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 음악감독이 선보인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5월 광주부터 88서울올림픽까지 80년대 한국사회를 조망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1/30/76efffe6-de0c-4ddb-9510-0feb5baa3530.jpg)
올해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 음악감독이 선보인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5월 광주부터 88서울올림픽까지 80년대 한국사회를 조망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기억하소서, 제 인생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당신께서 모든 사람을 얼마나 헛되이 창조하셨는지를.”(시편 89:48) 부상자들마저 취조했다는 옛 국군 광주병원 폐허 속에 성경의 시편을 담은 라틴어 합창곡이 고조됐다. 객석에서 낮은 흐느낌이 들려왔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작 '둥글고 둥글게'
장민승 연출·정재일 음악감독 광주서 첫 베일
올해 5·18 기념식 울린 '내 정은 청산이오' 확장
"돌고 돌아 제자리걸음 같은 세상 허망함 담았죠"
정재일 "독일이 아우슈비츠 잊지 않듯…기억하게 하려 했죠"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로 협업한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 음악감독(왼쪽부터). [사진 한국영상자료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1/30/b6223f8e-2193-46cd-8903-2f80db849f89.jpg)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로 협업한 장민승 작가와 정재일 음악감독(왼쪽부터).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내 정은 청산이오’는 국가보훈처로부터 ‘님을 위한 행진곡’ 재해석 공연을 요청받은 정 음악감독이 음악에 뮤직비디오를 더하듯 작업했다면 ‘둥글고 둥글게’는 장 작가의 영상이 중심이 됐다. 한국영상자료원이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번 기획‧제작에 나섰다.
“저는 광주를 가까이 듣고 성장했어요. 당시 아버지도 5‧18 직전에 끌려갔고 주위에 그런 분들이 많아 오히려 회피하고 싶었지만 그런 슬픔과 허망함에 관한 생각은 이어졌죠(그의 아버지는 80년대 서울대에서 학생운동을 했고 5‧18을 처음 다룬 대중영화 ‘꽃잎’을 감독한 장선우다). 정재일과 40주년 기념작품을 하게 되며 뭔가 이끌림과 책무를 느꼈어요. 은유적 방식을 택해온 전작들과 달리 정면돌파해야겠다, 다짐했죠.”(장민승 작가)
“음악을 일찍 시작하면서 김민기 등 민주화 운동을 하던 예술가와 교류가 있었어요. 망월동 묘지에서 기타를 치기도 했고요. 보훈처 의뢰를 받곤 한국 현대사의 어마어마한 사건에 대한 헌정을 저 같은 조무래기가 해도 될까, 마음이 무거웠죠. 80년대 이후 태어난 사람으로서 어떻게 할까, 생각했고 아무도 잊지 않게끔, 드라마가 느껴지게 하려 했죠. 독일은 아우슈비츠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지금의 독일이 됐고, 일본은 잊으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지금의 일본이 됐잖아요. 저한테 중요한 건 다음 세대가 기억하도록 하는 것이었어요.”(정재일 음악감독)
장민승 "영상 속 전두환·이명박 전 대통령…제자리인 듯한 허망함"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포스터. [사진 한국영상자료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1/30/1819bd25-6fc5-40ba-ab26-5030c6b720bc.jpg)
공연융합영상 프로젝트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포스터.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 ‘둥글고 둥글게’란 제목의 의미는.
- ‘내 정은 청산이오’의 광주 장면과 연결되면서도 80년대 전반을 역순으로 되짚는 기록영상을 더해 확장했다.
