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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도 들렀다…‘우공’이 50년간 피·땀으로 일군 정원

제주 ‘생각하는 정원’

양털구름을 머금은 새파란 하늘이 생각하는 정원의 멋진 배경이 돼 주고 있다. 성범영 원장은 늘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정원 일에 몰두한다.

양털구름을 머금은 새파란 하늘이 생각하는 정원의 멋진 배경이 돼 주고 있다. 성범영 원장은 늘 허름한 작업복 차림으로 정원 일에 몰두한다.

“저 두루외! 낭이 밥 멕여주나?”
 

한평생 가꾼 성범영 원장
환영·영혼·철학 정원 등 7개 테마
분재·돌담·오름 어우러진 ‘보석’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각국 언론·국제기구 호평 잇따라
나무 통해 삶을 배우는 공간 꿈

‘미친놈, 나무가 밥 먹여주나’는 뜻의 제주 방언이다. 50여년 전 제주에서 가장 낙후된 한경면 저지리. 가시덤불·돌밭뿐인 황무지를 개간해 나무를 심는 사람을 보고 마을 주민들은 손가락질을 하고 혀를 찼다. 그 사람 이름은 성범영. 서울에서 와이셔츠 사업을 해 돈을 좀 벌었다고 했다.
 
한라산 서쪽 중산간. 녹차밭 공원인 오설록에서 차로 5분 정도 더 가면 제주 특유의 검은색 돌담으로 둘러싸인 ‘생각하는 정원’이 나온다. 오름을 연상케 하는 나지막한 언덕 사이로 수천 점의 분재와 나무가 제각각 아름다움과 이야기를 뽐낸다.  
  
‘비밀의 정원’에선 국제 이벤트 33회
 
IMF 사태 때 정원을 뺏기고도 눈보라 속에서 돌담 쌓는 작업을 했다. [사진 성범영]

IMF 사태 때 정원을 뺏기고도 눈보라 속에서 돌담 쌓는 작업을 했다. [사진 성범영]

해외 언론과 국제기구들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은 곳이다. 올해 7월 세계적인 여행 플랫폼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가 선정한 ‘2020년 트래블러스 초이스 어워드’에 생각하는 정원이 뽑혔다. 9월에는 한국관광공사 선정 코리아 유니크 베뉴(KOREA UNIQUE VENUE)에도 이름을 올렸다. ‘유니크 베뉴’는 국제 행사를 열기에 적합한 독특한 장소를 말한다.
 
생각하는 정원은 성범영 원장이 한평생 피·땀·눈물로 일군 보석이다. 1968년 저지리는 전기·수도가 없었고 물이 귀하고 돌이 많아 ‘땅을 거저 준다고 해도 안 가는 곳’이었다. 나무에 미친 성 원장은 가족까지 끌고 내려와 ‘우공이산(愚公移山·어리석은 노인이 산을 옮긴다는 중국 고사)’의 외길을 걸었다. 1992년 분재예술원이라는 이름으로 생각하는 정원의 역사가 시작된다.
 
지금 저지리는 서부 중산간의 핫 플레이스다. 오설록∼유리의 성∼생각하는 정원∼저지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많은 내·외국인이 정원에서 분재를 보고 성 원장이 직접 쓴 설명문을 읽는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 좋은 생각을 얻어 간다. 성 원장은 매일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가지치기나 돌담 보수 작업을 한다.
 
생각하는 정원은 일곱 개 테마로 구성됐다. 정문을 통과하면 환영의 정원이 나온다. 돌 위의 소나무가 고개를 다소곳이 숙인 형상이 방문자를 환영하는 듯하다. 영혼의 정원에는 성 원장의 피와 땀이 묻어 있는 겹돌담과 7층 돌탑이 우뚝 서 있다. 영감의 정원에서는 늠름한 향나무와 만나고, 전망대에 올라서면 생각하는 정원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철학의 정원에서는 설명문을 보면서 나무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며 나무와 소통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감귤 정원은 하귤·왕귤·금귤 등 재래종 밀감 가로수길을 따라 놓인 형형색색·기기묘묘한 수석을 감상하는 코스다. 비밀의 정원은 말 그대로 시크릿 가든(Secret Garden)이다. 평소에는 공개하지 않고 중요한 국제 이벤트 때 비밀의 문을 연다. 6년간의 기획과 공사 끝에 완성한 300석 규모의 가든 파티 전용공간이다. 마법의 동굴 같은 화장실은 그 자체로 탄성이 터지는 예술 작품이다. 시크릿 가든에서는 33차례 국제 행사가 열려 매번 극찬을 받았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정원 전경. [사진 성범영]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정원 전경. [사진 성범영]

마지막은 평화의 정원이다. 비단잉어들이 여유롭게 노니는 연못을 건너며 마음에 평화를 담고 방문객들은 정원을 떠난다. 모든 구도와 배치는 성 원장의 머리에서 나왔다. 설계도면 하나 없이 순수한 아이디어와 열정만으로 그는 ‘유니크 베뉴’를 만들어냈다.  
 
