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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욕 서슴지 않는‘솔직 외교’…김정은 피곤해진다

미국 대선 긴급진단 - 바이든의 외교 스타일

2016년 열린 한미일 차관협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당시·오른쪽 둘째)이 임성남 외교부 차관(오른쪽 첫째)과 얘기하고 있다. [사진 주한 미 대사관]

2016년 열린 한미일 차관협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당시·오른쪽 둘째)이 임성남 외교부 차관(오른쪽 첫째)과 얘기하고 있다. [사진 주한 미 대사관]

“나는 당신이 빌어먹을 전범이고 응당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외교는 겸손하면 실패’가 좌우명
2번 방한, 과거사에 한국 편 들고
김대중 심기 ‘빙의’한 듯 꿰뚫어
‘정보7 직감3’ 원칙 ‘감 외교’ 신봉

미국 대통령 당선이 유력한 조 바이든이 취임 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난다면 이렇게 쏘아붙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을 수 없다. 바이든은 1993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밀로셰비치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빌어먹을 전범’이라고 일갈했다. ‘학살자’란 비판을 받긴 했지만 엄연한 국가 정상에게 미국 상원의원이 이런 독설을 내뱉은 것이다.
 
1979년. 바이든은 지미 카터 미 대통령 행정부를 대신해 모스크바에서 소련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알렉세이 코시긴 총리와 마주 앉았다. 코시긴이 유럽에 주둔 중인 소련 탱크 숫자를 실제보다 훨씬 적게 알려주자 바이든은 “코시긴 총리님, 우리(미국)식으로 말해볼까요? 헛소리 작작해!”라고 쏘아붙였다. 당황한 통역은 이 말을 “농담 마세요”라고 돌려 말해야 했다.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12년이나 활약한 바이든은 워싱턴 최고의 외교통으로 불린다. 그 바이든의 외교 키워드는 ‘솔직’이다. 그는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Promises to Keep)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만난) 세계 지도자들은 나약한 태도의 냄새를 잘 맡았고, 진정성이 부족한 걸 포착하는 레이더를 갖고 있었다. 겸손은 솔직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걸 경험으로 배웠다. 솔직히 말하고 힘을 드러내는 게 헬무트 슈미트 서독 총리 같은 거물급 정상의 신뢰를 얻는 길이었다.”
 
바이든은 김정은에게도 ‘솔직’한 표현을 했다. 지난달 22일 미 대선 마지막 TV토론에서 김정은을 ‘폭력배(thug)’라고 부른 것이다. 전직 고위 외교관은 “6번이나 핵실험을 한 독재자 김정은에 대한 바이든의 인식”이라며 “‘폭력배’란 표현이 바이든 행정부의 대북 기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바이든은 ‘적’이라도 관계는 유지해야 한다는 철학도 갖고 있다. 자신의 멘토였던 애버렐 해리먼 전 소련 주재 미 대사가 “외국 정상이 ‘공산주의자’라도 다 같은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반드시 직접 만나 보고, 관계를 유지하면 그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조언해준 걸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한다.
 
외교에 대한 바이든의 또 하나의 원칙은 ‘정칠직삼(정보 7할, 직감 3할)’이다. 본인의 말이다. “36년간 상원의원을 지내며 7명의 미국 대통령을 지켜봤는데 대통령은 정책을 결정할 때 필요한 정보의 70% 정도만 얻는다는 걸 알게 됐다. 결국 나머지는 자신의 판단과 지혜로 채워야 한다.”
 
직감의 힘을 믿기 때문인지 바이든은 외교 현안에 대해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곧잘 내놓는다고 한다. 2013년 방한한 바이든은 박근혜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북한과 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한 파격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에서 청와대 국가안보실 차장과 외교부 차관을 지낸 조태용 국민의힘 의원(초선·비례)은 “미 행정부 최고위 인사치곤 대단히 유연한 대북 접근 방안을 내놓아 놀랐다. 다만 미 행정부 공식 입장이 아니라 성사되진 않았다”고 회고했다.
  
바이든 외교 참모 … 블링켄 주목
 
바이든의 말말말

바이든의 말말말

바이든의 외교 참모진은 30년간 그의 보좌관을 지낸 앤소니 블링켄 전 국무부 차관이 핵심인물로 꼽힌다. 바이든 행정부에서 국가안보보좌관이나 국무장관 후보 1순위에 올라있다. 한국에선 조태용 의원이 박근혜 정부에서 외교부 차관을 지낼 때 그와 친분을 쌓았다. 당시 외교부와 미 국무부가 5차례 개최한 북한 정책 고위급 협의에서 파트너로 만나 가까워진 것이다.
 
바이든은 2001년 8월 상원 외교위원장, 2013년 12월 부통령 자격으로 두번이나 한국을 찾았다. 방한 때마다 한국에 좋은 기억을 갖고 떠났다는 후문이다. 2013년 12월 방한 때는 미국 부통령으로는 유일하게 대학(연세대)을 찾아 정책연설을 했다. 그 직전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담 시간이 길어져 40여분 지각했음에도 1000여 학생들이 환호하자 “굉장히 많은 분들이 기다려줬는데 자랑거리가 될 것 같다”며 만족해했다.
  
