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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2등 국민’은 침묵하지 않는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국가가 범죄를, 그것도 조직적으로 저지르는 현장을 목격한 시민은 어떻게 해야 할까. 개인에게, 그것도 권력 편이 아닌 ‘2등 국민’에겐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조성진 교수(경성대 에너지학과)의 ‘모범 답안’을 소개한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강행은
거대한 국가 권력의 조직범죄
‘정의의 평범성’이 잡아냈다

 
조 교수는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에 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끌어낸 숨은 공신이다. 그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상하고 비상식적이며 비정상적인 결정’에 질끈 눈을 감았다면 감사원 감사도, 검찰 수사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는 2016년 9월부터 2018년 7월까지 약 2년간 한국수력원자력의 사외이사를 지냈다. 그는 친(親)원전론자다. 신고리 5, 6호기 공사 중단과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때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그의 반대표가 언론의 관심을 불렀고 그 바람에 월성 1호기의 경제성 평가가 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며 완전범죄로 끝날 뻔한 국가 권력의 조직범죄가 꼬투리를 잡혔다.

 
그는 지난달 감사원 감사 결과가 발표됐을 때 “내심 실망했다”고 했다. 관련자 처벌 수위가 너무 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페이지의 감사보고서를 읽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격스러웠다고 했다. 보고서는 어떻게 누가 왜 월성 1호기의 숨통을 끊었는지 낱낱이 기록하고 있었다. 조작과 짜 맞추기로 점철된 월성 1호기 폐쇄의 흑막 속엔 구린내가 진동했다.

 
보고서 완성엔 조 교수의 공이 컸다. 그는 끊임없이 한수원과 정부를 두드렸다. 묻고 따졌다. 조작의 증거를 찾고 수소문했다. 공개적으로 제보를 받았다. 각종 세미나에 참석했고 국회에 나가 증언도 했다. 여당 의원에겐 “국정감사가 소신 밝히는 자리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그렇게 수집한 자료와 녹취록을 감사원에 전달했다. 그게 단서가 됐다. 결코 덮을 수 없던 진실은 그렇게 드러났다.

 
그는 감사보고서를 보고 비로소 알 수 있었다. 왜 2년 전 그날(2018년 6월 15일), 월성 1호기 폐쇄를 결정한 한수원 이사회가 열린 그날, 의장이던 자신이 통보도 없이 잘리고 다른 사람으로 전격 교체됐는지, 왜 회의록이 조작됐는지, 왜 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는 한 달 만에 1000억원 흑자에서 수백억원 적자로 둔갑했는지, 산업부와 청와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지난 2년여 그가 수없이 물었지만 대답을 듣지 못했던 의문들이다.

 
그는 “당시엔 아무것도 모르고 반대했다. 이상해서, 한수원에 큰 손해라 반대했다. 국가에, 국민에게 손해라서 반대했다. 지금 보니 당시 나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 부품 하나였다. 아무 생각 없이 돌아가는 부품”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부품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국가 조직범죄에 대한 단죄는 이제 시작이다. 감사원은 정치적 외압과 전·현직 관료들의 조직적 저항에 밀려 절충과 타협을 택했다. 대신 검찰이 단죄의 칼을 이어받았다. 대선 공약이란 이유로, 대통령 말씀이라는 이유로 법과 규정을 무시하고 국가의 백년대계를 허문 범죄가 유야무야 묻혀서는 안 된다. 그런 나라는 나라도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일제히 검찰 수사에 반발하고 나섰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정치인 총장이 정부를 흔들려고 편파·과잉 수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것은 정치수사이자 검찰권 남용”이라며 “검찰은 당장 무모한 폭주를 멈추라”고 했다.


조성진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나는 탈원전에 반대하는 ‘2등 국민’이다. 아무리 외쳐도 꿈쩍 않는 정부에 절망했다. 하지만 내 앞에서 일어난 일에 눈 감을 수는 없었다”고 했다.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말했지만, 나는 조성진 교수에게서 ‘정의의 평범성’을 봤다. 잊지 않으려 여기 기록한다. ‘2등 언론인’이 할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겠나(나는 탈원전 정부가 들어선 이래 1년에 한 번씩 조 교수의 행적을 이 칼럼에 기록해 왔다. 이번이 마지막이기를 바란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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