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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시기 이란 핵과학자 테러 사망..."바이든에 찬물 뿌렸다"

이란의 핵 개발을 이끌어 온 최고위급 과학자 모센 파크리자데가 27일(현지시간) 총격에 의해 사망한 사건의 파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바이든-이란 협상 무력화하려는 테러 분석도

이란 당국은 이번 암살의 배후로 최대 적성국인 이스라엘을 지목하고 이란 지도부까지 나서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이에 이스라엘은 해외 자국 대사관에 경계를 유지하도록 지시했다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 등이 보도했다.
 
암살당한 모센 파크리자데의 관이 29일(현지시간) 이란 이맘 레자 성지에서 운반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암살당한 모센 파크리자데의 관이 29일(현지시간) 이란 이맘 레자 성지에서 운반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암살 사건으로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출범 전부터 대이란 외교에서 난관에 부딪혔다. 뉴욕타임스(NYT)는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공언해 온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복귀가 힘들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스라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취임 후 이란과 핵합의에 관한 협상을 시작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아직 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블룸버그 통신은 파크리자데 암살 사건이 지난 1월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를 암살했을 때처럼 이란 대중의 분노를 촉발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유엔(UN) 등 국제사회는 테러 행위를 규탄하면서 당사국들에 자제를 촉구했다.
 

암살은 어떻게 발생했나

이란 파르스 통신, BBC 등 외신에 따르면 파크리자데는 지난 27일(현지시간) 테헤란 동쪽 소도시 아브사르드에서 매복 테러 공격을 받고 숨졌다. 보도에 따르면 그는 당시 차량 이동 중이었는데, 차량 인근의 한 트럭에서 폭발물이 터졌다. 폭발 직후 무장 괴한 3~4명이 차량에 총격을 가했다. 파크리자데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숨졌다.
 
이란 국방부는 이날 성명을 통해 "테러리스트들이 파크리자데가 타고 있던 차량을 습격했다"면서 "테러리스트들과 파크리자데 경호원들 사이에 충돌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파크리자데가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이 충돌에서 테러리스트로 추정되는 3~4명 역시 살해됐다고 파르스 통신은 전했다.
 
BBC 등은 이란의 핵 과학자가 암살되는 사건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발생했고, 이란 정부는 그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해왔다고 보도했다.
 
27일 테러 공격을 당한 파크리자데의 차량. [로이터=연합뉴스]

27일 테러 공격을 당한 파크리자데의 차량. [로이터=연합뉴스]

왜 발생했나  

이번 파크리자데 암살 사건은 이란이 핵합의에서 약속한 핵 프로그램 동결·축소 이행 범위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와중에 발생했다.
 
2015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란이 핵 개발을 제한하는 대신 미국이 대이란 경제 제재를 완화하는 핵합의를 체결했다. 이 합의에는 영국·프랑스·독일·러시아·중국도 동참했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일방적으로 핵합의에서 탈퇴했다. 이후 미국은 대이란 제재를 대부분 복원했고, 이란은 핵합의 내용을 지키지 않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2018년 기자회견에서 파크리자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2018년 기자회견에서 파크리자데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부통령이었던 바이든 당선인은 핵합의에 복귀할 것이라고 밝혀왔다. 이에 지난 22일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과거의 핵합의로 돌아갈 수 없다"면서 미국의 핵합의 복귀 움직임에 반대하고 나섰다.
 
반면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은 25일 "미국과 이란은 양국 관계를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전 상황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에 기대감을 표명했다.
  
NYT는 미 정부 관리와 정보 당국 관계자가 파크리자데 암살 배후에 이스라엘이 있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어 이스라엘은 이런 의혹에서 벗어나기 위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이란의 주요 핵 과학자를 제거하는 한편, 이란을 자극해 긴장 상태를 고조시켜 차기 바이든 정부와 이란과의 화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는 전략 같다"고 분석했다.
   

파크리자데는 누구    

"그 이름을 기억하라. 파크리자데"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2018년 기자회견에서 이같이 말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란의 비밀 핵무기 개발 계획에 관한 방대한 자료를 입수했다고 밝히면서 이 프로그램의 책임자로 파크리자데를 지목했다.
 
