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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 진고개 점령한 일본인, 혼마치로 바꿔 식민화 거점 삼아

고개는 삶의 출발점이자 종착지이기도 한 교착지대다. 고개의 지금 모습과 옛 모습은 다를지언정, 이야기는 전해진다. 설렘과 안타까움, 만남과 헤어짐, 옛일과 앞일의 뒤섞임을 크고 작은 고개가 말한다. 하여 ‘스무 고개’는 '20개의 고개'라는 의미보다 고개의 사연을 알아보는 과정이다. 그 고개 이야기를 싣는다.  
 1905년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우측 상단에 창덕궁과 가운데 명동성당이 보이는데, 일본인이 거주한 진고개 일대는 명동성당 남쪽이다. [사진=한국의백년]

1905년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우측 상단에 창덕궁과 가운데 명동성당이 보이는데, 일본인이 거주한 진고개 일대는 명동성당 남쪽이다. [사진=한국의백년]

 2020년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명동성당은 빌딩 숲에 가려 첨탑만 겨우 보이고 진고개 일대의 일본인 주택은 두어 채 정도만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전민규 기자

2020년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명동성당은 빌딩 숲에 가려 첨탑만 겨우 보이고 진고개 일대의 일본인 주택은 두어 채 정도만 흔적을 남기고 있다. 전민규 기자

비탈길을 내려오는 차량에서 고무 타는 냄새가 진동했다. 강원도 평창과 강릉을 가르는 백두대간 상의 진고개다. 고갯마루는 해발 960m로, 북한산 백운대(846m)보다 114m나 높다. 양반다리 꺾인 무릎처럼 구불구불한 된비알(몹시 험한 비탈)을 힘겹게 오르면, 그 너머에는 급전직하를 기대(혹은 걱정)해야 한다. 고무 타는 냄새는, 브레이크를 자지러지게 밟느라 타이어가 마모된 결과다.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 진고개
강원 진고개처럼 진흙길서 유래
강점기 이전 경제· 문화적 잠식
고개 깎아…해방 뒤 이름 충무로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지난달 15일 오후, 라이더 한 명이 숨을 토해내며 월정사 방면에서 진고개 정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라이더들은 미시령보다 진고개를 더 어려워한다. 지난 6월 강릉에서 진고개로 라이딩을 한 이명근씨는 “가파른데다 본격 업힐만 20㎞(미시령은 12.5㎞)로 길어, 진고개는 ‘진짜 고개’라고 부른다”며 혀를 내둘렀다. 이처럼 고개가 길어 ‘긴’이 ‘진’으로 발음되면서 고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진고개는 일대가 진흙이라 붙은 이름이기도 하다. 아닌 게 아니라, 고갯마루의 산길에는 습한 곳에서 자라는 며느리밑씻개·물봉선 등이 피어있었다.
    
평창 사람들은 대관령·한계령 사정이 좋지 않으면 진고개를 이용해 강릉으로 넘어갔다고 한다. 진고개로는 6번, 59번 국도가 뒤섞여 있다. 양양에서 광양까지 494㎞를 흐르는 59번 국도는 진고개로 진입하기 전에 전후치를 만난다. 전후치는 앞이나 뒤나 고개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근처의 부연마을 사람들은 겨울에는 옴짝달싹 못 해, 아예 집을 비우고 낮은 곳으로 거처를 옮긴다
강원도 평창과 강릉을 잇는 진고개. 왼편 해발 960m에 자리잡은 진고개정상휴게소에서 동대산으로 향하는 길 옆에는 드넓은 무밭이 펼쳐져 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평창과 강릉을 잇는 진고개. 왼편 해발 960m에 자리잡은 진고개정상휴게소에서 동대산으로 향하는 길 옆에는 드넓은 무밭이 펼쳐져 있다. 김홍준 기자

진고개는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고개 중 하나다. 해발 960m를 꼭짓점으로 하는, 한반도 남쪽 고개 중 열 번째로 높다. 김홍준 기자

진고개는 백두대간을 넘나드는 고개 중 하나다. 해발 960m를 꼭짓점으로 하는, 한반도 남쪽 고개 중 열 번째로 높다. 김홍준 기자

고갯마루의 진고개정상휴게소 건너편, 동대산으로 향하는 길옆 무밭이 드넓다. 한 상인은 “서울 사람이 땅을 빌려서 농사짓는데, 고랭지 채소라 일반 채소의 3배 값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태풍이 잦은데도 저리 성한 걸 보니, 대박 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진고개로를 넘은 뒤, 59번 국도와 헤어지고 6번 국도와 고속도로를 번갈아 이용해 서울에 들어섰다. 6번 국도인 종로'통'이 눈앞에 펼쳐졌다. 1924년 6월 1일 자 『개벽』은 ‘경성의 20년간 변천’에 이렇게 전한다. ‘그때 경성에는 아직 정(町)이니 정목(丁目)이니 통(通)이니 하는 그동안 보지도 못하던 글자를 가진 지명은 없었다… 새로운 주인인 일본인에게 기존 이름이 불편하니까… 의주통(義州通), 본정(本町) 이 모양으로 모두 저들의 방식으로 고쳐 버리고 말았다.’
 