바이든과 한국의 인연
 
바이든은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을 중시한다. 따라서 한·일 관계도 좋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적극 ‘개입’하는 입장이다. 박근혜 정부 시절 바이든이 두 번이나 방한한 것은 당시에도 악화일로였던 한·일 갈등을 중재하려는 목적이 컸다는 게 전직 외교관들의 전언이다. 바이든은 2013년 12월 방한 직전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야스쿠니 신사 참배 자제를 권유했는데도 아베가 참배를 강행하자 격노해 아베에게 전화로 강하게 항의했다. 이어 바이든은 미 외교·안보 수뇌부 회의에서 아베를 강력히 비판하고,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 편을 드는 쪽으로 선회했다고 한다.
 
전직 외교관은 “바이든의 이런 ‘선회’ 덕분에 오바마 행정부 8년 내내 미국은 과거사에서 우리 편을 들어줬다. 오바마 대통령이 위안부를 ‘끔찍하고 지독한 인권침해’라고 비판하고, 일본이 위안부 협상에 응하게 된것도 바이든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작용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이 된다면 과거사 문제는 우리에게 유리한 환경이 열릴 것”이라며 “그러나 한·일 갈등에 무관심했던 트럼프와 달리 바이든은 우리에게 일본과 화해하라고 압박할 게 분명하다. 바이든 시대에도 정부가 친중·반일 노선을 고수하면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김대중과 각별한 사이
 
2001년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한 바이든(왼쪽). [청와대 사진기자단]

2001년 상원 외교위원장 시절 김대중 대통령을 예방한 바이든(왼쪽). [청와대 사진기자단]

2001년 6월. 취임 5개월 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야당 상원의원인 바이든을 백악관에 초청했다. 외교 자문을 해달라는 것이었다. 오벌 오피스에서 바이든을 만난 부시는 “당신의 친구라는 한국 김대중 대통령이 내게 화가 나 있다는데 왜 그럴까?”라고 물었다.
 
바이든은 “한국을 민주화하고, 노벨평화상 받은 김대중 말인가. 친구는 아니지만 존경한다”고 답했다. 그러자 부시는 바이든의 무릎을 손으로 토닥거리며 “내가 석 달 전(2001년 3월) 김대중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한 말이라곤 ‘작은 공산주의자(김정일)를 못 믿겠다’고 한 것뿐인데 왜 화를 낼까”라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이번엔 바이든이 부시의 무릎에 손을 뻗어 토닥이며 말했다. “당신이 그 말을 한순간 김대중은 ‘부시에겐 내가 김정일과 같은 급으로 보이는 모양’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또 당신의 부하인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미국은 김대중의 햇볕정책을 지지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그 뒤에 당신을 만난 김대중에게 당신은 인정사정없이 ‘햇볕정책은 실패다. 미국은 빠지겠다’고 일갈했다. 때문에 김대중은 한국에 돌아가 욕을 먹고 곤경에 빠졌다. 그게 김대중이 당신에게 화난 이유다.”
 
바이든은 자신이 존경하는 정치 지도자를 얘기할 때 김대중을 첫손 꼽는다. 1983~84년 김대중이 미국에 망명했을 때 인연을 맺은 바이든은 2001년 상원 외교위원장 자격으로 방한해 대통령이 된 김대중과 오찬을 했다. 당시 보좌관으로 바이든을 수행한 프랭크 자누지 맨스필드 재단 대표에 따르면 바이든은 김대중에게 “매고 있는 넥타이가 멋지다. 내가 그런 멋진 넥타이를 맸으면 대통령이 됐을 것”이라 했다. 그러자 김대중은 즉시 넥타이를 풀어 바이든에 선물했다. 넥타이엔 오찬 때 수프가 흐른 얼룩이 있었지만, 바이든은 개의치 않고 매고 다니면서 “김대중 대통령의 넥타이”라고 자랑했다고 한다. 
 
바이든, 2000년대 초반엔 ‘햇볕파’였다?
바이든은 북한의 핵 개발이 초보 단계였던 2000년대 초반까지는 대북 포용 정책에 앞장선 전력이 있다. 2004년엔 미국 정부를 설득해 뉴욕시 반경 25마일 밖 여행이 금지돼있던 한성렬 당시 유엔 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의 워싱턴 방문을 성사시켰다. 2001년 8월엔 평양에 들어가 김정일을 만날 계획을 세웠다가 김정일의 러시아 방문으로 무산된 일도 있다. 그러나 그의 수석보좌관이었던 프랭크 자누지 현 맨스필드 재단 대표는 2004년 북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헥커 박사 등과 북한에 들어가 영변 핵시설을 시찰하고, 김계관 당시 외무성 부상 등과 면담한 것을 필두로 여러번 방북했다. 자누지는 지금도 북한 유엔대표부 관계자들과 교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오바마 행정부 당시 대미 관계를 담당한 전직 고위 외교관은 “바이든의 대북 포용 노선은 오바마 행정부 시절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도발을 계속하면서 대북 강경 노선으로 바뀌었다. 그의 외교 참모진 대부분은 오바마 2기 행정부에서 대북 강경 노선을 주도한 매파들”이라고 했다. 그는 “하지만 오바마 행정부에서 비확산 특보를 지낸 로버트 아인혼 등 비둘기파도 존재하는 만큼 바이든은 상황에 맞게 강온을 조절하며 현실적인 대북 정책을 펼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찬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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