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년 만에 재출시된 다이애니비의 검은 양 무늬 스웨터. 최근 방영된 넷플릭스 드라마 '더 크라운'에 다이애나비가 등장하면서 그의 패션이 다시 한 번 화제가 되고 있다. 사진 웜앤원더풀 인스타그램

현재 주문하면 내년 2~3월에 배송될 정도로 주문량이 폭주했다. 사진 로잉 블레이저스 홈페이지
다이애나, 복고 트렌드의 중심에 서다

드라마 '더 크라운'에 등장한 다이애나비(배우 엠마 코린)의 모습. 분홍색 체크 바지가 눈길을 끈다. 사진 넷플릭스

드라마 속 의상과 같은 옷을 입은 다이애나비의 모습. 사진 중앙포토
비단 드라마의 영향만은 아니다. 다이애나가 90년대에 입었던 오버사이즈 스웨트셔츠와 몸에 달라붙는 바이커 반바지는 지난해부터 애슬레저 스타일(일상 운동복 차림)의 정석으로 통한다. 패션 매거진 보그 파리는 2019년 8월호에 모델 헤일리 비버와 함께 다이애나비를 오마주한 패션 화보를 실었다. 대학 로고가 박힌 커다란 스웨트셔츠, 바이커 반바지, 발목 위까지 올라오는 스포츠 양말에 운동화를 신은 다이애나비의 룩이 그대로 재현되었다.

모델 헤일리 비버(오른쪽)가 다이애나비의 패션을 오마주한 패션 화보. 사진 보그 파리 인스타그램
30년 전 디자인 그대로 가져와 판다

'게스'는 자체 인증 빈티지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과거 제품을 매입해 재판매하고 있다. 사진 미국 게스 인스타그램
현재 패션계에서 ‘복각(reproduction)’은 큰 이슈다. 약간의 현대적 재해석을 더한 것도 있지만 대부분 디자인 콘셉트와 형태, 분위기는 과거의 것을 그대로 복원했다고 할 만큼 비슷하다. 패션 브랜드 ‘타미힐피거’는 지난 10월 90년대 타미힐피거 스타일을 재해석한 ‘타미진스스트리트 아카이브 컬렉션’을 출시했다. 레트로 스타일의 럭비 셔츠, 로고를 부각한 집업 후드 등 90년대 인기를 끌었던 스타일을 재현했다는 설명이다. 과거 아카이브에서 제품 하나를 끌어와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사례는 너무 많아 일일이 거론하기 어려울 정도다.
왜 과거 디자인일까
간호섭 홍익대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과거를 겪지 않은 젊은 세대도 90년대 스타일에 열광하는 것은 복고 문화가 낯설면서도 그 자체로 ‘힙’하기 때문”이라며 “디지털 세대가 LP판을 모으고 아이돌 가수가 한정판 카세트테이프를 내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라고 설명했다. 어디선가 보긴 봤지만 실제로 겪어보지 못한 세대가 과거의 스타일을 신기해하고 독특하게 받아들인다는 얘기다. 게다가 과거 제품을 구하기도 쉽다. 황학동 구제 숍에 가지 않아도 인터넷 검색만으로 구매가 가능하고,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할 수도 있다.
패션 평론가이자 패션 전시 기획을 하는 김홍기씨는 요즘 브랜드들이 복각에 몰두하는 이유를 “브랜드 스스로 존재감을 부각하기 위한 전략”이라고 해석했다. 그만큼 역사가 오래된 브랜드라는 점을 과시하는 동시에 마케팅에 서사를 부여하려는 의도라는 것. 김 평론가는 “특히 80년대와 90년대로 회귀하려는 속성은 당시가 ‘브랜드’ 개념이 성립된 초기라서 복원할 만한 원형의 디자인이 가장 많이 존재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새것보다는 오래되고 낡은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분위기는 현재 패션 업계의 거대한 흐름인 ‘지속가능성’과도 연관된다. 간호섭 교수는 “환경을 고려하는 가치 소비가 ‘쿨’한 문화로 인식되면서 오래되고 귀한 것은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입고, 내가 입지 않으면 판매도 하는 빈티지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지연 기자 yoo.jiyoe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