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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면초가

박진석 사회에디터

박진석 사회에디터

역부족이었다. 투박한 열 명의 검사들은 노련한 ‘토론의 달인’ 한 명을 당해내지 못했다. 평검사들의 첫 실력행사 사례로 기억에 남아있는 2003년의 평검사 회의, 그리고 그 결과물이었던 ‘검사와의 대화’는 첫 발자국 이상의 의미와 결과를 남기지 못했다. 그 뒤에도 평검사들의 규합은 몇 차례 더 있었지만, 대부분 별무소용이었다.
 
그런 과거들의 목격자 입장에서 볼 때 평검사 전원과 지검장, 고검장에 심지어 법무부 소속 검사들까지 반기를 들고 행동에 나섰다는 건 입을 다물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일이다. 거의 모든 검찰 구성원이 들고일어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무부 장관은 말 그대로 사면초가 신세다.
 
백미는 ‘장관의 남자’였던 검찰총장 직무대행이 장관에 대한 충정과 고언을 담아 내놓은 글이었다. 그중에서도 ‘검사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의 검찰 개혁 강행은 불가능한 일’이라는 대목은 여러 번 곱씹을 만했다.
 
‘사면초가’의 저작권자인 초패왕 항우가 다 거머쥔 천하를 놓쳐버린 건 백성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해서다. 그가 미웠던 한 백성이 고의로 도주로를 잘못 알려줘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은 상징성이 크다. 구명도생 기회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는 오강(烏江) 앞에서 “강동으로 피신해 후일을 도모하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강동 자제를 몰살시킨 내가 어떻게 강동의 부형들을 볼 면목이 있겠느냐”며 물리쳤다. 그리고는 최후 일전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했다.
 
장관의 처지도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굳이 항우처럼 ‘필부의 용기’를 앞세워 사지에 뛰어들 필요가 있을까. ‘이쯤에서 한발 물러난다’는 선택지가 분명 존재한다. 그걸 선택하는 게 검찰개혁의 불씨를 되살리고, 대통령이나 여당의 ‘부형’들을 볼 면목을 남기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다.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공을 자랑하고 사사로운 지혜만 앞세운 채 지난 일을 배우지 못했다. 힘으로 천하를 경영하려다 망했으면서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하늘만 원망하면서 자신을 나무할 줄 몰랐다”고 항우를 비판했다. 장관은 이제라도 지난 일을 배워 깨달음을 얻고 현명한 선택을 하길 바란다. 자신에 대한 먼 훗날의 최종 평가를 좌우할 수도 있는, 중차대한 갈림길에 서 있으니 말이다.
 
박진석 사회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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