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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도 못가 기저귀 찼다…'젊은이의 양지' 속 청춘의 얼굴

신수원 감독의 새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열아홉 준(윤찬영, 사진)을 통해 요즘 청춘의 힘겨운 초상을 그렸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신수원 감독의 새 영화 '젊은이의 양지'는 콜센터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열아홉 준(윤찬영, 사진)을 통해 요즘 청춘의 힘겨운 초상을 그렸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콜센터에서 카드빚 독촉 전화를 하는 19살 현장실습생 준(윤찬영)은 실적 압박에 화장실 갈 짬이 없어 기저귀를 찬다. 어느 저녁 카드빚을 직접 받으러 간 그는 실종된 후 변사체로 발견되고, 여기에 책임 회피에 급급한 계약직 콜센터장 세연(김호정), 취업준비에 지쳐가던 세연의 딸 미래(정하담)가 휘말린다.

28일 개봉 영화 '젊은이의 양지' 신수원 감독
"구의역 김군, 세월호…젊은 세대 분노·슬픔 담아"

28일 개봉한 신수원(53) 감독의 신작 ‘젊은이의 양지’는 뉴스 사회면에서 접해온 청춘들의 그늘진 초상을 작정하고 새긴 영화다. 사회가 개개인에 가하는 폭력을 고발해온 신 감독이다. 있음 직한 현실을 극적인 사건으로 증폭시켜 뇌리에 각인시키는 게 그의 장기. 한국사회의 맹목적 입시 열기를 전교 1등 살인사건으로 비튼 ‘명왕성’(2013)으로 베를린국제영화제 수정곰 특별언급상을 받고, 무연고 노숙자로 전락한 임산부의 삶을 그린 ‘마돈나’(2015)론 칸국제영화제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됐다.
이번엔 2016년 구의역 김군 사망사건이 방아쇠가 됐다. 7개월 경력의 정비용역업체 직원 김 모(20) 씨가 지하철 구의역 스크린도어 수리를 혼자 맡았다가 숨진 사건이다.  
 

세월호 2년 뒤 구의역 김군…젊은 세대 분노·슬픔 봤죠 

23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신 감독은 “구의역 뉴스를 보는데 그 2년 전 세월호 아이들이 생각났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와 광화문 촛불시위 때 광장에서, 또 구의역 사건 후 현장의 포스트잇 추모에서 ‘헬조선’을 사는 10대, 20대 청년들의 분노와 슬픔을 봤다”면서다.

영화감독 데뷔 전 2005년까지 10년간 중학교 교사생활도 했던 그는 “우리나라는 IMF 전후 세대가 나뉜다. 586세대까지만 해도 명석하면 가난해도 신분 상승 기회가 있었다면 IMF 이후 자란 지금의 20‧30대들에겐 기회의 평등이 사라졌다”고 했다.  
 
 신수원 감독은 새 영화 '젊은이의 양지'가 "제2의 '명왕성'"이라 했다. "'명왕성'에서 인문계 고3을 그리며 마에스터교(실업고등학교) 얘기가 마음 한 쪽에 있었다"면서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신수원 감독은 새 영화 '젊은이의 양지'가 "제2의 '명왕성'"이라 했다. "'명왕성'에서 인문계 고3을 그리며 마에스터교(실업고등학교) 얘기가 마음 한 쪽에 있었다"면서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초등생부터 '수포''영포'…"이번 생은 망했다"는 세대

“제가 교사 할 때도 수업 들어가면 한 다섯 명만 눈뜨고 다 잤어요. 지금은 초등학생부터 ‘수포(수학 포기)’ ‘영포(영어 포기)’를 한대요. 그 아이들이 성인이 돼서 설사 대학을 나와도 모든 게 막혀있는 시스템 안에서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무너져요. ‘이번 생은 망했어’가 유행어처럼 퍼져 있잖아요.”

그는 “젊은 세대 얘기를 들어보면 분노가 많은데 그 대상이 명확지 않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막막해한다”고 했다. “영화를 준비하며 ‘취준생’을 많이 만났는데, 4년제 대학 멀쩡히 나와도 면접 연락조차 안 온다더라. 무한 스펙 경쟁 속에 자신이 초라하다, 쓰레기가 된 느낌을 받는다는 소릴 많이 들었다”고 했다.  
“시나리오가 너무 안 풀려서 노트북 들고 노량진 카페에 앉아있었는데 옆에 스터디 모임 하는 걸 듣게 됐어요. 공무원시험 준비하는 친구들이 못 알아듣겠는 전문 용어를 쓰며 면접 응대 방법을 말하고 있는데 어딘가 갇혀있는 듯해 안타까웠죠.”

 
‘젊은이의 양지’ 속 청춘의 얼굴① 정하담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서 정하담이 연기한 취업준비생 미래(오른쪽 두 번째).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서 정하담이 연기한 취업준비생 미래(오른쪽 두 번째). [사진 리틀빅픽처스]

신수원 감독이 정하담과 함께한 건 TV 단막극과 영화 두 버전으로 선보인 ‘물비늘’ 이후 두 번째다. 이번엔 콜센터장 세연의 딸 미래를 연기한 그를 두고 “하담씨 얼굴엔 빈 도화지 같은 느낌이 있다. 평범하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듯하면서도 색깔을 가미하면 여러 가지로 달라질 수 있는 배우의 얼굴”이라 했다. 정하담은 독립영화 ‘들꽃’ ‘스틸 플라워’ ‘재꽃’ 3부작을 비롯해, 독특한 분위기의 이미지로 ‘항거: 유관순 이야기’ ‘검은 사제들’ 등 상업영화로 활동 반경을 넓혀왔다. 이번 영화에선 감정을 꾹꾹 누르는 모습들이 인상적이다. 미래가 머리카락을 가위로 자르는 장면에선 정하담이 직접 길러온 긴 머리를 잘랐단다. 영화 말미 미래가 울분을 터뜨리는 터널신은 실제론 이 영화의 첫 촬영날 찍은 것. 신 감독은 “미래의 체념한 표정, 그걸 표현한 뒷모습까지 다 좋았다”며 미래의 베스트신으로 꼽았다.

