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9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의 한 야산에서 발견한 장수말벌. 왕준열
"저기예요, 저기!"
[애니띵]장수말벌 포획작전
평범한 덤불로 보였지만, 잠시 후 '우웅' 거리는 소리가 나며 손가락 크기의 물체가 튀어나왔다. 강풍기 소리를 내며 나는 물체의 정체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말벌, 장수말벌이다.
※자세한 스토리는 영상을 통해 확인하세요.
장수말벌 등장에 발칵 뒤집힌 미국

미 워싱턴주 농업부 직원들이 방호복을 입고 장수말벌을 퇴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북미 대륙에 처음 등장한 장수말벌에 놀란 미 워싱턴주 당국은 지난달 22일 곤충학자 수십명을 동원해 소탕 작전을 벌였다. 아시아에서 온 이 외래종을 퇴치하기 위해 대대적인 작업에 나섰지만, 확산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외신에 따르면 채집한 벌집을 연구한 결과 어린 여왕벌이 200마리나 더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장수말벌 독침, 보호복도 뚫어…쏘이면 죽을 수도"

지난 9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의 한 야산에서 발견한 장수말벌집. 왕준열
주민의 안내로 벌집을 발견한 취재진은 준비한 방호복을 입었다. 새하얀 방호복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단히 밀폐돼 마치 우주복 같았다. 양봉업자가 입는 가벼운 옷을 생각했던 기자는 약 20분 동안 낑낑거리며 방호복을 입었다.
최 교수는 "장수말벌은 독침 길이가 0.7㎝나 돼서 두꺼운 장갑도 뚫는다"며 특수제작한 옷을 입는 이유를 설명했다. 취재진과 함께 현장에 온 주민은 장수말벌에 쏘인 배의 흉터를 보여줬다. 그는 "옷을 입어도 물려요. 정말 죽을 뻔했죠"라고 말했다.

지난 9월17일 인천 중구 영종도의 야산에서 기자와 전문가가 장수말벌집을 제거 작업을 벌이고 있다. 남궁민 기자
다른 벌과 달리 장수말벌은 바위틈이나 땅속에 집을 짓는다. 이날 찾은 벌집은 죽은 나무뿌리 아래에 있었다. 땅을 파고 나무를 자른 지 약 1시간 만에 벌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흥분한 장수말벌이 더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장수말벌 1000마리 잡아야 독 1g…"신약 물질 찾는다"

장수말벌의 꽁무니에서 독낭(독주머니)를 꺼내고 있다. 얇고 긴 침의 끝에 달린 작은 흰색 알갱이가 독낭. 이 독낭은 1000개 가량 모아야 1g 정도의 독을 얻을 수 있다. 왕준열
전국에서 제보를 받아 벌집을 따러 다니는 최 교수는 여름이면 연구실에 있는 시간보다 숲을 헤매는 시간이 많다. 독을 연구하는 이유에 대해 최 교수는 "장수말벌 독은 혼자 성인 여럿을 죽일 만큼 치명적이지만, 그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성분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땅속에서도 곰팡이가 피거나 젖지 않는 장수말벌집의 특성도 연구 대상이다.
"장수말벌 없으면 해충 창궐…공존 고민해야"

지난 9월 인천광역시 중구 영종도의 한 야산에서 발견한 장수말벌. 왕준열
최 교수는 "곤충계 최상위 포식자인 장수말벌이 사라지면, 그건 생태계가 무너졌다는 의미"라면서 "장수말벌 한 마리가 수백 마리의 노린재·파리 같은 해충을 잡아먹기 때문에, 장수말벌이 사라지면 해충이 창궐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종이지만, 국내에서는 생태계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
이어 최 교수는 "도시가 넓어지면서 숲은 파괴되고 공원만 넓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도심 속에 자리 잡은 말벌을 마주치게 되는 것"이라면서 "서식지를 지키면서 인간과 말벌이 함께 사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수말벌 여왕벌을 박제한 표본. 최문보 경북대 교수가 장수말벌을 직접 잡아 제작했다. 남궁민 기자
남궁민 기자 namgung.min@joongang.co.kr, 영상=왕준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