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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曰] 수고했다 이동국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1999년은 내가 중앙일보에서 스포츠부로 발령받아 축구를 취재하기 시작한 해다. 그 해는 어디를 가도 이동국이었다. 그는 20세 이하 청소년대표로 나이지리아에서 열린 세계대회(U-20 월드컵)에 출전했다. 시드니올림픽 대표팀과 국가대표팀 감독도 이동국만 찾았다. 소속팀 포항 스틸러스의 K리그 경기에도 꾸준히 출전했다. 혹사로 인해 퉁퉁 부은 무릎에 압박붕대를 감고 뛰었다.
 

K리그 최다 228골 ‘41세 전설’ 은퇴
치명적 부상·불운 이겨낸 힘은 ‘가족’

2000년 말 부임한 히딩크 감독은 이동국을 “어슬렁거리는 게으른 천재”라고 했다. 그리고 2002 한·일 월드컵 대표팀에 뽑지 않았다. 이동국은 당시를 “잠깐이나마 축구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시간”이라고 했다. 월드컵 4강 신화로 뜨거웠던 여름이 지나고 10월 부산 아시안게임이 열렸다. 우승하면 군 면제였다. 이란과의 준결승전 승부차기에서 마지막 키커 이영표의 슛이 골대를 강타했다. ‘이동국 군대 가라 슛’이었다. 이동국은 군대에 갔고 ‘진짜 사나이’로 바뀌어 돌아왔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이동국은 절정이었다. 그런데 4월 5일 경기 도중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졌다. 월드컵 대표팀이 독일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동안 이동국은 독일에서 수술과 재활을 했다. 대표팀이 훈련 중이던 레버쿠젠 바이아레나 구장에 이동국이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그의 일그러진 미소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우루과이와의 16강전에서 이동국은 박지성이 만들어 준 절호의 찬스에서 어정쩡한 슛으로 기회를 날려버리고 만다. 안티 팬들은 이 장면에 ‘이동국 물회오리 슛’이라는 이름을 붙여 비아냥댔다. A매치 105경기에 출전해 33골을 넣은 선수에게 ‘국내용’이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 사이 이동국은 결혼했고 재시·재아, 설아·수아 겹쌍둥이를 낳는다. 막내 ‘대박이’까지 합쳐 오남매의 아빠가 됐다. 이동국은 분윳값을 벌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이른바 ‘분유 전사’였다. 2009년 전북 현대로 팀을 옮겼다. 최강희 감독은 “동국이의 눈빛에서 절박함을 봤다”고 했다. 믿어 주고 기다려 준 최 감독 밑에서 2009년 이동국은 22골로 득점왕에 오르며 팀과 자신의 프로 첫 우승 트로피를 안는다. 프로 통산 228골을 넣었는데 그 중 전북에서만 162골을 터뜨렸다. 그가 갖고 있는 K리그 최다 골 기록은 오래오래 깨지지 않을 것이다.
 
마흔한 살 이동국이 지난 28일 은퇴 기자회견을 했다. “네가 은퇴한다니 나도 이제 은퇴해야 되겠다”고 하더라는 부친의 말을 소개하며 그는 눈물을 흘렸다. 부친 이길남 씨는 넉넉지 않은 형편에도 몸에 좋다는 건 어떻게든 구해다 축구 하는 아들을 먹였다. 전국의 경기장을 쫓아다니느라 택시기사급 주행거리를 운전했다. 30년간 아들의 신문 기사를 꼼꼼히 스크랩했다.
 
며칠 전 이동국 가족이 찍은 유튜브 ‘대박패밀리’ 영상이 올라왔다. 모델 지망생 재시와 테니스 선수 재아가 리포터가 돼 이동국 선수 은퇴 인터뷰를 하는 설정이었다. 재아는 “운동장에서 뛰는 아빠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게 너무 슬퍼요”라며 울었고, 재시는 “저희를 위해 온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뛰어주신 아빠, 사랑해요”라며 울었다. 자신에게 영상 편지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은 아빠는 “야, 이동국. 30년 동안…” 하다가 감정이 복받쳐 올라 뛰쳐나간다.
 
이동국의 축구 인생은, 영욕이 교차하는 21세기 한국 축구의 압축 파일이다. 그는 많은 시련 앞에서 굴하지 않았고, 스스로 역사가 되었다. 그를 지탱해 준 가장 큰 힘은 ‘가족’이었다. 미소년 이동국은 그렇게 아버지가 되었다. 그의 새로운 출발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수고했다 이동국.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콘텐트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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