 돈을 빼돌려 정치인을 비롯한 권력자들에게 로비자금을 뿌렸다는 혐의가 나왔다.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장면이 현실에 있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라는 국가 기능이 완전히 멈춰섰다. 너무 안타까운 현실은 피해자가 주로 인생 후반의 50~70대 고령자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평생 모은 돈이 반 토막 나거나 몽땅 날렸다.
 
정부는 최소한의 양심이 있으면 사후약방문이라도 제대로 써야 한다. 지금부터 3년간 사모펀드 실태를 전수조사하는 소동을 벌이고, 사기꾼들 벌줘 봐야 별 의미가 없다. 이 시점에서 당장 해야 할 일은 국민에 대한 금융교육 강화다. 사모펀드가 뭔지도 모르고 투자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새 출발을 한다는 각오로 금융허브의 기초부터 다시 쌓기 바란다.  
 
김동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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