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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욱의 기후 1.5] 시작부터 흔들리는 '2050 탄소중립' 약속

지난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강력한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이 정책들은 자국내에만 영향을 미칠뿐 아니라 인접국가, 통상 관계를 맺은 대부분의 나라들에게 까지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죠. 국가 경제 자체가 수출에 크게 기대고 있고, 대미, 대EU 수출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로서는 이들 나라의 정책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는 현실입니다.



미·유럽발 '녹색 파도', 휩쓸린 것인가 올라 탈 것인가
'먼 미래'에서 '내 일'로 찾아온 기후변화 (53)

 


#시작부터_흔들리는_신뢰

'대통령이 직접 탄소중립 선언을 했는데, 잘 되겠지'라는 생각은 그저 막연한 기대에 그쳤습니다. 지난 19일, 정부는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 공청회를 열었습니다. 이 전략은 2050년 탄소중립을 향한, 가장 기본이 되는 로드맵입니다.



정부의 안은 가장 빡빡한 1안(2017년 대비 최대 75% 감축)부터 가장 느슨한 5안(40% 감축)까지 총 5개 시나리오로 마련되어 있습니다. 이들 안을 놓고 이번에 열린 공청회와 같은 절차에 이어 관계 기관과의 협의 끝에 최종안을 정합니다. 이 최종안은 녹색성장위원회의 심의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UN에 제출됩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공청회 이후의 반응들은 시큰둥합니다. 뭔가 실질적인 감축 노력, 불편을 감수하더라도 피할 수 없는 변화에 대한 설명은 없고 신기루 같은 '미래 기술'에 기댄 계획이었다는 겁니다.



탄소세라고 불리는 탄소국경조정, 내연기관 금지 등 구체적인 목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당장 2030년까지의 온실가스감축계획은 기존의 계획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2030년까지의 계획이, 목표가 그대로인데 그로부터 20년 후인 2050년엔 무슨 수로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것일까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에겐 아직 실현되지 않은 '탄소포집'이라는 기술이 모든 문제를 풀어줄 유일한 열쇠처럼 보입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환경단체들의 모임인 기후위기비상행동은 "탄소를 제거하는 비현실적인 기술이 아니라 과감한 화석연료 사용 중단이 시급하다"며 "CCUS, DAC와 같은 탄소포집 기술은 현실 가능성이 매우 낮은 기술"이라고 비판했습니다.



2030년까지의 감축계획을 변동 없이 유지한다고 하니… 부디 2031년엔 이 꿈의 기술이 상용화되기를 기원해 봅니다.



#현실로_다가올_통상압박

꿈 같은 미래는 뒤로하고, 이제 당장 코 앞의 일들을 살펴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2050년 탄소 중립 목표에 맞춰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대미 통상압박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바이든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들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당장 바이든 당선인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G20 국가들에게 해외 '고탄소' 프로젝트에 대한 금융지원 중단을 요구하겠다고 밝혔죠. 대한민국은 전 세계 석탄 시장의 '큰 손'으로 꼽힙니다. 우리나라 금융기관의 해외 석탄금융 제공 규모만도 10.7조원에 달하고요. 결국 이 요구는, 당장 여러 민간금융기관뿐 아니라 수출입은행(4조 8585억원), 무역보험공사(4조 6680억원) 등 공적 금융기관들에게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료: 조 바이든 당선인 공식 홈페이지)(자료: 조 바이든 당선인 공식 홈페이지)


바이든 당선인은 또, EU와 마찬가지로 탄소국경조정, 즉 '탄소세'의 도입을 시사해왔습니다. 국제사회 차원의 기후위기 공동 대응을 위해 무역 수단을 사용하겠다고 공약한 겁니다. 그린피스는 "한국은 제조업의 비중이 20%를 넘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한 탄소 의존 경제"라며 "대미 수출의 비중이 13.5%에 이르는 만큼, 탈탄소 경제로 나아가지 않을 경우 수출 경쟁력을 상실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통상을 넘어 외교 채널에서도 '탈탄소'는 압박 카드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당장 '취임 100일 이내 온실가스 다배출 주요국들과 정상회담을 개최할 것'이라고 했죠. 2017년 배출량 기준, 한국의 배출량은 세계 11위입니다. OECD 회원국 중 5위로 상위권이죠. IEA(국제에너지기구) 통계에선 세계 순위가 11위에서 7위로 오르기도 합니다. 이러한 '글로벌 탑' 수준의 순위는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위치를 뜻하기도 합니다.



