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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변소의 냄새는 선한 것일까, 악한 것일까?

이혁진 소설가

이혁진 소설가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 조지 오웰은 참전했던 스페인 내전을 회고하는 글에서 변소에 대해 이야기한다. 쪼그려 앉아 일을 봐야 했던, 맨들거리는 돌로 만들어 용변을 보는 내내 미끄러지지 않도록 두 다리에 온 신경을 집중해야 했고 사방이 막혀 있어 통풍도 안 됐던 바르셀로나 막사의 변소다. 그 변소 덕분에 조지 오웰은 실감했다고 한다. 파시즘에 맞서고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의용군의 변소도 감옥에 있는 것만큼이나 더럽고 저급하다는 것을. 그 후에 한 경험들은 오웰의 실감에 더욱 힘을 실어줬다. 참호생활이 주는 동물적 허기와 따분함, 음식이나 수면부족 때문에 벌어지는 하찮은 신경전들. 지금 한국의 예비역들도 피식 웃을 만큼 공감이 가는 그것들은 그래서 변소의 냄새처럼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사실과 의견 구분 어려워진 시대
탈진실의 대가는 사실 감각 상실
사실 희미할수록 사실 추구해야

하지만 당시의 여론은 그렇지 않았다. 오웰의 회고에 따르면 언론의 논조는 그 전쟁이 의롭기 때문에 변소는 덜 냄새나고 군 생활은 덜 짜증 난다는 식이었다. 잔학행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의용군 부대 역시 프랑코의 파시스트 부대들보다 적을지는 몰라도 잔학행위를 저질렀다. 그러나 많은 사람에게 잔학행위는 근거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진영과 믿음의 문제였다. 오웰은 이렇게 썼다. “아무도 증거 조사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적의 잔학행위는 믿으면서 자기편의 것은 믿지 않는다. 최근에 나는 1918년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잔학행위를 표로 만들어본 적이 있다. 결과는 잔학행위가 어디에서도 발생하지 않은 해가 없고, 같은 얘기를 좌파와 우파가 일제히 믿은 경우도 거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더 이상한 건, 정치적 풍경이 바뀌기만 하면 상황이 언제든 갑자기 역전될 수 있으며 어제 확실한 사실로 입증된 만행이 오늘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이 되어버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같은 현상은 스페인 내전에서만 그치지 않았다. 이어진 2차 세계대전과 미·소 냉전 시대로 이어지면서 더 광범위하게 확장했고 일반화했다. 한국전과 중동전·월남전 등 군사 분쟁이 있을 때는 말할 것도 없고 독재국가는 물론 미국 같은 민주주의 국가의 내정에서도 항상 강력한 수단으로 등장했다. 편이 갈리고 정쟁이 있는 곳에서 사실은 늘 훼손당하고 진실은 왜곡당하기 마련이었던 것이다.
 
올 한해 우리가 곳곳에서 맞닥뜨린 대립과 혼란 역시 그 연장선 위에 놓여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당대의 기술 발달, 인터넷 뉴스와 게시판들, 유튜브와 페이스북이 만들어내는 편향적 세계를 지적하지만 그것들은 원인이 아니라 현상에 가깝다. 다양하고 양방향적 소통양식이라는 점에서 그것들이 예전 같은 일방적 여론 통제와 기만을 한층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 시대에서 문제는 양상을 바꾸었을 뿐, 그 본질은 여전한 층위에 있는 것이다. 무리를 이루고 그 무리의 힘으로 필요한 것을 얻으려는 우리의 본성이 원인이다.
 
이렇게 말하면 두 가지 함정에 빠지기 쉽다. 하나는 모든 무리가 결국 똑같고 그렇기 때문에 자신은 어디에도 속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주장은 무지의 결과나 위선에 불과하다. 우리는 늘 어딘가에 속할 수밖에 없으며 모든 무리가 정치적 자유와 평등을 보장받는 것은 아니다. 흑인과 여성·노동자들이 그 사례다. 어떤 무리에 속한다는 것은 대부분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처한 상황이며 그 역시 부정할 수 없는 사실들 중 하나다.
 
또 다른 함정은 우리의 본성이라는 이유로 사실의 훼손, 진실의 왜곡을 좌시하거나 편승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사실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본 대로 믿어버리게 된다. 동지와 적, 선과 악이라는 의견을 사실이라고 착각한 채 엄연한 사실들을 그 의견으로 재단하는 전도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른바 역사의 참극이, 인간이 어떻게 다른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을까 싶은 일들이 모두 그렇게 일어났다.
 
우리의 본성이 원인이라는 전제에서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은 자명하다. 우리에게는 편향되고 왜곡하려는 습성이 있다. 아무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의롭거나 무결하지 않으며 저들이 그르다는 이유로 우리가 옳게 되는 것도, 우리가 옳기 때문에 저들이 글러지지도 않는다. 기준과 원칙은 의견이 아니라 사실들 위에 올라서야 한다. 그것에 따라 저들에게 틀렸다면 우리에게도 틀렸다고 기꺼이 말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때 우리는 결국 변소의 냄새마저 선한지 악한지 물어야 하는 난센스에 처할 수밖에 없다. ‘참새는 해로운 새’라고 했던 마오쩌둥처럼, ‘두 다리는 나쁘고 네 다리는 좋다’고 했던 『동물농장』의 동물들처럼.
 
이혁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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