고교 중퇴가 학력의 전부인 성 원장은 “우리 정원이 유명한 건 단순히 아름다운 분재 작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를 놓을 때도 나는 수십 번 수백 번 생각합니다. 혹여 바로 옆 나무의 빛이 퇴색하지 않을지, 전체의 구도를 해치지는 않을지, 더 나아가 네 계절을 다 돌았을 때 그 나무가 변화할 모습까지도 그려봅니다. 그래서 정원을 가꾸는 건 사람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고 말했다.
 
나무를 심고 분재를 키우는 것보다 더 힘든 건 돌담을 쌓는 과정이었다. 성 원장은 “손톱 발톱 빠지고 손목 부러지는 건 다친 것도 아니고, 병원에 입원한 것만 12번, 수술만 7번을 했어요. 여기 조성하는데 15톤 트럭 1만 대 이상의 돌이 들어갔죠. 높은 곳에서 작업하려면 돌은 미리 다듬어놓고 크레인에 올라가서 돌을 하나하나 쪼아 맞춘 뒤에 시멘트 반죽으로 붙입니다. 그 과정이 얼마나 지루하고 힘든지…”라고 회상했다.
 
아직도 분재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있다. “잘 살고 있는 나무 캐다가 자르고 못살게 괴롭히는 거다” “일본 문화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마다 성 원장은 밤잠을 설치며 고민했다고 한다.  
  
돌담 쌓다 다쳐 입원 12번, 수술만 7번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책을 찾아 읽고 자료를 뒤지며 지식과 경험을 쌓아나갔다. 그는 “분재가 나무를 괴롭히는 거라면 저 나무들은 일찍 죽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다른 나무들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죠. 분재는 아이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좀 힘들어도 자녀를 훈육해서 곧고 바르게 자라도록 해 주는 것과 같지요”라고 설명했다.
 
1998년 IMF 경제위기 때는 부도가 나 정원을 남의 손에 넘긴 적도 있다. 당시 성 원장은 낙찰받은 주인에게 “아무 조건 없이 여기서 잠 자고 일할 수 있게만 해 달라”고 간청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새벽 2∼3시부터 밤늦게까지 나무를 다듬고 돌담을 쌓았다. 7년 만에 은행의 도움으로 정원을 되찾았고, 그 사이에 정원은 더 커지고 더 아름다워졌다.
 
성 원장은 생각하는 정원을 단순한 관광지가 아닌, 나무와 분재를 통해 인생을 배우고 가르치는 ‘교육문화정원’으로 만들 꿈을 꾸고 있다. 미술관·역사관·세미나실 등을 차례로 지을 계획이다. 백발 청년의 목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이 정원 하나만으로 지구촌 사람들 다 끌어들여 한국 관광의 격을 높이고 수입도 올릴 자신이 있습니다. 이 정원은 전 세계에서 누구도 흉내내거나 따라올 수 없는 곳이니까요.”
 
1995년 방문 장쩌민 “일개 농부 개척정신 배우라”
1995년 방문 장쩌민

1995년 방문 장쩌민

1995년 11월 17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의 깜짝 방문은 생각하는 정원이 전 세계에 알려진 계기가 됐다. 여기에는 성범영 원장과 인민일보 총편집장이었던 판징이(范敬宜) 선생의 스토리가 있다.
 
장 주석은 95년 11월 18일 일본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하는 길에 한국 선진지(先進地)를 견학하고 싶다며 판 편집장에게 답사 지시를 내린다. 삼성전자·현대자동차 등을 거쳐 제주에 온 판 편집장은 정원을 꼼꼼히 둘러본 뒤 “원장 선생, 이 정원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압니다. 나도 문화혁명 때 농촌 가서 고생 좀 했습니다”라고 말하더니 성 원장의 얘기를 꼼꼼하게 받아 적었다. 20일쯤 뒤 장 주석의 방문이 확정된다.
 
성 원장은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장쩌민 주석은 분재를 일일이 관찰했고 설명문도 꼼꼼히 읽은 뒤 궁금한 게 있으면 내게 묻곤 했어요. 접시를 선물로 주시고 휘호를 써 주셨고, 나는 분재를 답례로 드렸죠.(사진)”
 
주석이 다녀가고 난 뒤부터 중국 고위 인사들이 계속 들이닥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쩌민 주석이 “일개 농부가 정부 지원 없이 혼자서 세계적인 공원을 일궜는데 그 개척정신을 배우라”고 지시를 했다고 한다. 그 후 후진타오(98년 당시 부주석)·시진핑(2005년 당시 저장성 서기) 등 중국 최고 지도자가 방문하면서 생각하는 정원과 인연을 이어가게 된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 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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