물론, 앞으로의 전망이 무조건 어두운 것은 아닙니다. 정상훈 그린피스 기후참정권 캠페인 팀장은 "미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통상압력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며 "한국 기업의 대응 여부에 따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발 빠르게 기업들이 탄소저감에 나선다면 미국 시장을 공략할 기회를 선점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러한 신속한 산업계의 움직임, 그 선례로 앞선 연재글에서 일본의 사례를 전해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전경련 격인 게이단렌이 직접 재생에너지 100%를 선언하고 나선 일 말입니다. 정 팀장은 이 같은 일본 산업계의 움직임에 대해 "이는 경제적 기회로써 기후변화 대응이 중요함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탄소중립_선언에도_못_피한_G20_꼴찌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선언에 국내 기후변화 대응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계획들은 없는 상태죠.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기존에 각 부처들이 갖고 있던 계획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계획이 없는 상태입니다. 계획은 그대로인데 목표가 갑자기 강력해지고 뚜렷해진 겁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한국의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가는 여전히 낮은 수준입니다. 지난 18일, 국제환경단체 기후투명성(Climate Transparency)은 G20 국가들의 2020 기후투명성 보고서를 공개했습니다.

 
(자료: 기후투명성 보고서 2020)(자료: 기후투명성 보고서 2020)


당장 몇 가지 항목들을 살펴보겠습니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G20 전체 국가 가운데 대부분인 13개 나라에서 줄어들고 있습니다. 반대로 이 배출량이 늘어난 나라, 단 6곳 뿐입니다. 대한민국은 어디에 속했을까요. 당연히 늘어난 쪽에 속했습니다. 기후솔루션은 "한국의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G20 평균의 2배에 이른다"고 지적했습니다.

 
(자료: 기후투명성 보고서 2020)(자료: 기후투명성 보고서 2020)


이러한 온실가스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바로 에너지의 사용입니다. 이번엔 에너지 사용과 관련한 탄소배출량의 감소폭을 살펴볼텐데, 감소폭인 만큼, 음의 값으로 수치가 클수록 탄소저감을 효과적, 효율적으로 잘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료: 기후투명성 보고서 2020)(자료: 기후투명성 보고서 2020)


우리나라의 예상 감소폭은 얼마나 될까요. G20 평균보다 낮을뿐더러 중국, 터키, 인도네시아,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5번째로 적었습니다.



재생에너지는 현재 G20의 모든 나라에서 확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확대 속도를 살펴봤을 때, 우리나라는 너무도, 정말 너무도 느렸습니다. OECD 평균에 한참 못미칠뿐 아니라 20개 나라 가운데 두 번째로 적게 늘어났죠.

 
(자료: 기후투명성 보고서 2020)(자료: 기후투명성 보고서 2020)


그렇다면, 에너지 정책에 대한 정부의 지원 측면에선 어땠을까요. 전체적인 액수 자체도 많은 편은 아니지만, 지원이 이뤄지는 분야의 비중을 보면 탄소중립을 선언한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화석연료를 수입 걱정 없이 자체적으로 채굴해 쓰고 있는 인도네시아나 러시아와 비슷한 수준입니다.



 
(자료: 기후투명성 보고서 2020)(자료: 기후투명성 보고서 2020)


기후투명성을 이끄는 피터 아이겐 교수는 이러한 결과에 대해 "에너지 정책과 정적 자금을 장기적인 탄소 배출 감소 목표에 맞춰야 한다"며 "한국은 2050년 탄소중립까지 할 일이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이 자료를 국내에 소개한 기후솔루션의 김주진 대표는 "한국의 현행 에너지 계획과 투자 결정은 2050 탄소중립 선언과 일맥상통하지 않는다"며 전면적인 계획의 수정과 이행을 촉구했습니다.



사실, 이젠 더 이상 촉구하며 기다릴 시간조차 없는 상태입니다. 이런 와중에, 그나마 정부의 '2050 장기저탄소발전전략'에서 위안을 삼을 수 있었던 재생에너지 확대마저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나 우려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정부는 '청정에너지 중심의 전력공급체계 구축'을 발전부문의 핵심 전략으로 꼽았습니다. 2050년까지 재생에너지의 비중을 최대 8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와 함께 말이죠.



그런데 이 같은 보도에 대해 환경부가 부랴부랴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라는 제목의 설명자료를 배포하고 나섰습니다. "공청회 자료에서 제시된 2050년 재생에너지 및 석탄 발전 비중은 가능한 여러 시나리오 중 하나의 경우로서 확정된 수치가 아님"이라는 설명과 함께 말입니다.



당장, 저탄소 사회 비전 포럼이 제시한 5개 시나리오중 가장 강력한 '2017년 대비 75% 감축' 시나리오로도 2050년 탄소중립은 불가능합니다. 공청회 발표에 따르면, 이 시나리오대로라도 2062년이 되어야 탄소중립이 가능하죠. 재생에너지 비중을 60%까지 끌어올리고, 석탄발전의 비중을 4.4%로 줄이는데도 약속한 2050년보다 12년이 늦어지는 겁니다. 그런데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닙니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부디 "이보다 더 강력한 안을 마련할 것입니다"라는 뜻이길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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