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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11월 수상작

〈장원〉

연탄꼬리 지느러미  
-손창완
 
해파리에 쏘인 듯 파르르 떨고 있는
난생처음 배달봉사 연탄을 드는 날은 
 
앞서 간 언덕 구비가
서들러 길을 냈다 
 
뒤꿈치 들고 뛰며 오르내린 힘겨움이
방석없는 땅바닥에 철푸덕 앉았는데 
 
할머니 석달치 분량
주름이 지워진다 
 
껌정 묻은 옷을 털고 언덕을 구부리고
연탄 한 장 미끼 끼워 아궁이에 던진다 
 
갓 잡아 올린 불꽃이
푸득대는 일요일
 
◆손창완
손창완

손창완

1966년 경기도 평택시 출생, 오산시청(스마트징수팀장)근무,  2020년 공직문학상 은상.

 
 
 
 
 
 

〈차상〉 

소금     
-한영권 
 
죽비로 잠을 쫓듯 파도로 제 몸 때려  
도를 닦은 바닷물이 열반에 들으셨다
세신을 마친 영구를  
염전으로 운구했다 
 
염부가 땀을 흘려 염기를 더하고서
정성껏 염한 후 다비식이 치러졌다  
불이요! 불 들어가요!          
여름 볕이 뜨겁다  
 
마침내 다비의 불길이 적멸에 들자  
바닷물의 골수가 하얗게 드러났다
영롱히 빛나는 가루
바닷물의 사리다 
 

〈차하〉 

무  
-주연
 
단 한번 소풍 길에 제대로 발목 잡혀
흙 속에 발을 담고 평생을 산다 해도
세상과 이어진 줄기 나날이 짙푸르다  
 

〈이달의 심사평〉 

천둥 번개와 폭염이 사라지자 슬슬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어, 어, 어, 하는 사이에 가을도 벌써 끝자락에 닿았다. 아쉽게도 결실의 계절다운 풍성한 수확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투고자가 대거 등장하여 자꾸 가슴을 설레게 했다.

 
끝까지 두각을 다투었던 몇 편의 작품을 두고 이모저모를 뜯어본 끝에, 손창완씨의 ‘연탄꼬리지느러미’를 장원으로 뽑아들었다. ‘연탄꼬리지느러미’는 가난한 할머니 집에 연탄을 배달하여 따뜻하게 불을 지펴주는 과정을 낚시질에 비유한 그 비유가 특히 눈길을 끌며, ‘연탄’과 물고기의 ‘꼬리지느러미’를 결합한 제목도 재미가 있다. 다른 투고 작 ‘푸른, 시청 아가위’도 그렇지만, 아주 평범하게 시작해서 결코 평범하지 않게 마무리하는 마무리 솜씨도 돋보였다.
 
차상으로는 한영권씨의 ‘소금’을 골랐다. 바닷물이 소금이 되는 과정을 형상화한 이 작품은 시상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주제도 아주 분명하다. 운율도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는 잘 맞지 않는 ‘도’나 ‘열반’ 등의 진부한 시어들이 안일하게 구사된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차하로 뽑힌 주연씨의 ‘무’는 얼핏 평범한 작품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인간의 운명에 대한 깊은 성찰이 비유적으로 표현되어 있고, 한계상황 속에서도 세계를 꿈꾸는 낙관의 몸짓이 야무지게 포착되어 있다. 김재용, 문희원, 신영창, 차용국씨 등의 작품을 아쉽게도 내려놓았다. 주제와 표현과 가락의 3박자를 제대로 갖추어, 다시 한 번 도전해주시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심사위원:김삼환, 이종문(대표집필)
 

〈초대시조〉

전봇대 또 전봇대 
-김성영 
 
지상을 빼곡 채우고 하늘로 솟는 집떼들 사이 만만한 부스러기 단칸 하나쯤은 남아 있겠지 만삭인 새댁의 스텝 남편보다 씩씩한데
 
전봇대에 올라붙은 전세 달세 원투 잽이 머나먼 아라비아 숫자로 그들을 돌려세워 헐거운 두 쌍의 어깨 점점 가라앉는다
 
으슥한 골목에서 싸구려로 손짓하는 만만한 숫자의 정체는 ‘잠만 자는 방’이다 하이고, 잠잘 시간도 없는데 잠만 자고 살다니
 
◆김성영
김성영

김성영

1959년 경남 울주군 출생.  94년 8월, 1995년 10월 중앙 시조 백일장 장원. 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제7회 열린시학 젊은시인상. 제36회 성파시조문학상. 작품집 『마녀의 기도』

 
 
 
 
고전소설 중 해학의 백미는 단연코 흥부전일 것이다. 주걱뺨 맞기를 자청하는 것이나 남의 죄를 대신해 매품을 파는 이야기는 압권이다.  
 
몸서리치는 가난에도 짓눌리지 않고 고비마다 익살로 참고 견디는 흥부의 슬기는 훗날 대박이 나기까지 우연이 아니라 삶에 대한 긍정적 인과가 아닐까.
 
도시의 전봇대는 서민들의 궁핍한 애환이 상호교류하는 맥놀이다. 화자인 신혼부부 역시 안식처 단칸을 찾아 “스텝”을 밟는다. 가난쯤이야 물렀거라 하는 발걸음 또한 익살스럽다. “전봇대에 올라붙은 전세 달세 원투 잽”이 만만치 않다. 스트레이트가 아니라 “원투 잽”에 나가 떨어지는 신혼부부의 살림살이지만 흥부전 이상의 골계미를 더한다. 안타깝고 야속할 때 ‘아이고’하며 탄식하지만 이보다 더 큰 “하이고”가 있다. 그러므로 “잠만 자는 방”을 보고 뱉는 “하이고”는 감탄사가 아니라 한탄사다. 이 한마디 비명은 한을 정으로 반전시키는 예지가 우리를 울리지 않고 웃긴다.  
 
정과 한의 세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직조해낸 통일성이 오감을 다 적신다. 해학이야말로 우리의 생활이 추구하는 목표이며 가치가 아닐까. 오늘도 전세대란 속 신혼부부의 앞날에 복이 있으라, 하이고! 
 
최영효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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