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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클럽 이름은 판매 대상이 아니다

뉴욕 레드불스 시절의 티에리 앙리. Gettyimages

뉴욕 레드불스 시절의 티에리 앙리. Gettyimages

 
지난 칼럼에서 언급했듯이 소수의 유럽프로축구팀은 클럽 이름에 스폰서 기업의 상호를 넣으려고 시도했다. 웨일즈와 오스트리아 축구협회는 이를 허용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럽 프로리그에서 스폰서 명칭이 클럽 이름에 들어간 경우는 찾아볼 수 없다. 왜 그럴까.
 
대부분의 유럽축구협회는 이러한 형태의 스폰서십을 승인하지 않는다. 2000년대 들어 레드불은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와 북미의 메이저리그사커(MLS)팀을 인수해 자사의 이름을 붙인 클럽명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렇게 탄생한 ‘레드불 잘츠부르크’와 ‘뉴욕 레드불스’는 오스트리아 분데스리가와 MLS가 '2류 리그'라는 이미지 강화에 일조했다.
 
이렇듯 유럽프로리그는 소유 회사의 이름을 클럽에 붙이는 것에도 거부감을 보인다. 하물며 오너가 아닌 스폰서의 명칭을 클럽 이름에 넣은 것을 허용할 리 만무하다. 
 
아울러 팔 수 있는 것은 모든 걸 파는 축구클럽들도 이름은 팔 생각이 없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상당한 자금을 확보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팀에 재앙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클럽이 팬들과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할 때 필요한 핵심 자산은 이름이다. 이름은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팀의 이름은 단지 그들이 하는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따라서 팬들은 클럽의 이름을 연호하고, 그들을 응원한다. 팀의 정체성도 이름에서 나온다. 정체성으로부터 공유된 임무와 목적이 나온다. 정체성이 약한 팀들은 쉽게 뭉치지 못하고, 비효율적인 경우가 많다.  
 
축구클럽을 포함해 모든 프로스포츠 팀은 고유의 이름, 로고, 색, 캐치 프레이즈 등을 가지고 있다. 즉 자신만의 브랜드가 있는 것이다. 특히 이름은 브랜드의 토대이다. 그리고 브랜드는 클럽과 고객, 즉 팬과의 약속이다. 브랜드를 통해 팬들은 특정 제품과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고, 팀은 경쟁팀과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당신의 팀이 새로운 팬을 끌어들이려고 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왜 우리가 다른 팀이 아니라 당신 팀을 응원해야 하나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명확한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팀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다.
 
특히 클럽은 브랜딩을 통해 브랜드의 이미지, 팀의 정체성과 공감할 수 있는 자신만의 강점을 팬의 마음속에 심어준다. 브랜딩은 장기적인 투자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팬들은 특정 브랜드에 친숙해진다. 그렇게 신뢰가 쌓여간다. 이를 바탕으로 팀의 가치는 상승하고, 이러한 클럽은 새로운 팬들과 스폰서를 유치하는 데 유리해진다. 따라서 세계적인 기업이나 유명 스포츠클럽은 그들의 브랜드를 만들고 키우는데 엄청난 노력과 돈을 들인다.  
 
하지만 클럽의 이름이 스폰서와의 계약 기간에 따라 몇 년마다 한 번씩 바뀐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러한 클럽은 자신만의 브랜드를 가질 수 없다. 정체성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름이 계속해서 변하는 클럽은 일관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고사하고, 팬들도 혼란스럽게 만들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팀에 대한 팬들의 충성도가 높아질 수 없다.  
 
클럽의 생존을 위해 이름을 팔 수밖에 없는 KBO리그 히어로즈 같은 특이한 경우도 있다. 바람직한 마케팅 기법은 아니지만, 꼭 이름을 팔 수밖에 없다면 클럽은 스폰서를 구할 때 어떠한 점을 먼저 고려해야 할까. 일단 높은 금액을 제시하는 기업에 끌릴 것이다. 하지만 히어로즈가 더 심각하게 고려해야 할 점은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는 기업을 찾는 것이다.  
 
잉글랜드의 프리미어리그(EPL)의 예를 참고해 보자. EPL의 셔츠 스폰서십 역사를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특정 분야의 기업이 스폰서로 인기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맥주와 통신회사, 가전 업체 등이 중요한 스폰서였다. 2000년대 들어 셔츠 스폰서로 등장해 가장 큰 주목을 받은 기업군은 도박회사이다.
 
사진=영국 가디언

사진=영국 가디언

 
EPL에서 도박회사를 셔츠 가슴에 새긴 최초의 클럽은 벳페어(Betfair)의 후원을 받은 2002~03시즌의 풀럼이었다. 당시만 하더라도 도박회사와 스폰서 계약을 맺은 클럽은 보통 규모가 작고 성적도 중하위권 수준이었다. 하지만 아스톤 빌라와 토트넘같이 전통을 자랑하는 클럽들이 도박회사를 가슴에 새기면서, 도박 관련 스폰서는 EPL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2016~17시즌 EPL에 소속된 클럽의 절반인 10개 팀이 도박회사의 로고를 셔츠 앞면에 새겼다.
 
도박회사는 리그의 타이틀 스폰서십에도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스카이 벳은 2013년부터 현재까지 풋볼리그(2, 3, 4부 리그)의 타이틀 스폰서이다. 스코틀랜드의 1부 리그인 스코티시 프리미어십도 도박업체 래드브록스와 타이틀 스폰서십 계약을 체결했다.
 
잉글랜드 축구의 자존심인 EPL은 타이틀 스폰서인 버클레이 은행과의 계약이 2015~16시즌 끝났을 때, 여러 도박회사로부터 계약 제안을 받았다. EPL은 축구의 고결성을 지키기 위해 그들과의 스폰서십 계약 가능성을 일축했다. EPL은 “우리의 타이틀 스폰서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Our title sponsorship is not for everybody)”고 밝히며 돈보다 우선시되는 가치를 역설했다.  
 
프로축구리그의 수익 창출은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돈이 중요한 프로 스포츠라고 해도 이보다 중요한 가치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우리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맨유로부터 거절당한 온라인 카지노업체 맨션은 결국 토트넘의 셔츠 스폰서가 되었다. 사진=스카이스포츠

맨유로부터 거절당한 온라인 카지노업체 맨션은 결국 토트넘의 셔츠 스폰서가 되었다. 사진=스카이스포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도 EPL 사무국의 결정과 비슷한 용단을 내린 적이 있다. 2006년 보다폰을 대체할 새로운 셔츠 스폰서를 찾던 맨유는 LG 전자 등 여러 기업과 협상했다. 이때 도박회사인 맨션(Mansion)이 4년 총액 7000만 파운드(1300억원)라는 기록적인 금액뿐 아니라, 인터넷에서 공동 브랜드의 게임을 만들어 수익을 나누자는 달콤한 제안을 했다. 한때 맨유의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맨유는 결국 맨션이 제안한 액수보다 낮은 4년 총액 5600만 파운드(820억원)에 보험회사 AIG와 손잡았다. 경기장 안팎에서 최고의 팀이 되겠다는 각오로 브랜드 가치 1위를 달성한 맨유가 도박업체 이름을 셔츠 앞면에 새길 수 없었다. 진정한 명문 클럽은 돈의 유혹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가치와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이정우 경영학 박사(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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