닭장 같은 콜센터…화장실도 허락 받고 가

영화에서 콜센터 직원들은 화장실 다녀오는 횟수까지 보고한다. 팀장의 컴퓨터에선 누가 콜을 받고 있는지, 놓쳤는지, 또 통화 내용까지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에서 콜센터 직원들은 화장실 다녀오는 횟수까지 보고한다. 팀장의 컴퓨터에선 누가 콜을 받고 있는지, 놓쳤는지, 또 통화 내용까지 실시간으로 감시할 수 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콜센터란 배경은 2017년 열아홉 살 콜센터 현장실습생의 자살 사건이 토대가 됐다. 콜센터의 열악한 노동 환경은 실제 취재한 결과였다. “어떤 데는 정말 닭장이에요. 이번에 콜센터 (코로나19 집단 감염) 터졌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겉은 사무직인데 정말 밑바닥에서 자신의 감정을 파는 직업이죠. 화장실 갈 때까지 허락받아야 할 땐 모멸감을 느낀다더군요. 현대의 어떤 시스템에서 집약적으로 비인간적인 노동이 드러나는 곳이 콜센터 아닐까.”  
40대인 워킹맘 세연을 중심인물로 세운 건 “제 자신이 기성세대다 보니까 20대가 주인공인 건 왠지 거짓말 같았다”면서 “콜센터에서 일하는 친구한테 들어보면 세연 같은 계약직 중간 관리자도 파리목숨이더라”고 했다. 세연과 미래 모녀로 세대 간 공감의 단절도 그렸다. “청년세대의 분노가 기성세대의 보수적인 성향, 소위 ‘꼰대’를 향한 게 많더라”면서다. 취업 준비를 하며 마음이 닳아버린 미래는 자신을 몰아붙이기만 하는 세연에게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래 봤자 난 엄마처럼 될 거라는 거”라고 말한다.  
 

'방탈출 게임' 같은 현실, 가느다란 희망 담았죠

'젊은이의 양지'에서 기성세대이자 본사와 직원 사이에 낀 중간 관리자, 일하는 엄마인 세연. 배우 김호정이 연기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젊은이의 양지'에서 기성세대이자 본사와 직원 사이에 낀 중간 관리자, 일하는 엄마인 세연. 배우 김호정이 연기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최근 유행해온 ‘방탈출 게임’을 등장시켜 주인공들의 숨 막히는 현실을 은유한 대목이 흥미롭다. 폐건물에 직접 세트를 지었단다. “고시원에 사는 준은 오히려 상대적으로 더 넓은 그 (방탈출 카페) 공간에 갇혀서 휴식하길 원하고, 자기가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정확히 모르는 세연에겐 진실을 직면하는 공간으로 작용하죠.”

 
‘젊은이의 양지’란 제목은 음지에 놓인 젊은 세대의 현재에 대한 반어법으로, 신 감독이 직접 정했다. 그는 ‘젊음을 위한 빛’이란 뜻의 영어제목(Light for the Youth)이 더 마음에 든다며 가만히 영화 결말을 이야기했다. “결국에 세연이 하는 어떤 행동이 판타지, 거짓말처럼 느껴질 수 있죠. 그런 행위를 했다고 세상이 바뀌지도 않을 것이고요. 사실 찍으면서 나라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고 더 비관적인 결말도 생각했어요. 근데 싫더라고요. 지금 결말은 촬영 전날 떠올랐죠. 어쨌든 그 자체가 또 하나의 가느다란 희망이 되지 않을까.”

‘젊은이의 양지’ 속 청춘의 얼굴② 윤찬영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서 윤찬영은 사진 전공 학생이자 콜센터 현장실습생 준을 연기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영화 '젊은이의 양지'에서 윤찬영은 사진 전공 학생이자 콜센터 현장실습생 준을 연기했다. [사진 리틀빅픽처스]

‘생일’ ‘당신의 부탁’ 등 영화에서 말간 10대의 얼굴로 등장해온 윤찬영은 극중 준처럼 실제 19살. 신수원 감독은 그의 있는 그대로를 영화에 최대한 담았다고 설명했다. “진짜 초년생 같은 느낌이 있고 실제로도 말을 더디게 해요. 첫 미팅부터 신중한 모습이 준이랑 닮았죠.” 준의 볼에 난 여드름도 실제 그대로다. 배우의 동의를 얻어 되도록 메이크업을 하지 않았단다. 신 감독이 꼽은 준의 베스트신은 방탈출 카페에서 석고상을 부수는 장면이다. “찬영씨가 울분을 토하는 장면인데 못 봤던 얼굴이 나왔어요. 진짜 내면의 어떤 것이 나온 듯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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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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