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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칼럼니스트의 눈] “트럼피즘이란 세균이 포퓰리즘의 얼굴로 지구를 덮고 있다”

포퓰리즘을 쏘다 ⑨ 도널드 트럼프

이정재 칼럼니스트의 눈 포퓰리즘을 쏘다

이정재 칼럼니스트의 눈 포퓰리즘을 쏘다

“왜 21세기까지 우리는 파시즘을 다시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단도직입적으로 한 가지 이유를 대자면 트럼프 때문입니다. 파시즘을 거의 치유된 과거의 상처라고 본다면, 백악관에 트럼프를 들여보낸 것은 상처에 댄 붕대를 떼어내고 딱지를 다시 뜯는 것과 같습니다.”
 

혐오와 차별을 에너지로 삼는
트럼피즘, 세계 뉴노멀 된지 오래
트럼프 2.0 막을 해법 고민할 때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부 장관이 2년 전 “트럼프 때문에 이 책을 쓴다”며 펴낸 책 『파시즘』의 한 구절이다. 이탈리아의 ‘파쇼’에서 유래한 파시즘은 극단적인 전체주의적·배외적 정치 성향을 가리킨다. 그렇다고 특별한 방향성을 갖춘 이데올로기는 아니다. 소설가 이응준은 “비합리적이고 무정형의, 그러나 막강한 폭력성과 야만을 지닌 에너지에 가깝다”며 “이념이 아니라, 그 시대 그 시절에 맞춰 발생하는 전염병”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파시즘은 그만의 특징이 있다. 포퓰리즘의 외피를 둘렀다는 점이다. 그의 파시즘은 혐오와 차별을 에너지 삼는다. 끊임없이 공공의 적을 만들고 편을 갈라 지지층을 결집한다. 이런 수법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효과가 크다.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 이후 포퓰리스트 리더가 대거 등장한 것도 그 때문이다. 독일 본대학 마누엘 풍케 교수 등의 분석에 따르면 2018년 현재 세계 경제의 90%를 차지하는 60개국 중 16개국에 포퓰리스트 정권(좌파 7개, 우파 9개)이 들어섰는데, 이는 2000년대 초 4개국(좌·우파 각 2개국)에 비해 4배나 급증한 것이다. 프랑스 파리 정치대학 세르게이 구리예프 교수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제위기가 포퓰리즘의 자양분”이라고 진단했다.
 
그 정점에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이 있다. 트럼프의 당선은 포퓰리즘을 세계의 뉴노멀로 만든 결정적 순간이었다. 강건한 정당 정치로 쌓은 민주주의의 본산 미국마저 트럼프의 포퓰리즘에 무너지고 말았으니, 다른 나라야 말해 뭣하랴. 오죽하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미국의 우파 미디어가 (유럽에까지) 트럼프의 포퓰리즘을 강요하고 있다”고 항변했을까. 네덜란드 작가 롭 리멘은 “파시즘이라는 세균이 포퓰리즘의 얼굴로 지구를 덮고 있다”고 적시했다. (『이 시대와 맞서 싸우기 위해』)
 
포퓰리즘의 얼굴을 한 트럼프의 파시즘을 콕 짚어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편 가르기, 반(反)엘리트주의, 언론 탄압 등은 기본이다. 사실과 거짓을 뒤집고 전문가를 무시하며 막말과 선동을 통해 “정치를 일반 민중의 의지와 부패하고 이기적인 엘리트의 의지가 대결하는 이분법적 전투 프레임”으로 몰고 간다. ‘트럼피즘’에는 이 모든 것이 뭉뚱그려져 있다. 그중 큰 특징이 바로 ‘파쇼 독재’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는 예일 대학 후안 린츠 교수의 아이디어에서 따온 ‘잠재적 독재자 감별법 4가지’에 트럼프가 모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첫째, 민주주의 규범 거부=트럼프에겐 일상이다. 그의 재임 4년은 규범 파괴 행진과 같았다. 절정은 선거 부정이다. 2020선거뿐만이 아니다. 4년 전에도 그랬다. 2016년 대선 캠페인 때부터 힐러리 클린턴이 수백만 명의 불법 이민자들과 이미 사망한 사람들까지 투표에 동원했다고 주장했다. 당시 그는 “힐러리가 이번 선거를 조작하지 못하도록 도와주세요” “선거 이전과 당일에 대규모 부정투표가 틀림없이 벌어질 것”이라고 되풀이했다.
 
이번 대선 때는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우편 투표가 무자격자나 민주당 지지자에게만 투표용지를 발송했다고 주장했다. 급기야 이젠 대선 승복마저 거부하고 있다. 대선 승복은 미국 정치의 가장 중요한 규범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 대통령직은 불문율에 따른 전통과 정치, 역사학자들이 규범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의해 형성된다”고 했다.
 
