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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데이 칼럼]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남자가 진심으로 부러웠던 장면이 있었다. 중국 드라마를 하나 본 적이 있는데, 나이만 먹은 철없는 중년의 남자에게 어느 날 16세 소년이 아들이라며 찾아와 자신을 부양하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되는 드라마였다. 여자는 자기가 낳아야 자기 자식이다 보니 엄마가 모르는 아이는 없는데, 남자는 이렇게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자식이 나타나는 ‘횡재’도 할 수 있다니….
 

몇 년 전만 해도 거부감 강했던
비혼 출산에 우호적 반응 늘어
2030 절반 넘게 결혼 원치 않아
비혼 시대 맞는 열린 관점 필요

내겐 비혼의 전문직 여성 선후배와 친구들이 꽤 있다. 사회적 지위도 탄탄하고, 열정적으로 사는 이들이다. 한데 그들과 오랜 세월을 함께 하면서 풀 수 없었던 문제가 바로 자녀를 갖고 싶은 꿈을 처리하는 일이었다. 나이 마흔을 앞둔 시점은 ‘중대 고비’다. 이즈음엔 많은 이들이 자녀를 갖고 싶은 욕망에 흔들린다. ‘결혼은 할 생각이 없는데 아이는 갖고 싶다’는 열망. 그들은 한동안 ‘내 아이’에 대한 꿈으로 고민을 하고,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결국은 꿈을 포기하는 수순을 밟았다.
 
더러는 입양을 하려고 애를 쓰기도 한다. 한 지인은 몇몇 입양기관과 수녀원 부설 보육원에서 오랫동안 봉사활동을 하면서 애를 썼지만 입양엔 실패했다. 우리나라에선 미혼인 경우에는 입양하기 어렵다는 것도 그때 알게 됐다. 배우자 없는 여성이 아이를 갖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게 어렵다.
 
최근 화제가 된 방송인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을 보며, 똑같은 꿈을 가졌으나 좌절했던 친우들이 떠올랐다. 그녀가 출산한 방식, 정자은행에서 기증받은 정자로 아이를 낳는 것은 과거에도 유명 방송인이 실행해 알려진 방식이기도 하다. 기술적으로도 법적으로도 가능한 일이다. 체외수정과 같은 ‘보조생식술’은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고, 미혼자에게 정자기증을 막는 법조항이 없으니 불법도 아니다. 물론 법보다 의료계의 윤리 기준이 더 높고 까다로워 문턱이 높긴 하다. 그래도 의지만 있으면 길은 있다.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들은 기혼과 미혼을 가리지 않고 인공수정으로 출산하는 데에 법적 제한이 없고, 아예 여성이라면 누구나 체외수정을 할 수 있도록 생명윤리법을 제정한 나라도 있다. 이런 나라에 가서 인공 수정을 통해 임신할 수 있는 길은 얼마든지 열려 있다.
 
선데이 칼럼 11/28

선데이 칼럼 11/28

이처럼 환경은 갖춰져도 선뜻 실행하지 못하는 것은 기술이나 법과 같은 물리적 조건 때문이 아니다. 엄두를 내지 못해서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 사회의 준비 부족, 혹은 전근대적 의식과 문화 환경 탓이다. 가족 해체가 급속히 진행되는 지금도 여전히 강고한 가족중심주의. 실제로 우리나라 출산 구조는 세계적으로도 독보적인 면모를 보인다. 혼외출산율 1%대. 세계에서 가장 낮다. 유럽 국가들의 경우 혼외출산이 절반 안팎인 점과 비교하면 비현실적으로도 보인다.
 
우리 사회에선 여전히 혼인 관계로 엮인 가족제도를 유지하려는 맹렬한 의지가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런 맹렬함은 사회적으로 혼외 출산에 대한 비난과 불안을 조성하고 다른 형태의 가족에겐 위협적인 사회문화를 만들며, 이로 인해 비혼자들에게 출산의 엄두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환경을 만든다. 이번에도 ‘아빠 없는 아이가 겪게 될 불이익’ ‘정서적 문제’를 거론하며 이기적 출산이라는 지적은 어김없이 나왔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반응의 양상이 달라지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마음에 드는 접근은 아니지만 일각에선 저출산 시대의 ‘대안적 출산’이라는 기능적 장점을 찾아내기도 했다. 정치권에선 확산·장려할 일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는 한편으론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제도개선의 목소리도 나온다. 누리꾼의 반응은 주목할 만하다. 사유리 씨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가족의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사회 분위기의 변화를 요구한다. 가족 패러다임의 변화 조짐이 보인다는 거다.  
 
이제 우리 사회도 전통적 가족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다양한 가족 구성이  전개되는 사회로 전환할 거라는 조짐 말이다. 실제로 이런 조짐은 일찍이 나타나고 있었다. 한 예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통계청 사회조사를 분석한 최근의 연구결과를 보면, 비혼 출산에 동의하는 30대 여성은 2018년 38.1%, 남성은 38.4%였다. 이보다 2년 앞선 2016년 조사에서 여성 29.8%, 남성 35.1%였다. 2030을 대상으로 한 각종 조사에선 결혼을 안 하겠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어선다. 실제로 대중문화에서도 ‘로맨스’의 상품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젊은 세대부터 시작된 의식 변화의 속도와 폭은 매우 빠르고 크다.  
 
장려하지 않아도 비혼, 비혼 가족, 비혼 출산이 조만간 큰 트렌드가 될 조짐은 이렇게 도처에서 드러난다. 비혼 출산이 곧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공여받아 아이를 낳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혼 가족의 사례는 다양하다.
 
시대의 변화는 한번 방향을 잡으면 막을 수도 되돌릴 수도 없다. 조짐이 보이면 우리는 준비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연착륙하려면 말이다. 혼인 관계의 가족을 정상으로 보는 시각만 거두면 비혼 가족도 정상이 된다. 이제 우리는 전통적 가족관을 고수하던 그 맹렬함을 ‘결혼하지 않는’ 새로운 가족의 시대를 정착시키는 데로 돌릴 때가 됐다. 생각을 바꿔야 할 시점이 바로 지금이다.
 
양선희 대기자/중앙콘텐트랩 대학평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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