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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의 한반도평화워치] 시진핑의 6·25전쟁 발언, 항의 않고 미봉하면 왜곡 고착화돼

중국의 역사 왜곡과 미래 평화

1954년 10월 1일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가운데)이 천안문 성루에서 마오쩌둥(오른쪽)과 나란히 서서 신중국 5주년 기념 열병식을 보고 있다. 마오쩌둥은 김일성의 남침 계획에 동의하고 미군이 38선을 넘으면 중국군을 보내 돕겠다고 약속했다. [사진 바이두]

1954년 10월 1일 중국을 방문한 김일성(가운데)이 천안문 성루에서 마오쩌둥(오른쪽)과 나란히 서서 신중국 5주년 기념 열병식을 보고 있다. 마오쩌둥은 김일성의 남침 계획에 동의하고 미군이 38선을 넘으면 중국군을 보내 돕겠다고 약속했다. [사진 바이두]

한국전쟁 70주년을 맞아 중국의 한국전쟁에 대한 발언이 예사롭지 않다. 한국전쟁에 대한 각국 사료의 공개로 인해 이미 확정된 역사 진실을 부정하고, 나아가 급속한 관계 발전의 전환점을 이루었던 한·중 수교 이전의 관점을 복원한 느낌이다.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 합작 공격’이라는 전쟁의 진실 은폐
중국의 전쟁 개입·지원으로 대참화 초래됐는데도 사과 없어
일본 역사 부정엔 반발하면서 중국의 왜곡에 침묵하는 건 모순
한때의 환상으로 현실주의 외면한 정부와 민주세력의 각성 시급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 10월 19일 항미원조 70주년 전시 개막전과 23일 70주년 기념대회에 연속 참석하였다. 기념대회에서 그의 발언의 요점은 다섯 가지였다. 1950년 6월 25일의 전쟁 발발, 미국의 한국 내전 무력간섭, 중국의 항미원조전쟁(抗美援朝戰爭) 참전, 중·조 공동 생사와 우의, 항미원조전쟁의 위대한 승리.
 
현대 중국의 건설과 발전, 국가 안보와 국제관계에서 한국전쟁이 차지하는 결정적 위상에 비추어 시 주석의 발언이 갖는 역사적 의미와 무게는 맞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중국은 건국 과업을 완수하였고, 전시 미·중 전쟁과 중·소 갈등을 통하여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의 문제는 다른 차원이다. 우선, 시 주석은 한국전쟁 개시의 주체와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전쟁 결정 과정에서 마오쩌둥의 연루와 책임을 덮는 동시에, 자신들의 참전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진실의 은폐였다. 이렇듯 전쟁 발발과 성격에 대한 한·중의 인식은 정반대다. ‘남침’ 대 ‘남침 부인’,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의 합작 공격’ 대 ‘남북 내전’의 대립 구도다. 게다가 한국군은 괴뢰군으로 폄하된다. 그러나 사실을 은폐한다고 진실이 바뀔 수는 없다. 한국이 맞고 중국이 틀렸다.
  
한국전쟁은 중국 애국주의 열풍의 재료
 
또 한국전쟁에서 미국과 유엔은 내전에 개입한 것이 아니었다. 먼저, 한국전쟁은 전혀 내전이 아니었다. 전쟁의 결정 과정부터 이미 소련과 중국이 깊숙이 개입·지원하였기 때문에 시작부터 이 전쟁은 내전이 아니었다. 세계 내전, 곧 세계 시민전쟁이었다.
 
전쟁 발발이라는 원인 행위에 소련과 중국이 전면 개입하지 않았다면 대응 행위로써 유엔과 미국의 참전은 불필요하였다. 아니, 아예 전쟁 자체가 초래되지 않았다. 공격은 세계전쟁으로 시작해놓고, 방어는 내전으로 대응하라는 이중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미국과 유엔의 참전을 비판하려면 소련과 중국의 전쟁 개시 지원은 더 크게 비판받아야 한다.
 
기억 전쟁의 불균등도 심각하다. 국가적으로 필요할 때마다 중국은 한국전쟁 기억을 수시로 불러들인다. ‘항미원조’와 ‘상감령’ 기억은 단골 소재다. 한국전쟁은 중국 애국주의 열풍의 중심 재료다. 한국전쟁을 다룬 영화 ‘상감령(上甘嶺)’(1956)의 주제가 ‘나의 조국’은 세기를 넘어 끊임없이 호출된다. 상감령 전투는 치열했던 저격능선 전투를 말한다. ‘나의 조국’은 중국 굴기의 상징인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도 등장하며 미·중 정상회담 때도 돌발적으로 연주된 바 있다. 최근의 미·중 무역 전쟁 와중에 화웨이 회장도 상감령 전투를 불러낸다. 한국이 선린우호를 위해 한국전쟁에서 중국의 부정적 역할에 대한 공식 기억을 저감하였음에 반해, 중국은 거꾸로 애국주의의 핵심 소재로 삼아왔음을 알 수 있다.
 
