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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예술] 그리는 일과 산다는 일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이른 새벽, 수탉을 품에 안은 채 과일 바구니와 아이를 이고 업고 장터로 향하는 여인들이 있다(사진). 켜켜이 색점을 쌓아 만든 반추상의 화면을 뚫고 생생히 전해져오는, 가정을 책임진 여성들의 당당함, 그 삶의 엄숙함 앞에서 우리는 작가 박래현(1921~1976)의 삶을 떠올리게 된다. 청각장애 화가 운보 김기창의 헌신적 아내였고 네 자식을 양육한 어머니였으나, 화가로서는 동양화의 경계 허물기를 위해 과감한 도전과 실험을 멈추지 않았던 박래현. 그녀의 (반)추상 작품과 태피스트리, 판화와 도자를 아우르는 130여 점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박래현, 삼중 통역자’전(덕수궁 국립현대미술관, 2021년 1월 3일까지)에서 선보이고 있다.
 
박래현은 1960년대 후반 종이를 구긴 후 그 위에 묵필을 문지르거나, 안료에 아교·크레용·테레핀 등을 섞어 번지게 하는 추상작업에 집중했다. 홍색·황색 안료와 삼투된 먹이 건조되면서 만들어진 섬세한 층들은 ‘손(붓)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보여주며 동·서양화의 구분을 초월한 아름다운 색의 뉘앙스를 만들어낸다.
 
박래현, 이른 아침, 1956년, 종이에 채색, 개인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박래현, 이른 아침, 1956년, 종이에 채색, 개인 소장.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작품과 함께 눈길을 끄는 것은 전시장 한 켠에 마련된 그녀의 수필들이다. 그 행간에는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신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현모양처라는 사회적 자아로 내리누르며, 일과 가정의 균형을 꾀했던 그녀의 안간힘이 배어있다. 또한 "가까운 생활주변에서 소재를 찾으며, 대중과 감정이 교류되는 예술”을 희망하던 박래현은 삶 속에 예술을 구현하는 생활예술자이기를 자처하며 수공예에 주목했다. 커튼 고리나 하수구 마개 등 생활재료를 혼합해 제작한 태피스트리에는 직물의 조직을 그대로 노출함으로써 ‘손의 노동(작업) 과정’을 여실히 드러냈으며, 고대인의 삶의 흔적으로서 수공예품에 경도돼 떡살과 목기, 남미의 고대 토기를 수집했고 이를 판화작업과 도자의 문양으로 재탄생시켰다.
 
김기창을 포함한 대다수의 동양화가들이 1970년대 민족문화 중흥의 기치 아래 추상으로부터 전통회화로 회귀했을 때도 그녀는 뚝심 있게 추상을 밀고나갔다. 49세의 나이에 뉴욕에 7년간 유학하며 첨단의 판화기법을 습득해 국내에 소개하고, "예술과 상반된 단어로만 알았던 기술이 예술성을 깊게해준다”며 예술과 기술의 조화를 추구했다. 원판에 올이 풀린 거즈와 실을 드문드문 올린 후 찍어 낸 콜라그래피 작품은 판화의 평면성에 도전하며 수공과 기술의 조화를 구현한 훌륭한 예다.  
 
산업화와 기계화의 시대였던 1960~70년대 한국에서 수공예의 가치를 재발견하여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동양화의 영역으로 확장한 박래현의 작품들은 ‘손의 문명’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주현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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