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혁주 논설위원
6년 전 국회 소주성 토론회에서
“박근혜 정부 부채주도성장” 비판
정작 현 정권은 빚 늘리기 일변도
게다가 이 비율은 정부 부채만 계산한 것이다. 한 나라의 재정 건전성은 여기에 가계와 민간 기업, 공기업 부채를 전부 포함해 따져야 한다. 그게 나라 재정과 무슨 상관이냐고? 실제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국가 신용등급을 산정할 때 이런 점들을 살핀다. ‘은행의 신용 위험’이란 항목을 통해서다. 은행에 난리가 나면 정부가 뒷감당을 해야 하니, 나랏빚과 가계, 민간 기업, 공기업 부채가 사실은 다 한통속이란 의미다. 쉽게 말해 글로벌 신용평가사 생각은 “가계·기업 빚에 한국 정부가 사실상 보증을 서고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이렇게 온갖 부채를 다 계산하면 어떨까. 아마 지금쯤 5000조원을 훌쩍 넘었을 거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4916조원이었다. GDP 대비 260%다. 265% 언저리인 미국·유럽과 별 차이가 없다. 저쪽은 여차하면 돈 찍어 빚 갚을 수 있는, 이른바 ‘기축통화국’인데도 그렇다. 이에 대한 반론도 있다. “한국 국채도 90% 가까이 국내에서 사들였다. 극단적인 경우엔 기축통화국처럼 돈을 찍어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수긍할 수 없다. 돈을 찍으면 다음은? 원화 가치 폭락과 경제 비상이다. 미국 유럽도 마찬가지 아니냐고? 똑똑히 봤다. 금융위기 때 미국과 유럽이 그렇게 달러·유로를 풀어도 환율이 크게 달라지 않았음을. 저들은 되고 우리는 안 되는 게 기축통화국 아닌 나라의 설움이다.
여당은 이런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저 쓰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다. 하긴 미래에 큰 부담이 되든 말든, 당장 표에 유리하면 거리낌 없이 빚을 내는 게 정치권의 특성 아니던가. 어차피 자기가 갚는 것도 아니고, 세금 걷어 나라가 갚는 빚인데.
그래서 재정준칙이 중요했다. 미래의 재원을 함부로 당겨 쓰지 못하게 하는 게 재정준칙이다. 그런데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재정준칙은 완전히 맹탕이었다. ‘국가 채무가 GDP의 60%를 넘지 않던가, 한 해 재정적자가 GDP의 3%를 넘지 않으면 된다’는 내용이다. 두 조건 중 하나만 맞추면 된다. 허술하기 짝이 없다. 잘 지켜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아 나랏빚이 GDP의 100%에 이를 수 있다. 여권 뜻에 따라 고분고분 이런 재정준칙을 만들어 놓고, 엉뚱한 이유로 사표를 내는 홍남기 경제 부총리의 속내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정부만 아니라 가계와 기업의 빚도 폭증세다.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특히나 가계 빚은 집값·전세 폭등의 영향이 크다. ‘이생집망(어차피 이번 생에 집 장만하기는 망했다)’이라는 생각에 영혼까지 끌어 주식 투자용 빚까지 내고 있다. 나라 전체가 빚더미를 향해 달려가는 형국이다.
6년 전인 2014년 11월 12일 국회에서 토론회가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이 주최한 소득주도성장 토론회였다. 문 의원은 기조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빠르다. 박근혜 정부는 부채로 성장을 떠받치는 경제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부채주도성장은 결국 다음 정부에 폭탄을 떠넘기는 무모한 정책이다.”
아이러니다. 그렇게 말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가계 대출은 폭증 일로다. 나랏빚 늘리기는 한층 가속 페달을 밟겠다고 한다. 이건 다음 정부에 떠넘기는 폭탄이 아니고 무얼까.
권혁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