모센 파크리자데의 생전 모습. [AP=연합뉴스]

모센 파크리자데의 생전 모습. [AP=연합뉴스]

파크리자데는 핵 과학자이자 이란 국방부의 연구 혁신 기구 수장이었다. 서방 정보기관들은 그가 민간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가장해 핵탄두를 개발하는 프로그램을 비밀리에 진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1999~2003년 이란이 진행한 핵무기 개발 계획인 '아마드 프로젝트'를 주도했다고 외신은 전했다. 한 서방 외교관은 2014년 로이터통신에 "만약 이란이 농축액을 핵 무기화에 사용한다면, 파크리자데가 이란 핵폭탄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란 내에선 파크리자데를 '이란의 로버트 오펜하이머'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미국이 2차 세계대전 당시 인류 최초의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진행한 비밀 연구)'의 연구책임자다.  
 

이란·이스라엘·미국 반응은  

이란 지도부는 암살 배후로 이스라엘을 지목하며 보복을 다짐했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28일 트위터를 통해 "이란의 모든 관련 당국은 이 범죄를 조사하고 가해자와 지휘관들을 단호하게 처벌해야 한다. 또 순교자(파크리자데)가 활동했던 모든 분야에서 과학과 기술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로하니 대통령도 전날 성명에서 “‘세계적인 오만함’의 사악한 손이 시오니스트를 용병으로 이용했고, 그로 인해 피에 물들었다”고 비난했다. 이는 이스라엘이 미국의 용병 역할을 수행해 파크리자데를 암살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풀이된다. 모하메드 바게리 이란 육군참모총장, 호세인 살라미 혁명수비대 총사령관, 에브라힘 라이시 사법부 수장 등도 보복을 경고했다. 
 
 
이란 대법원장 아야톨라 에브라힘 라이시 등이 파크리자데의 유가족을 조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 대법원장 아야톨라 에브라힘 라이시 등이 파크리자데의 유가족을 조문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아직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바이든 인수위원회 측도 역시 아직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파크리자데의 사망 소식을 전한 NYT 기사를 코멘트 없이 리트윗했다. 존 브레넌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트위터를 통해 "이것은 범죄 행위이자 매우 무모한 짓"이라면서 "치명적인 보복과 새로운 지역 내 갈등을 불러올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유엔 관계자는 AFP통신에 "그 지역의 갈등 고조로 이어질 수 있는 어떠한 행동도 피할 필요성과 자제를 촉구한다"면서 "우리는 암살 또는 초법적 살해를 규탄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의 대외관계청 대변인은 이번 암살에 대해 "이는 범죄 행위이자 인권 존중 원칙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규탄했다.
 

미·이란·이스라엘 관계 전망은 

파크리자데 암살은 바이든 당선인이 핵합의 복원을 본격 추진하기도 전에 이런 노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NYT는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이 이번 암살의 주요 목적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로버트 말리 국제위기그룹(ICG) 대표는 "트럼프 정부의 전략은 남은 시간을 이용해서 최대한 이란과 외교를 재개하기 어렵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NYT는 이번 암살이 어떤 동기였던 간에 바이든 인수위는 정부 출범 전 7주 이내에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고 전했다. 또 미국이 이란 핵합의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이란의 대응에 달렸다고 진단했다.
 
만약 이란이 이번 암살에 대한 보복에 나선다면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복 공격의 빌미를 줘 미국과 이란 관계는 악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파크리자데 암살에 분노한 이란 시민들이 미국과 이란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EPA=연합뉴스]

파크리자데 암살에 분노한 이란 시민들이 미국과 이란 국기를 불태우고 있다. [EPA=연합뉴스]

하지만 이란이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미국과의 관계가 악화할 정도의 보복엔 나서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이희수 교수는 "이란의 보복은 바이든 정부의 이란 핵합의 타결에 걸림돌이 될 텐데 이런 상황에 말려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이란의 핵 과학자 암살은 여러 차례 발생해왔다. 이란은 공식적으로 보복을 시사하고 있고, 아마 그냥 넘어가진 않겠지만, 그 수위가 미국 여론을 악화할 시킬 정도는 아닐 것"이라고 전망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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