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더오래]아이에게서 트롯보다 동요 듣고 싶다

기자
손민원 사진 손민원

[더,오래] 손민원의 성인권이야기(41)

 
소리에 대한 음악적 감각이나 지각이 매우 무디어 음을 바르게 인식하거나 발성하지 못하는 사람을 음치라고 한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 자동차 안에서 혼자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따라 부를 때는 스스로 어느 가수 못지않은 노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내 노래는 소음이다. 그래서인지 노래를 잘 부르는 사람에 대한 선망이 아주 크다. 만약 신이 “너에게 갖고 싶은 능력을 세 개 주겠다”고 허락한다면 그중 하나는 노래를 잘하는 능력을 달라고 할 것이다.
 
나는 그만큼 노래에 한이 서려 있다. 비록 노래는 잘 부르지 못하지만 잘 듣는 사람이라도 되고 싶었다. 그래서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도, 운전하면서도 음악은 늘 나의 좋은 친구이자 위로가 된다. 비록 나는 노래를 잘 부르지는 못하지만 즐겨 듣는 사람이 됐고, 많은 사람 또한 나와 같이 음악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열 살 전후의 나이에 ‘한’이 담긴 구슬픈 노랫말을 저리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이 그 감정을 이끄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사진 pxhere]

어떻게 열 살 전후의 나이에 ‘한’이 담긴 구슬픈 노랫말을 저리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아마 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이 그 감정을 이끄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사진 pxhere]

 
나는 내 아이를 키우면서 되도록 사교육의 경쟁 대열에서 좀 떨어지려고 노력했지만 한 가지 유혹을 끊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이가 한 가지 악기는 좀 잘 다룰 수 있게 하자는 마음이었다. ‘한 가지 정도의 악기를 다루는 것은 삶에서 아주 필요한 자질이야’라며 피아노를 가르치느라 많은 돈과 시간을 사용했다. 아이가 싫다 해도 억지로 달래가면서 피아노 앞에 앉혔다. 내가 아이들에게 사교육을 강제했던 근본적 이유는 ‘나는 노래를 못하고 악기조차도 다룰 수 없다는 열등감’에서 출발한 것이다.
 
TV를 보면 한 가수의 목소리 창법을 똑같이 따라 부르고, 진짜 가수를 찾아내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 있다. 정말 한국 사람은 노래를 잘하나 보다. 방송을 끝까지 보게 하는 매력이 있다. 그런데 최근 이와 더불어 TV를 틀면 여기저기 많은 방송사에서 트로트 경연대회를 하는 것을 보았다. 그곳 역시 아마추어나 프로를 넘나들며 정말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숨은 실력자가 등장한다. 그중 나를 더욱 놀라게 한 것은 어린 트로트 가수의 모습이다.
 
어떻게 열 살 전후의 나이에 ‘한’이 담긴 구슬픈 노랫말을 저리 잘 표현할 수 있고, 때로는 청중과 심사위원의 눈물을 흘리게 하며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뼈저린 사랑의 아픔을 체험하지도 않았을 텐데, 보릿고개의 아픔도 겪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마 미디어를 통한 간접경험이 그 감정을 이끄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어찌 됐든 어린 나이에 자신이 지닌 능력을 발견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가며 더불어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과 감동까지 준다는 것을 얼마나 멋진 일인가?
 
어린이 트로트 가수뿐 아니라 일찍 자신의 끼를 발견하고 이를 키워 가는 또 한 부류의 아동들이 있다. 일명 아동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최근엔 유튜버가 되는 것이 초등학생의 희망 직업이라고 한다. 유튜브의 세상 속에는 어린이의 활약이 대단하다. 장난감 리뷰를 하고, 뷰티 크리에이터를 하기도 하며, 먹방을 보여주기도 한다. 재능을 보여주는 것뿐 아니라 그에 따른 어마어마한 수익을 창출해 내는 것을 보면 그것을 시청하는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하게 하고, 그 영향력 또한 지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튜버뿐이 아니다. ‘아이돌’을 꿈꾸며 오랜 기간 연습생을 하는 청소년도 많다.
 