중국 영화 ‘상감령(上甘嶺)’(1956) 포스터. [중앙포토]

중국 영화 ‘상감령(上甘嶺)’(1956) 포스터. [중앙포토]

중국은 지금껏 전쟁 발발 과정에서의 개입과 지원을 통해 대 참화를 초래한 데 대해 사과한 적이 없다. 대규모 참전으로 학살과 피해를 낳은 데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과거 적대를 넘어 관계를 정상화할 때는 일정한 역사 정리가 필수다. 1992년 한·중 수교 당시 중국은 한국전쟁에 대해 사과했어야 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오늘의 한·중 관계는 당시 오류의 후과를 치르고 있다. 한·중 수교에 비하면 경제 보상까지 받아낸 1965년 한·일 수교는 외려 득책이었는지도 모른다.
 
한국은 수교 시의 사과 불(不) 요구 이후에도, 2014년 437구를 시작으로 올해 117구에 이르기까지 7회에 걸쳐 중국군 유해를 송환하였다. 국제 규범과 인도주의 원칙을 존중했기 때문이다. 인도에는 인도로, 호의에는 호의로 응대하는 것이 문명국가의 행동 윤리다. 유해 발굴과 송환을 포함해 한국전쟁 유산의 극복에 관한 한 한국은 중국을 최대한 배려해 왔다. 중국처럼 한국이 필요할 때 수시로 중국의 한국전 발발 개입과 참전을 불러내 비판한다면 미래 한·중 관계의 건전한 발전이 가능할까? 호혜는 이웃에 대한 예의의 출발이다.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 무력 개입이 깊을수록 패망과 손해였다. 평화를 위한 교량 역할이 필수인 경계 국가 한국의 지정학적 본질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참전으로 명나라가 멸망하였고, 청일전쟁으로 청나라가 붕괴하였으며, 한국전쟁 참전은 중국의 장기 고립과 전체주의를 낳았다. 상호 주권 존중이 한·중 서로를 위해 필수인 까닭이다.
 
한국에서 19세기 말 독립문·독립관을 포함하여 근대적 ‘독립’ 개념과 의식이 처음 등장한 연유도, 패권적인 중국의 간섭 시도로부터의 주권 확보를 위한 자주 의식의 산물이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중 상호 대등과 존중, 자주와 자율을 말한다. 맹자를 빌리면 사소사대(事小事大)다. 이게 정답이다. 아니 기실 오늘날 소와 대는 없는 것이다. 각각 추호도 군림하거나 비굴하면 안 된다.
 
북벌(北伐)에서 북학(北學)으로 바꾼 현실주의자들의 균형감은 놀랍다. ‘오랑캐를 물리치기는커녕 우리 안의 오랑캐 심성을 바꾸지도 못할까 걱정’한 박제가는 ‘죽을죄를 무릅쓰고’ 정조에게 올린 상소에서 200년 평화에 안주하여 천재일우의 기회에 미봉책으로 일관하다가는 나라가 우환에 빠지고 말 것이라고 경고한다. 100년 후 그의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지금도 한·중 경제 관계 때문에 역사 왜곡을 항의도 없이 미봉하면 안 된다.
 
하여, 내부 성찰은 더없이 무겁다. 전면적 외세 개입 상황을 수동적·능동적으로 초래했던 같은 유형의 반(反) 자주적 외세 의존적 세 지도자, 선조(宣祖)·고종(高宗)·김일성에 대한 엄한 비판이 먼저다. 그들은 한반도의 안전과 수호, 내부 평정과 통일을 위해 각각 명·청, 그리고 소련·중국에 전면 개입을 요청하였다. 피동적 요구였던 임진왜란은 젖혀두고라도, 민족 내부의 분열과 대결을 대화와 타협을 통해 극복·통합을 추구하기는커녕, 동족 탄압과 제거를 위해 앞장서서 외세를 불러들인 청일전쟁 때의 고종과 한국전쟁 당시의 김일성의 반민족적·반민중적 행태는 엄히 비판받아야 한다.
  
국가 간 신뢰는 진실에서 나와
 
한국 정부와 민주 세력의 각성이 시급하다.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한때의 환상 때문에 현실주의를 놓쳐선 안 된다. 한국전쟁 왜곡을 통한 과거 소환처럼 중국의 냉정한 남북·정경(政經) 분리를 상징하는 현실주의도 없다.
 
이념이 아닌 현실을 보라. 이념과 전체주의에 대한 문맹으로 과거에 반제·반미의 편향에 빠졌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국제관계에서 인권·자유·평등·민주주의·평화의 보편 가치에 눈을 떠야 한다.
 
만연된 한국 사회의 기억 분열증도 극복해야 한다. 중국의 사실 부정에 대한 온건 대응은 일본의 역사 부정에 대한 강경 반발과 정반대다. 식민 침략의 부정은 강력히 반발하면서, 공산 침략의 부정엔 침묵으로 대응한다면 자기 분열의 질병일 뿐이다. 더욱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명제가 먼 과거인 식민 침략에만 해당하고, 가까운 과거인 공산 침략에는 해당하지 않는다면 그런 허구는 전혀 민족주의가 아니다.
 
국가 간 신뢰는 진실에서 나온다. 왜곡은 진실을 이기지 못한다. 또 진실의 부정 위에 구축되는 우의는 허구다. 역사는 엄정하며 진실은 견결하다. 오랜 이웃 중국이 진실에 근거하여 한·중 우호와 세계 평화를 함께 가꿔가길 촉구한다. 은폐와 왜곡을 넘는 진실의 햇빛 아래 함께 선린과 평화의 미래를 만들어가길 소망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리셋 코리아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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