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다양한 가족의 존재, 전향적 인정을
출산율 높이는 긍정 효과도 기대
몇 년 전 서울에 본사를 둔 어느 회사에서 미혼 여직원들이 난자 냉동 비용을 지원해달라고 건의했다. 다들 깜짝 놀랄 정도의 기발한 요구였다. 그러나 “요즘 젊은 애들은 회사에다 별걸 다 해달라고 하네”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그녀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중요한 저출산 대책일 수도 있을 것 같다.
기혼 여성에게는 출산휴가와 육아 휴직 비용을 지원하고 있으니 미혼 여성에게도 훗날 인공수정을 위한 난자를 냉동할 비용을 지원해달라는 것이었다. 아직 의학적으로 검증이 덜 된 방법이지만,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엄마가 되고 싶은 여성들이 그만큼 많이 있음을 보여준 사례다.
최근 젊은 세대의 결혼과 출산 인식이 크게 변하고 있다. 결혼은 선택이고 결혼하더라도 출산을 기피한다. ‘2020 통계청 사회조사’에서 ‘비혼 출산 찬성’ 31%, ‘비혼 동거 찬성’ 60%로 나타났다. 이런 경향은 이미 예전부터 있었다.
필자의 지인 중에 아이를 낳지 않는 조건으로 결혼한 부부도 있다. 기성세대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큰 변화가 찾아오고 있다. 우리나라 출산율은 0.9명이다. 저출산 해결을 위해 정부는 수백조 원의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곧 0.8명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이화여대 법학 전문대학원 김 유니스 교수는 “결혼한 남녀뿐 아니라 출산을 희망하는 비혼자를 지원하는 정책이 출산율을 높이는데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1990년대 말부터 동거를 법적으로 인정하고, 비혼 자녀 비율이 60%가 넘는 프랑스는 지난 1월에야 비혼자의 인공수정을 허용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그 전에는 인근 국가인 벨기에로 가서 시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제 우리나라도 현실에 맞게 법 제도를 손질해야 할 시점이다.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 자유도 포용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엄마가 되고 싶은 여성들이 엄마가 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현행법에서는 비혼자에게 정자를 제공할 제도가 없으니 체외수정이나 인공수정이 불가능하다. 이제부터라도 정치권과 관련 부처가 제도 개선을 위한 공론화를 시작해야 한다.
공론화 과정에서 반대 의견도 만만찮을 것이다. 종교적 관점도 있지만, 엄마나 아빠가 혼자 키우는 아이는 불행할 것이라는 걱정과 우려 때문이다. 그런 생각 자체가 고정관념에서 오는 차별적 생각이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비혼 출산율이 가장 낮다. 비혼 출산율이 낮아서 가족 문제가 없다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다. 비혼 가정이지만 부모 됨을 준비하면 아이와 육아의 가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비혼 출산 가정을 포함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해야 출산율도 높이면서 인권 존중 사회가 될 수 있다. 가족의 변화를 어떻게 수용할지, 정책적으로 어떻게 풀어나갈지 우리 사회의 숙제가 하나 더 늘었다.
이복실 전 여성가족부 차관·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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