‘통’은 그러니까, 일본 강점기에 들어온, 주변을 아우르는 거리를 뜻하는 말이다. 정과 정목은 행정단위를 가리킨다.『개벽』이 개탄한 일제 강점기 이전, 1880년대에 시작된 또 다른 강점기가 있었다. 이연경 인천대 교수는 이를 “본격적 식민화 이전 경제·문화적 침투”라고 말했다.


 
#강원 진고개와 서울의 진고개
1861년의 대동여지도는 종로를 한양의 동서축 주요 도로로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로부터 20여 년 뒤, 동서를 잇는 또 다른 길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온통 진흙길이라 강원도의 진고개와 같은 이유로 붙은 이름, 진고개길이다. 두 고개는 약 200㎞ 떨어져 있다.

1904년에 찍은 지금의 명동 입구 모습. 명동은 진고개길에 이웃한 곳으로, 당시 물이 귀해 사진 속의 아낙처럼 물을 길러 다녀야 했다. [사진 한국의백년]

1904년에 찍은 지금의 명동 입구 모습. 명동은 진고개길에 이웃한 곳으로, 당시 물이 귀해 사진 속의 아낙처럼 물을 길러 다녀야 했다. [사진 한국의백년]

위의 사진과 비슷한 각도에서 찍은 2020년 11월의 명동 입구 모습. 빌딩에 가려 명동성당은 안 보이고 쇼핑백을 들거나 핸드백을 멘 행인으로 북적거리고 있다. 김홍준 기자

위의 사진과 비슷한 각도에서 찍은 2020년 11월의 명동 입구 모습. 빌딩에 가려 명동성당은 안 보이고 쇼핑백을 들거나 핸드백을 멘 행인으로 북적거리고 있다. 김홍준 기자

 
한성의 진고개(한자로는 泥峴·니현)는 현재의 충무로2가 일대다. 진고개길은 세종호텔 뒤편, 즉 서울중앙우체국 옆에서 광희문까지 이른다. 1882년 이 진고개에 일본인 40명이 들어앉았다. 임오군란 때 본국으로 철수했던 관리들과 상인들이었다. 위의 『개벽』에서 언급한 ‘본정(本町·혼마치)’은 바로 이 진고개다. '으뜸 거주지'란 뜻의 지명을 일본인들이 스스로 붙였다. 이곳이 해방 이후 ‘충무로’로 이름을 바꾸기 전까지, 일제 강점기에 줄곧 그렇게 불렀다.
 
이 교수가 쓴 『한성부의 작은 일본, 진고개 혹은 本町(spacetime)』에 따르면, 청일전쟁 이듬해인 1896년 진고개의 일본인 거류민은 1년 새 두 배 이상 급증한 1839명(500호)에 이르렀다. 러일전쟁 직후인 1906년에는 1만 명을 넘어섰고 경술국치 1910년에는 3만4400명이 됐다.
 
# 일본인, 초기에는 북촌은 못 넘봐
2020년 10월의 ‘서울 진고개’는 고개로 보이지 않는다. 명동성당 터와 엇비슷한 높이였는데, 일제 강점기를 시작으로 몇 차례 깎여나갔기 때문이다. 지나가는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 곳이 고개였는지 의아해 할 정도였다. “진고개? 음식점 이름으로 알고 있는데….”라고 반문하는 이도 있었다.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진고개는 사실상 일본의 자치 구역이었다. 공사관·영사관은 물론 화재 진압과 치안을 담당한 소방조가 있었다. 학교·병원·사찰·은행 등이 속속 들어섰다. 1909년 세운한국은행은 1912년 조선은행으로 이름을 바꿨는데, 최근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글씨가 머릿돌에 새겨졌다는 게 문화재청의 검증으로 밝혀졌다.
 
