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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시시각각] 사유리의 선택

양성희 논설위원

양성희 논설위원

그저 4차원 캐릭터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평론가 진중권도 “본인도 물건이지만 책을 읽어 보니 그 부모님도 장난 아니다. 가족 전체가 예술이다”고 썼다. ‘자발적 비혼모’ 선언으로 며칠 새 우리 사회를 뒤흔든 일본 출신 방송인 후지타 사유리 얘기다. 법과 의료지침의 엇박자로 우리나라에선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정자를 기증받아 출산하는 것이 사실상 금지돼 일본에서 시술받았다. KBS에 출산 사실을 공개한 사유리는 “정자 기증으로 태어난 게 알려지면 아이가 차별받을까 봐 걱정되지만, 아이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가르칠 건데 내가 거짓말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자발적 비혼모’ 지지 젊은 여성들
몸에 대한 자기결정권 인정하고
정부의 정책 기조 바꾸라는 의미

영상에는 수많은 지지 댓글이 달렸다. ‘나도 결혼은 싫지만 아이는 갖고 싶다’ ‘한국에서 아빠 없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응원한다’ ‘저출산 시대에 비혼 가정 등 다양한 가족 안에서 원만한 출산과 육아가 이뤄지게 지원해라’ 등이다. 물론 ‘좋아요’ 1000개에 50개꼴로 ‘싫어요’도 있다. 하지만 국민 30%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가질 수 있다’, 60%가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답하는 시대다(2020 통계청 조사).
 
“낙태뿐 아니라 아기를 낳는 것도 인정했으면 좋겠다.” 사유리 발언 중 가장 핵심적인 대목이다. 아이를 낳지 않을(임신 중지) 권리, 낳을 권리 모두가 소중하며, 몸에 대한 결정권은 내 것이라는 인식이다. 비혼모, 동거 커플 등 ‘정상 가족’을 넘어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해 넓어진 공감대도 확인시켰다.
 
사유리에 대한 젊은층의 반응을 보면 임신·출산의 주체인 젊은 여성의 마음을 읽지도, 얻지도 못한 저출산 정책의 실패는 당연해 보인다.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2039 남녀 6350명 설문조사에 따르면, ‘청년기 삶의 과업 중요도’를 묻는 질문에 남녀 모두 일과 개인 생활을 파트너십이나 자녀보다 중시했다. 청년 여성들은 출산의 전제조건으로 ‘파트너의 양육 참여’(79%), ‘공평한 가사분담’(74%), ‘파트너의 출산휴가·육아휴직’(69%)을 꼽았다. 김은지 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결혼제도로 형성되는 불평등한 관계가 비혼과 저출산 모두의 원인으로 해석된다”며 “일시적 출산장려금, 난임·다자녀 가구 우선 지원 정책 등은 지금 현실에서 작동하지 않는 프레임이다. 오히려 안전한 피임과 임신 중단, 1인 가구 주거 독립을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아동이 어떤 가족 상황에서 자라더라도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사유리 이후 여권은 원내대표까지 나서 “법·제도 개선 논의를 시작하겠다”며 발 빠르게 대응했다. 그러나 지난 19~20대 국회 때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다양한 가족 형태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생활동반자법’을 준비했으나 당내 반발로 발의조차 못했던 과거가 있다. 과연 립서비스 이상의 책임 있는 논의가 진행되는지 지켜볼 일이다. 정자 기증을 통한 비혼 출산이 용이해지면, 보조생식술로 태어난 동성 커플의 자녀는 어떻게 볼 것인지 만만치 않은 논점이 산적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 아이에게 아빠를 빼앗고 생명윤리, 친권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 또한 팽팽하다.
 
비혼 출산은 서구에선 일찌감치 공론화됐다. 미국, 영국, 호주, 스웨덴, 벨기에, 스페인, 일본 등은 독신 여성과 성 소수자들의 비혼 출산을 인정한다. 비혼 출산과 동거 커플을 포함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혼외 출산 비율은 평균 41%. 우리는 2.2%다(2018).
 
여전히 비혼 출산에 부정적인 이들은 엄마의 이기심을 탓하며 ‘아빠 없는 아이가 행복할까’란 질문을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나 아빠만 있으면 다 행복할까, 아니 아빠 없는 아이도 행복할 수 있어야 좋은 세상 아닌가. ‘아빠 없는 아이가 행복할까’란 질문은 미혼·비혼모는 물론이고 이혼가정, 조손가정에 ‘당신들은 행복할 수 없다’고 못 박는 잔인한 말이기도 하다. 
 
양성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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