어린 트로트 신동, 아동 유튜버, 아이돌 모두 ‘아동’이라는 취약성이 분명히 존재한다. 더불어 이들이 많은 사람에게 어떤 걸 보여주기 위해 노동하는 동안은 한 사람의 직업인이다. 우리는 아동이 만들어낸 멋진 콘텐츠를 소비하는 것과 동시에 이 아동이 생산물을 만들어 가는 과정, 방법 모두가 진정 아동을 존중하고 있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또한 이것을 시청자로 보고 있는 수많은 아이에게 어떤 영향력으로 작용할지도 같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른의 과도한 욕심이 앞서서 재미를 위해 좀 더 자극적으로 생산되고 있지 않은지, 그리고 어른의 관점이 적용되는 생산 시스템에서 아동의 노동은 안전하게 이뤄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또 노동자이기 이전에 아동으로서 기본적으로 가진 학습권, 쉴 권리에 대한 보장은 잘 되고 있는지도 같이 고려되어야 한다. 이것이 이들의 팬 입장에서 갖춰야 할 올바른 태도다.
 
어린이 트로트 가수뿐 아니라 일찍 자신의 끼를 발견하고 이를 키워 가는 또 한 부류의 아동들이 있다. 일명 아동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최근엔 유튜버가 되는 것이 초등학생의 희망 직업이라고 한다. [사진 pikrepo]

어린이 트로트 가수뿐 아니라 일찍 자신의 끼를 발견하고 이를 키워 가는 또 한 부류의 아동들이 있다. 일명 아동 ‘유튜브 크리에이터’다. 최근엔 유튜버가 되는 것이 초등학생의 희망 직업이라고 한다. [사진 pikrepo]

 
출중한 아동이 지닌 소질의 씨앗을 잘 소중히 키워나가도록 돕는 것은 양육자로서의 당연한 책무다. 아동은 어른보다 자신의 의사를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들의 목소리를 어른이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자칫 부모의 대리만족으로 아동의 의사가 묵인되기도 하고, 어른의 과도한 이윤 창출 앞에서 아동의 기본적 권리가 침해되기도 하며, 무대 위의 화려함을 좇다가 뒤에 숨겨진 폭력이 드러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이 외려 아동이 지닌 반짝이는 보석을 깨뜨리는 결과로 이어질까 봐 염려된다.
 
나는 동요를 일부러 자주 듣는다. 과거에는 동요를 부르는 프로그램도 있었고, 학교에서도 학생들이 이런 노래를 자주 한 듯한데…. 이젠 의도적으로 듣지 않으면 어디서도 들을 수 없다. 
 
낮에 놀다 두고 온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푸른 달과 흰 구름 둥실 떠 가는
연못에서 사알살 떠다니겠지
 
연못에다 띄워 논 나뭇잎 배는
엄마 곁에 누워도 생각이 나요
살랑 살랑 바람에 소곤거리는
갈잎새를 혼자서 떠다니겠지.
 
가만히 눈을 감고 낭랑한 목소리의 노랫말을 들다 보면 마음에 온기가 느껴진다. 따뜻함을 잊고 지내는 매일의 삭막함을 되돌아보게 된다. 부모님도 생각나고 옛 친구도, 고향도 떠오르게 된다. 마음 한편이 안정되고 따뜻함이 올라온다.
 
“세월아 비켜라, 내 나이가 어때서,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인데….” 어린아이가 구성지게 부르는 ‘내 나이가 어때서’와는 너무 다른 차원의 감동과 여운이 있다. 아이의 트로트를 폄하하고자 하는 말이 아니다. 아이의 입에서 트로트가 자연스럽게 흥얼거리게 하는 대신 이런 동요를 흥얼거리게 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성·인권 강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