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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호의 법의 길 사람의 길] 헌법이 두렵지 않은가

문영호 변호사

문영호 변호사

‘박정희 대통령 피격 서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총격’  1979년 10월 어느 날 새벽을 뒤흔든 신문 제목이다. 전날 밤 벌어진 10·26 사건으로 독재의 근원(根源)이 하루아침에 사라졌으나 앞날이 불안하고 불투명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독재권력을 호위하던 유신 헌법의 굴레에서 벗어나, 길고 긴 어둠이 걷히리라는 것.
 

권력견제 위한 방책 ‘대통령 탄핵’
헌법 수호 위한 87년 개헌의 산물
정부의 헌법정신 역행 없어야

어둠이 시작된 건 대학시절이었다. 은행나무 잎이 물들기 시작한 1972년 가을, 느닷없는 ‘10월 유신’은 청천벽력(靑天霹靂)이었다. 비상계엄 선포와 함께 헌정질서가 중단됐고, 남북 대치 상황에선 권력의 1인 집중만이 살길이라고 했다. 굳게 닫힌 교정 출입문에 ‘휴교’ 팻말이 내걸린 그 날, 도서관 입구를 막아선 군 장갑차의 위용에 압도되어 발길을 돌린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어둠은 더 공고해졌다. 그해 말 위헌적 국민투표로 유신헌법이 태어나면서다. 학업을 계속하는 내내 권력집중을 호위하는 유신헌법과 마주하기 싫었다. 연임 제한이 없는 대통령이 입법·사법을 장악했으니, 그야말로 헌법파괴 수준이었다. 그중에서 유독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이 대통령을 뽑고 국회의원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유신 의원도 뽑는다는 조항이 거슬렸다.
 
어둠 속에서도 학업을 마쳐야 했다. 암울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기에 온전한 헌법이 마땅히 품고 있어야 할 정신과 가치를 파고들었다. 특히 18세기 이후 서구의 기본권 신장 역사나 법치주의의 근간인 권력분립의 메커니즘 등의 분야는 젊은 날의 지적 갈증을 풀어줬다. 억눌림 속에서도 헌법 강의실엔 열기가 뜨거웠다.
 
어둠이 언젠가 끝나리라 믿었기에 법률가의 꿈을 접진 않았다. 당장에 사법시험 통과가 문제였다. 유신헌법 중 말이 안되는 부분이 출제될까 봐 마음 졸였지만, 다행히 1976년 2월 실시된 논술식 시험(제18회)에서는 그런 부분을 비켜갔다. 권력분립의 메커니즘 중, 사법부가 위헌법령의 심사를 통해 입법부나 행정부를 어떻게 견제하는지를 쓰라는 거였다. 헌법 과목의 전례 없는 고득점이 다른 과목의 구멍을 메워준 덕분에 법률가의 길이 열렸으니, 어둠에서 건진 전화위복이라 할까.
 
온전한 헌법을 되찾기까지엔 시간이 더 걸렸다. 어둠이 반쯤 걷힌 채 전두환 정권을 거쳐야 했다. 1987년 6월 항쟁이 쟁취한 직선제 개헌으로 태어난 헌법이 지금의 헌법이다. 헌법재판소 제도 도입 등 어디에 내놔도 자랑스러운 모습으로 태어났다. 그중 기본권 조항은 수시로 업무 현장으로 소환됐다.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재산권 보장 등을 두고 다툴 때마다 헌법정신에서 해답을 찾았다. 사법의 독립이 가끔 흔들릴 땐 권력분립의 정신을 들이대면 정치 권력도 기가 꺾였다. 헌법가치의 훼손을 막아내는 힘이 헌법에서 나왔다.
 
그처럼 지엄(至嚴)하다고 할 헌법에 권력 견제의 날이 매섭게 서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2016년 가을 광화문 광장이 수십만 시민들의 촛불시위로 덮였다. 권력의 사유화(私有化), 권한 남용 등에서 비롯된 민심이반(離反)이 대통령을 향한 분노로 표출된 것이다. 극심한 국론분열과 혼란에 직면했지만, 거기에 종지부를 찍어준 게 헌법이다. 2017년 2월,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은 헌법이 내민 권력 견제의 레드카드다.
 
대통령 탄핵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 1987년의 직선제 개헌 당시 헌법을 지키기 위한 방책으로 채택된 권력 견제장치가 대통령을 끌어내릴 만큼 매서울 줄이야. 그처럼 날이 서있기에 권력분립의 정신이 살아있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이다.
 
누가 뭐래도 헌법의 힘으로 탄생한 정부 아닌가. 당연히 헌법정신에 역행하는 일은 추호도 없어야 할 테다. 그런데 최근 임명된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의 면면을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대통령과 입법부는 어깨를 부딪치며 힘겨루기를 하다가도 스크럼을 짜고 ‘으샤 으샤’ 해야 하는 관계다. 지금처럼 거대 여당 구도에선 견제의 총대는 입법부가 아닌 사법부나 헌법재판소가 매야 한다. 거기에 ‘내편’을 심겠다는 건 말이 안됨에도 불구하고 특정 ‘연구회’ 출신 인사들이 속속 진출하는 걸 우연이라 할 수 있을까. 그들의 정치적 편향성이 감점이 아니라 가점 요인이 되지 않고서야 그렇게 될 수 없다.
 
개인이 정치 성향을 달리하는 것과, 그걸 고리로 모임을 조직하거나 세력화하는 것은 차원이 다름을 눈감겠다는 거다. 그러니 거리를 두고 긴장관계에 있으면서 레드카드를 내밀기도 해야 할 사람들과 대통령이 스크럼 짜기를 하겠다는 걸로 의심하는 것이다. 묻고 싶다. 권력 견제의 날이 선 헌법이 두렵지 않으냐고.
 
문영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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