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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40주년작 의기투합 "독일이 아우슈비츠 기억하듯…광주 잊지 않길 바랐죠"

올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 음악감독이 선보인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5월 광주부터 88서울올림픽까지 80년대 한국사회를 조망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올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 음악감독이 선보인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5월 광주부터 88서울올림픽까지 80년대 한국사회를 조망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검은 화면 가득 타오르는 촛불 하나. 이어 88서울올림픽의 화려한 영광 뒤로, 1980년대 산업역군의 맨손이 무방비하게 공장기계 사이를 오가는 모습이 지금껏 이어진 노동자들의 그늘진 죽음을 연상시킨다. 시간을 되감듯 거슬러간 기록영상 속엔 이윽고 80년 5월, 피 흘리는 광주의 얼굴이 떠오른다.
“기억하소서, 제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당신께서 모든 사람을 얼마나 헛되이 창조하셨는지를.”(시편 89:48) 부상자들마저 취조했다는 옛 국군 광주병원 폐허 속에 성경의 시편을 담은 라틴어 합창곡이 고조됐다. 객석에서 낮은 흐느낌이 들려왔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작 '둥글고 둥글게'
장민승 연출·정재일 음악감독 광주서 첫 베일
올해 5·18 기념식 울린 '내 정은 청산이오' 확장
"돌고 돌아 제자리걸음 같은 세상 허망함 담았죠"

올해 제40회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80년 광주를 위로했던 25분여 헌정 영상 ‘내 정은 청산이오’를 100분으로 확장‧변주한 후속작 ‘둥글고 둥글게(Round and Around)’가 29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첫 공개됐다. 단 하루 3회차 상영은 좌석 간 거리 두기 속에 모두 매진된 터. 조각‧사진‧영상 등을 넘나든 데 이어 이번 영상을 맡은 장민승(41) 작가와 ‘옥자’ ‘기생충’ 등 영화‧뮤지컬 음악으로도 이름난 음악감독 정재일(39)을 첫 상영 직후 만났다.  
 

정재일 "독일이 아우슈비츠 잊지 않듯…기억하게 하려 했죠"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로 협업한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 음악감독(왼쪽부터).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로 협업한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 음악감독(왼쪽부터).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어릴 적 록음악을 하며 만나 올해로 25년 지기인 두 사람은 2009년 옛 기무사령부 터에서 열린 ‘A.인터미션’ 전시로 협업을 시작했다. 파도치는 검은 바다를 응시한 영상으로 에르메스 미술상을 차지한 ‘보이스리스’(2014), 1000일간 한라산의 혹독한 풍광을 담은 ‘오버 데어’(2018) 등 협업한 작품마다 세월호, 4‧3사건 등을 위령하는 듯하다 평가받은 둘의 시선이 이번엔 그날의 광주에 머물렀다.  
‘내 정은 청산이오’는 국가보훈처로부터 ‘님을 위한 행진곡’ 재해석 공연을 요청받은 정 음악감독이 음악에 뮤직비디오를 더하듯 작업했다면 ‘둥글고 둥글게’는 장 작가의 영상이 중심이 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번 기획‧제작에 나섰다.  
“저는 광주를 가까이 듣고 성장했어요. 당시 아버지도 5‧18 직전에 끌려갔고 주위에 그런 분들이 많아 오히려 회피하고 싶었지만 그런 슬픔과 허망함에 관한 생각은 이어졌죠(그의 아버지는 80년대 서울대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5‧18을 처음 다룬 대중영화 ‘꽃잎’을 감독한 장선우다). 정재일과 40주년 기념작품을 하게 되며 뭔가 이끌림과 책무를 느꼈어요. 은유적 방식을 택해온 전작들과 달리 정면돌파해야겠다, 다짐했죠.”(장민승 작가)
“음악을 일찍 시작하면서 김민기 등 민주화 운동을 하던 예술가와 교류가 있었어요. 망월동 묘지에서 기타를 치기도 했고요. 보훈처 의뢰를 받곤 한국 현대사의 어마어마한 사건에 대한 헌정을 저 같은 조무래기가 해도 될까, 마음이 무거웠죠. 8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할까, 생각했고 아무도 잊지 않게끔, 드라마가 느껴지게 하려 했죠. 독일은 아우슈비츠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지금의 독일이 됐고, 일본은 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이 됐잖아요. 저한테 중요한 건 다음 세대가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었어요.”(정재일 음악감독)
 