◆둘째, 경쟁자에 대한 부정=버서(birther,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 태생이 아니라고 믿어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논쟁을 주도하고 퍼뜨린 것이 대표적이다. 2016년 대선 때 트럼프는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을 문제 삼았다. 오바마가 이슬람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2년 뒤 미셸 오바마는 회고록 『비커밍(Becoming)』에서 트럼프가 버서 논쟁을 퍼뜨린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셸은 “버서 논쟁은 미친 것이었고 악랄한 의도였으며 그 밑에 깔린 편견과 외국인 혐오가 그대로 드러났다”면서 “그것은 또한 극우의 감정을 의도적으로 불러일으켰다”고 썼다.
 
지난달 대선 때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출생을 문제 삼았다. 오바마에 이어 미국 출생이 아닐 수 있다는 음모론을 재탕했다. 조 바이든 당선자에겐 “극좌파 미치광이”란 꼬리표를 붙였다. 민주당 유색 여성 하원에게 “완전히 재앙적이며 최악이고 가장 부패하고 무능한 나라 출신”이라며 “당신네 나라로 돌아가라”고 비난했다.
 
◆셋째, 폭력에 대한 조장과 묵인=2016년 유세 때부터 “토마토 던지는 사람을 패주세요. 내가 책임질게요. 약속해요”(아이오와 2016년 2월 1일)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군요”(네바다. 2016년 2월 22일)라며 폭력을 부추겼다. 지난 6월엔 조지 플로이드 사태로 시위하는 시민을 향해 “뉴욕시 주방위군을 소집해라. 하층민들과 패배자들이 당신들을 갈기갈기 찢어놓을 것이다”라고 폭언했다.
 
◆넷째,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 억압=대통령 당선 직후 “힐러리를 수사하기 위해 특별 검사팀을 꾸리고 있다”며 “힐러리는 곧 교도소에 수감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언론에 대한 공격도 심했다. 비판 언론은 ‘국민의 적’으로 부르고 지지자들의 집중 공격을 유도해 언론 길들이기에 나섰다. CNN은 지난달 트럼프가 취임 후 지금까지 언론사와 진행한 인터뷰를 집계 공개했는데, 자신에게 우호적인 폭스 뉴스와는 115차례 인터뷰를 했지만 월스트리트저널(10회)이나 뉴욕타임스(8회)와는 훨씬 적었으며, CNN과는 한차례도 인터뷰하지 않았다.
 
2020년 미국 대선은 트럼피즘에 일단 마침표를 찍었다. 그러나 마침표로 끝날지 쉼표가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 7300만표를 얻었다. 지난 선거보다 1000만표를 더 얻었다. 그의 정치적 후광을 얻기 위해 공화당 유력주자들이 벌써 충성 경쟁을 벌이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혐오와 차별, 편 가르기가 통하는 한 트럼피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트럼피즘 2.0이 본격화하고 있다”고 했다.
 
대안은 없나. 뉴욕 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은 실낱같은 해법을 하나 던진다. “이번 투표는 상대 진영이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줬다. 우리는 다음 선거에서 ‘기적같이’ 갑자기 우리 편이 원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는 상대와 같이 살아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결코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한국의 트럼피즘, 위험수위다
트럼피즘의 특징 중 하나가 ‘포스트 트루스(탈진실)’의 일상화다. 트럼프는 취임식 때부터 “사상 최대 인파가 왔다” (션 스파이크 백악관 대변인)고 거짓말을 했다. 언론이 각종 자료를 통해 거짓을 까발리자 캘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보좌관은 “대안적 진실”이란 말까지 만들어 냈다.
 
한국 정부·여당에도 탈진실은 남의 일이 아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줄곧 “한국의 불평등 세계 최고” “최저임금 인상 90%는 효과” 같은 ‘탈진실’을 말해왔다. 대통령을 좇아 정권 핵심에도 탈진실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소설 쓰시네” “특활비를 (검찰총장이) 쌈짓돈처럼 썼다” 며 타인을 거짓말쟁이로 만들면서까지 탈진실에 앞장서고 있다. “광화문 집회 차단(재인산성)은 정당하다”며 밀의 ‘자유론’을 소환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궤변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김어준 교통방송 뉴스 진행자는 아예 ‘대안적 진실’을 대량 생산하는 병참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트럼피즘의 또 다른 특징인 규범 무시도 한국 정부·여당에 일상화했다. 월성 1호기 수사를 놓고 정부·여당은 “(대통령 공약인 탈원전은) 통치 행위라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제히 주장했다. 전임 대통령의 4대강 사업을 수없이 감사·수사하도록 몰아붙인 과거는 까맣게 잊었다. 급기야 자신들이 만든 규범마저 부정하고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기로 했다. 이런 파렴치 앞에 건재할 규범은 어디에도 없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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