"광주에 대한 예술적 경험 제 아버지의 '꽃잎'도 못 미쳐"
![29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둥글고 둥글게' 상영 현장. 80년 광주의 상흔을 담은 폐허 장면 이후 암전된 스크린 앞 무대로 점점이 늘어나는 조명이 마치 방금 전의 영상 속 폐허에서 걸어나온 영령들처럼 느껴진다. [사진 '둥글고 둥글게']](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1/30/c8b85bb4-f6fe-4e52-b8eb-86d8e89ec23e.jpg)
29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둥글고 둥글게' 상영 현장. 80년 광주의 상흔을 담은 폐허 장면 이후 암전된 스크린 앞 무대로 점점이 늘어나는 조명이 마치 방금 전의 영상 속 폐허에서 걸어나온 영령들처럼 느껴진다. [사진 '둥글고 둥글게']
정 음악감독은 “음악적으론 처음 중간중간 기괴하고 무자비한 소리를 시도했다”고 했다. 80년대 상흔 위에 쌓아 올린 올림픽 매스게임 장면이 “굉장히 끔찍하게 느껴졌다”면서다. “여러 음악적 대조를 주길 원했고 더 무자비한 사운드와 천상의 음악 같은 합창이 아주 상반되게 들리길 바랐어요.”
계엄군에 폭도로 규정된 광주 시민들이 고통받은 옛 국군 광주병원, 옛 광주교도소의 잡목이 우거진 폐허에 두 사람이 직접 머물며 느낀 정조도 새겼다. “국군병원은 차갑고 묘한 곳이었다. 그런 파편, 편린을 주워 담아 피아노 앞에 앉았다”고 정 음악감독은 말했다. 병원 장면에 이어 암전된 화면 앞 무대로 점점이 배치한 조명은 아직도 폐허를 떠나지 못한 영혼들이 스크린 속에서 걸어 나와 무대에 서는 듯한 느낌도 준다. 민주화 시위 장면에선 객석을 향해 취조실의 전기불 같은 강한 조명을 비추기도 한다.
“저는 미술 하는 사람이어서 영상을 통해 보고 듣는 경험이 (상영) 공간에 어떻게 재현되느냐까지가 끝”이라는 장 작가는 “빛의 속성처럼 사라진 것은 아무리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다”며 “억울하게 죽임 당한 이들에 대한 기억을 빛으로 형상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시편 중 계엄군에 쫓겨 죽어가던 이의 기도 같은 구절 골랐죠"
!['둥글고 둥글게'엔 옛 국군 광주병원, 구 광주교도소의 텅 빈 지금 모습도 담겼다. 무성하게 자리를 지킨 초목이 군사정권 시절 금지곡 '님을 위한 행진곡'의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는 가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1/30/f2619799-aa00-4662-9083-fcb4d6a3d735.jpg)
'둥글고 둥글게'엔 옛 국군 광주병원, 구 광주교도소의 텅 빈 지금 모습도 담겼다. 무성하게 자리를 지킨 초목이 군사정권 시절 금지곡 '님을 위한 행진곡'의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는 가사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정 음악감독이 ‘옥자’에 이어 헝가리 ‘부다페스트 스코어링 오케스트라 & 콰이어’와 호흡 맞춘 시편 합창 15곡, 오케스트라 15곡이 국악 소리꾼 정은혜의 음성과 어우러진 대목들은 신묘한 위로처럼 다가온다. 정 음악감독은 “어떤 실 같은 목소리, 하나로 꿰어줄 수 있는 흐느낌이 있으면 좋겠다, 무녀의 느낌을 떠올렸는데 정은혜의 오열이랄지, 한국적인 시김새가 있는 목소리가 고대 유럽에서 온 듯한 음악과 잘 어울렸다”면서 “정은혜 씨가 먼저 녹음한 합창 음악을 듣고 저의 즉흥연주에 맞춰 즉흥으로 소리한 것”이라 돌이켰다. 이번 음악은 LP로도 발매할 예정이라고 장 작가는 귀띔했다.
‘둥글고 둥글게’는 오는 5일 서울 상암동 한국영상자료원에서도 오후 2시, 6시 총 2회 무료로 공연한다. 3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에서 사전 예매가 열린다.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장면. 5월 광주부터 88서울올림픽까지 80년대 한국사회를 조망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https://pds.joins.com/news/component/htmlphoto_mmdata/202011/30/93160ab3-a412-477a-bf5c-f8b0ed184f20.jpg)
'둥글고 둥글게 Round and Around' 장면. 5월 광주부터 88서울올림픽까지 80년대 한국사회를 조망했다. [사진 한국영상자료원]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