장민승 "영상 속 전두환·이명박 전 대통령…제자리인 듯한 허망함"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포스터.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포스터.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둥글고 둥글게’란 제목의 의미는.  
장 작가: “80년대는 둥글게, 둥글게 살지 않으면 붙들려 가서 어떻게 되는 시대였고 반대로 지금은 사람들이 조금의 피해도 못 견디고 개인적인 분노에 가득 차 예민하잖나. 조금 둥글게, 둥글게, 그런 모습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했다. 전두환‧이명박 전 대통령 모습도 기록영상에 나오는데, 역할을 주고받으며 돌고 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이 있었지만, 여전히 노동자들이 제일 많이 일하다 다치고 죽는 나라잖나. 한참 나아간 것 같은데 결국은 돌고 돌아 제자리인 듯한 허망함도 느꼈다.”
 
‘내 정은 청산이오’의 광주 장면과 연결되면서도 80년대 전반을 역순으로 되짚는 기록영상을 더해 확장했다.  
장 작가: “광주 이야기를 하려면 광주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광주가 처참할 때 서울은 평온했다. 당시 광주에서 서울로 피신해온 사람의 일기를 보면 ‘서울은 어떻게 이렇게 평온할까. 무심하기도 하다’고 썼더라. 시간을 88년부터 뒤로 돌려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5‧18 당시도 처음 시가전이 촉발된 전남대 정문 앞에서 계엄군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사람이 생길지 예측 못 하는 얼굴들, 평화롭고 축제 같은 분위기로 거슬러 올라가서 보는 게 (당시의 실상을 파악하기에) 더 알맞지 않을까. 당시 기록영상 중엔 시위대에 몰래 침투해서 찍은 것도 있었다. 지난 군부정권이 미디어를 이용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선동하고 사실을 왜곡하려 했는지. 그런 선동을 위한 자료들을 이번 영상엔 정반대 지점에서 사용했다. 그렇게 광주를 지나쳐 1979년 부마항쟁 때까지 담았다.”
 

"광주에 대한 예술적 경험 제 아버지의 '꽃잎'도 못 미쳐" 

29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둥글고 둥글게' 상영 현장. 80년 광주의 상흔을 담은 폐허 장면 이후 암전된 스크린 앞 무대로 점점이 늘어나는 조명이 마치 방금 전의 영상 속 폐허에서 걸어나온 영령들처럼 느껴진다. [사진 '둥글고 둥글게']

29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둥글고 둥글게' 상영 현장. 80년 광주의 상흔을 담은 폐허 장면 이후 암전된 스크린 앞 무대로 점점이 늘어나는 조명이 마치 방금 전의 영상 속 폐허에서 걸어나온 영령들처럼 느껴진다. [사진 '둥글고 둥글게']

장 작가는 “그간 광주에 대해선 가르치려 하고 너무 영웅주의, 드라마틱한 서사, 때론 과장된 것들이 너무 많이 만들어졌다”면서 “왜 예술적 경험으로 떠올릴만한 게 없을까, 심지어 제 아버지가 만든 ‘꽃잎’도 거기 미치지 못했다”고 했다. “건조하고 여백이 많을수록 개개인의 기억이나 이 사건에 대한 생각이 스며들 공간이 생긴다고 생각해 특히 광주 부분은 비우는 작업을 많이 했다”고 강조했다.
 