한성부의 진고개(현재의 충무로2가)는 1880년대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혼마치(本町)로 불렸고 이후 공식 지명이 됐다. 사진은 1940년대의 혼마치 모습.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한성부의 진고개(현재의 충무로2가)는 1880년대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혼마치(本町)로 불렸고 이후 공식 지명이 됐다. 사진은 1940년대의 혼마치 모습. [사진 국사편찬위원회]

한성부의 진고개는 1880년대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혼마치(本町)로 불렸고 이후 공식 지명이 됐다. 사진은 2020년 충무로2가가 된 진고개. 김홍준 기자

한성부의 진고개는 1880년대부터 일본인들에 의해 혼마치(本町)로 불렸고 이후 공식 지명이 됐다. 사진은 2020년 충무로2가가 된 진고개. 김홍준 기자

진고개에 제한된 일본인 거류지는 점차 커졌는데, 중요한 ‘사건’이 몇 개 있다. 1894년 일본인 상점이 조심스럽게 남대문로에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거류지는 남대문 쪽으로 서진했다. 남대문에 막히자 반대편인 묵정동·쌍림동으로 동진했다. 일본인들은 이곳의 고개를 갈아엎고 신정(新町)이라 이름 붙인 뒤 요릿집·유곽 등 유흥업소를 세웠다. 1895년 시작한 진고개길~남대문로 도로개수사업과 이즈음의 상·하수도 확충, 가로등 설치 등도 중요한 포인트다. 이 교수는 “일본인들의 이런 기반시설 투자는 진고개가 자신들의 임시 거주지가 아닌 정주지라는 인식을 가졌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진고개, 즉 혼마치는 별천지가 됐다. 이곳 상점에는 일본인보다 한국인이 더 많았다. 1901년부터는 일본 지명과 한국 지명이 병기됐다. 그만큼 일본인 거류지역이 확대되고 강성해졌다는 것이다. 이때 진고개를 중심으로 한성부 ‘남촌’을 장악한 일본은 차마 을지로 너머의 북촌을 넘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1906년 일본인 거류지는 돈의문·숭례문·모악·아현까지 뻗었고 점차 막강한 자본력으로 북촌 시장을 잠식했다. 일제 강점기 이전의 경제·문화적 침투는 이렇게 이뤄진 것이다. 
 
언론인 정수일은 『별건곤』 1929년 9월호에 ‘한 번 그네들의 상점에 들어서면 사람의 간장까지 녹여 없앨 듯 친절하고 정다운 일본인 점원들의 태도에 다시 마음과 정신이 끌리고 말어…‘돈’은 그네들의 손으로 옮기고 마는 것이다‘고 적었다.
 
1907년 일본 왕자의 방문은 당시 혼마치의 위상을 보여준다. 실록은 이렇게 전한다. ‘일본국 황태자 요시히토 친왕(嘉仁親王)이 방문차 왔으므로 (순종이) 인천항에 거동하여 만나보았다. 황태자(영친왕 이은)가 따라가서 만나보았으며, 동반하여 서울로 돌아왔다(순종실록 1907년 10월 16일).’
 
요시히토의 숙소는 바로 혼마치에 있었다. 순종과 영친왕은 번갈아 가며, 혹은 함께 요시히토를 매일(17일~19일) 찾았다. 진고개의 일본인들은 요시히토가 가는 길에 하얀 모래를 뿌렸다. 일진회는 대녹문(아치형 문)을 세웠다. 요시히토 방문에 앞서 숭례문 주변 성곽이 허물렸다. “대일본 천황의 황태자가 약소국 성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치욕”이라는 일본 측의 주장에 성곽을 헐어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하지만 이를 뒷받침할 기록은 없다. 한양도성 성곽이 1907년부터 급격히 사라지게 된 것은 분명하다.
서울 중구 회현동에 남아있는 일본식 2층 주택. 전민규 기자

서울 중구 회현동에 남아있는 일본식 2층 주택. 전민규 기자

그렇다면 진고개는 왜 일본인들의 터전이 됐을까. 이 교수는 “진고개 근처에 임진왜란 때 왜장 마시타나가모리(增田長盛)의 주둔지였던 왜성대가, 조선 때 일본 사절단이 머문 동평관이 있었다는 건 일본인에게 큰 의미”라며 “실질적인 이유로는 북촌보다 땅값이 싸고 상대적으로 낙후한 지역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현재의 진고개, 아니 충무로2가 곳곳에 일본어 간판이 보인다. 일본인들이 남긴 적산가옥 중 경제·문화적 침투가 먼저 이뤄진 1910년 이전의 일본식 주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1930년대에 지었다는 쓰러질 듯한 일본식 2층 집은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공기를  더 마시려는 듯, 현관을 열어놓고 있다. 그 공기가 벌써 차다. 길은 바이러스의 혼란과 뒤섞여 스산하다.
   
역사의 한 공간으로서의 진고개는 복합적이다. 이 교수는 “일본 침략의 포석이었던 지역이지만, 서울의 근대화 과정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지역이기 때문에 도시 공간의 역사 그 자체로 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픈 역사도, 불편한 역사도 역사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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