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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칼럼] ‘구세주’ 코로나 백신이 일러주는 것들

최훈 편집인

최훈 편집인

‘성탄절 즈음의 구세주’란 기대까지 낳은 코로나 백신. 개발 과정은 그 무게만큼의 영감과 통찰을 불러일으킨다. 예방 효과 90%의 선두주자는 바이오엔테크(BioNTech·독일)와 화이자(Pfizer·미국)의 연합군. 미국의 바이오기업 모더나(moderna) 역시 94.5%의 예방률로 선두 그룹에 나섰다.
 

창의의 포용, 기초의 힘이 중요
미국·독일 대기업 자본이 선두
정부, 자본·기업 역할 존중하고
‘위기극복 첨병’으로 키워줘야

백신의 원천 기술을 지닌 바이오엔테크 공동대표는 우르 샤힌(55)과 외즐렘 튀레지(53) 부부다. 파이낸셜타임스의 지난 14일자 인터뷰에 따르면 샤힌은 터키에서 독일로 이민와 포드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의 ‘흙수저’ 자녀. 튀레지 역시 터키 의사 부친을 따라 네 살 때 이민, 여섯 살부터 맹장수술 장면을 지켜본 과학 소녀였다.
 
개업의 대신 임상연구에 몰입한 둘 모두 ‘일벌레’로, 결혼식 날도 연구실에서 밤샘했다고 FT는 보도했다. TV도 없고, 소셜 미디어와도 절연하며,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담백한 스타일. 이 회사의 핵심 기술 개발자인 카탈린 카리코 역시 미국으로 이민했던 헝가리 출신 과학자다. 적극적 난민 수용으로 홍역을 치렀던 독일에서는 “일용직 노동자나 노점상으로만 여겼던 터키, 헝가리 등의 이민 후손들이 이뤄낸 역사적 쾌거”라는 평가가 나온다. 팬데믹이 인종적 포용과 개방이라는 미래의 뉴노멀을 깨닫게 해 준 장면.
 
‘창의’에 대한 포용과 ‘기초’를 위한 인내심은 두 번째 통찰이다. 바이오엔테크와 모더나의 백신은 기존 것과는 완전히 다른 메신저 리보핵산(mRNA)이라는 기술 방식. 홍역·소아마비 등 대부분의 백신은 약화되거나 비활성화된 바이러스를 주입, 항원을 만들어 면역을 유도한다. 하지만 이 기술은 바이러스가 아니라 유전물질인 mRNA를 주입해 항원을 만들고 면역을 유도한다. 몸이 스스로 약을 만들게 하는 구도다. 공식 승인을 받은 약제에선 없던 방법. 악성 종양 퇴치를 위한 mRNA 활용에 전념했던 샤힌 박사 역시 “학계에서 난 줄곧 전형적인 얼간이(nerd) 취급을 받았다”고 토로한다. 그러나 mRNA의 가능성을 알아본 빌 게이츠가 5500만 달러를 진즉 투자했고, 이 회사의 시총 규모는 지금 도이체방크를 넘어 25조원대로 치솟고 있다.
 
인류를 구한 백신과 치료제의 발명에는 ‘hit’라 불리는 개벽(開闢)의 순간이 등장한다. 포도상구균 배양기의 뚜껑을 제대로 닫지 않았던 플레밍이 배양기로 들어간 곰팡이(나중에 페니실린이라 불리는)가 균을 먹어치우는 걸 발견한 순간…. 아, 계란엔 콜레스테롤이 많지 않은가. 곧 치킨으로 변할 닭들을 몰래 실험 대상으로 삼아 스타틴 계열 약물의 놀라운 LDL(나쁜 콜레스테롤) 제거 효과를 발견한 엔도 아키라의 기쁨은 인류의 심장을 구해낸 순간이다. 엉뚱한 창의, 모든 기초학문에의 영속적 관심과 지원이 중요한 이유다.
 
큰 틀에서 보면 팬데믹은 자본과 대기업이 질시,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위기에서 사회를 이끌고 선도해 줄 힘이자 동료라는 사실도 깨닫게 해준다. 백신 개발의 선두는 역시 미국·독일 등 초강대국. 당초 선두로 꼽히던 곳은 다윈, T H 헉슬리, 리처드 도킨스 등을 낳은 생물학의 고향인 영국. 그러나 옥스퍼드대 역시 뒷심이 달리는 모습이다. 미국의 동력은 시총 227조, 43조원 규모인 화이자, 모더나 등 거대 기업의 자본과 기술이다. 사기업이 단기간 투자하긴 어려운 기초과학의 토양 역시 비옥했다. 트럼프 정부가-재선 활용의 욕심에서 출발했지만-초고속 개발(Operation Warp Speed) 프로그램을 가동, 화이자의 백신 1억 개를 19억5000만 달러에 선구매해 준  지원도 시너지였다. “왜 바이오, 디지털, 식품, 배송 등 빅 비즈니스의 힘이 중요한지, 왜 정부의 대기업 지원 등 상호간 역할 분담이 중요한지 팬데믹은 명확히 일깨워 주었다”고 미국 언론들은 분석한다(뉴욕타임스, 11월19일자 ‘경이로운 자본주의’).
 
쨍쨍하거나 비 올 때 홀연히 나타나는 소금·우산장수처럼 시장경제의 보이지 않는 손에 따라 위기에서 등판할 기업을 정부가 키워야 한다는 얘기는 진보 정권이 특히 귀담아 들어야 할 터다. ‘황금알을 낳아줄 거위’로 기업을 소중히 여긴 진보는 흥했고, 아니면 망했다. 볼보·SKF·에릭슨·스카니아·이케아 등의 세계적 기업을 낳은 스웨덴의 사회민주당 정권은 민간의 효율성과 기업가 정신을 존중했다. 낮은 법인세로 자본의 해외 이동을 막았다. 대신 소득세·재산세 등의 누진율을 높여 복지 재원을 충당, 성장·복지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특히 바이오·IT 분야의 특허와 지식 재산권 보호에 각국 정부가 혈안인 요즘 대기업과 자본의 경쟁력은 한번 뒤처지면 만회가 불가능해지고 있다. 갈수록.
 
우린 어떤가. 한편으론 ‘대기업 징벌법’ 추진과 여전한 각종 규제 속에 위기만 터지면 삼성·현대 등 대기업을 찾아간다. 바다 건너 백신 개발에 대통령과 여당 대표가 SK바이오, 셀트리온을 찾아 “우리도 좀…” 식의 독려다. 모순의 반복 속에 ‘hit’의 기적은 없다. 평소에 대기업과 자본의 역할을 존중하고 위기 극복의 첨병으로 한껏 키워놓으라는 게 백신 개발의 스토리다.
 
최훈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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