정 음악감독은 “음악적으론 처음 중간중간 기괴하고 무자비한 소리를 시도했다”고 했다. 80년대 상흔 위에 쌓아 올린 올림픽 매스게임 장면이 “굉장히 끔찍하게 느껴졌다”면서다. “여러 음악적 대조를 주길 원했고 더 무자비한 사운드와 천상의 음악 같은 합창이 아주 상반되게 들리길 바랐어요.”
 
계엄군에 폭도로 규정된 광주 시민들이 고통받은 옛 국군 광주병원, 옛 광주교도소의 잡목이 우거진 폐허에 두 사람이 직접 머물며 느낀 정조도 새겼다. “국군병원은 차갑고 묘한 곳이었다. 그런 파편, 편린을 주워 담아 피아노 앞에 앉았다”고 정 음악감독은 말했다. 병원 장면에 이어 암전된 화면 앞 무대로 점점이 배치한 조명은 아직도 폐허를 떠나지 못한 영혼들이 스크린 속에서 걸어 나와 무대에 서는 듯한 느낌도 준다. 민주화 시위 장면에선 객석을 향해 취조실의 전기불 같은 강한 조명을 비추기도 한다.  
 
“저는 미술 하는 사람이어서 영상을 통해 보고 듣는 경험이 (상영) 공간에 어떻게 재현되느냐까지가 끝”이라는 장 작가는 “빛의 속성처럼 사라진 것은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다”며 “억울하게 죽임 당한 이들에 대한 기억을 빛으로 형상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시편 중 계엄군에 쫓겨 죽어가던 이의 기도 같은 구절 골랐죠"

'둥글고 둥글게'엔 옛 국군 광주병원, 구 광주교도소의 텅 빈 지금 모습도 담겼다. 무성하게 자리를 지킨 초목이 군사정권 시절 금지곡 '님을 위한 행진곡'의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는 가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둥글고 둥글게'엔 옛 국군 광주병원, 구 광주교도소의 텅 빈 지금 모습도 담겼다. 무성하게 자리를 지킨 초목이 군사정권 시절 금지곡 '님을 위한 행진곡'의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는 가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시편을 떠올린 건 “간곡하고, 주님께 탄원하고 상소하는 것 같기도 해서”라 돌이켰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돌아가시기 전 ‘주님 저를 버리셨습니까’ 말하곤 숨을 거뒀다가 부활하셨잖아요. 광주를 논리적, 역사적으로 이해 못 해도 뭔가 느끼고 기억하면 좋겠다. 그래서 시편 중 마치 계엄군에 쫓기고 상처 나고 죽어갔던 누군가의 기도처럼 느껴지는 30편을 골랐고, 음악감독이 최종적으로 12편을 골랐죠.”
 
정 음악감독이 ‘옥자’에 이어 헝가리 ‘부다페스트 스코어링 오케스트라 & 콰이어’와 호흡 맞춘 시편 합창 15곡, 오케스트라 15곡이 국악 소리꾼 정은혜의 음성과 어우러진 대목들은 신묘한 위로처럼 다가온다. 정 음악감독은 “어떤 실 같은 목소리, 하나로 꿰어줄 수 있는 흐느낌이 있으면 좋겠다, 무녀의 느낌을 떠올렸는데 정은혜의 오열이랄지, 한국적인 시김새가 있는 목소리가 고대 유럽에서 온 듯한 음악과 잘 어울렸다”면서 “정은혜 씨가 먼저 녹음한 합창 음악을 듣고 저의 즉흥연주에 맞춰 즉흥으로 소리한 것”이라 돌이켰다. 이번 음악은 LP로도 발매할 예정이라고 장 작가는 귀띔했다.
 
‘둥글고 둥글게’는 오는 5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오후 2시, 6시 총 2회 무료로 공연한다. 3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매가 열린다.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장면. 5월 광주부터 88서울올림픽까지 80년대 한국사회를 조망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장면. 5월 광주부터 88서울올림픽까지 80년대 한국사회를 조망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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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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