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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짬뽕토크] "사실 형인 걸 알았어요. 성배 형 미안합니다"

김태균은

김태균은 "20년 프로야구 선수 생활이 행복했다"고 말했다. 제2의 야구인생도 응원해 달라고 팬들에게 당부했다. 대전=김식 기자

 
김태균(38·한화)과 짬뽕 두 그릇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일주일 전 20년 프로 생활을 마무리한다고 은퇴 기자회견을 한 그는 ‘선수 신분의 자연인’이다.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다. 김태균은 “마지막 홈경기(10월 30일 KT전)에 가서 선수들과 구단 관계자들께 인사드릴 예정”이라고 했다.

은퇴 후 해명과 사과를 전하다
개그 본능 탓에 말실수도 많아
김성배 언쟁, 인종차별 등 잘못
"은퇴해도 운동 중. 슬림해질 것"


 
선수 생활의 결승선이자 제2의 야구인생의 출발점에 김태균은 서 있다. 희로애락의 감정이 짬뽕처럼 섞여 있다. 한 달 전에 은퇴를 결심했지만, 막상 유니폼을 벗으니 마음이 복잡한 모양이다. 기자회견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들었다.
 
-은퇴 기자회견에서 왜 그렇게 울었나.
“은퇴가 꼭 슬픈 건 아니지 않나. 수고했다는 말도 듣고, 나도 감사 인사를 전하려고 했다. 새로운 출발이기도 하니까. 그런데 기자회견에 가기 전부터 느낌이 이상했다.”
 
-어떤 느낌이 들었나.
“기자회견 하루 전(21일) 서산 재활군 훈련장을 떠나면서 후배들과 인사했다. 한 달 넘게 숙식을 함께한 후배들과 일일이 포옹했다. 마음의 준비는 다 했으니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는데 울컥하더라. ‘크흑’ 하고 흐느꼈는데, 때마침 하늘에 헬기가 지나갔다. 그래서 (눈물을) 들키지 않았다.”
 
-다음날 1군 선수들과 인사했을 때는.
“평소 나답게 웃으면서 대했다. 그런데 고참 선수들이 ‘형, 눈물 좀 흘려야 하는 거 아냐?’라고 하더라. 그 말을 들으니 또 울컥했다. 이때 임헌린 홍보팀장님이 손수건을 선물해줬다. 은퇴를 발표하는 날이니 당연히 울 거라 생각한 모양이다.”
 
 
지난 22일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프로야구 한화 김태균이 울먹이며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지난 22일 대전시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프로야구 한화 김태균이 울먹이며 은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결국 펑펑 울지 않았나.
“기자회견장에 들어설 때부터 기분이 이상했다. 뭔가 무거운 감정이 들었다. 자리에 앉으니 아는 기자들이 몇몇 보였다. 그분들 표정도 좋지 않더라.”
 
-기자를 보고 울었다는 말인가.
“그분들도 야구장에서 오랫동안 본 동료들과 같으니까. 한참 울고서 앞을 보니 취재진과 관계자 일부도 눈물을 흘리는 것 같더라. 그래서 또…. 계획한 것과 달리 너무 울었다. ‘20년 프로 생활이 진짜 끝났네’, ‘이런 자리도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다. 아직도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김태균은 한국 스포츠 스타 중 가장 많은 별명을 가졌다. 2000년대 초반부터 네티즌 별명 짓기 대상이 된 1세대 선수다. 많은 팬으로부터 관심을 받았고, 오해도 받았다. 팬들에게 잘못 알려진 사실도 꽤 있다고 한다. 기회가 되면 설명하려 했지만, 은퇴 기자회견에서도 하지 못했다. 펑펑 우느라, 또 감사한 분들에게 인사를 전하느라 그랬다.  
 
-그래도 그 마음을 잘 표현해 달라.
“못한다. 까불다 보면 말실수를 한다. 그럼 또 욕을 먹는다. 그래도 입이 근질근질할 때가 많지만, 가급적 참는다. 이제 은퇴했으니 응원만 받고 싶다. 하하.”
 
김태균은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번 타자로 활약할 때까지 KBO리그 최고 인기 선수였다. 2010~11년 일본 지바 롯데에서 뛰다 한화로 복귀한 뒤로는 안티팬이 생겼다. 부진한 팀 성적과 그의 높은 연봉이 맞물린 결과였다. 또 몇 가지 ‘사건’ 때문이기도 했다.
 
-이 기회에 그 사건들을 다시 정리해보자.
“팬들이 변명처럼 들으실 텐데?”
 
-그런 팬들도 있겠지만, 김태균을 좋아하는 팬들은 진실을 알고 싶을 것이다.
“그건 그럴 것 같다. 다시, 제대로 사과할 부분도 있으니까.”
 
 
지바 롯데 시절 김태균의 모습

지바 롯데 시절 김태균의 모습

 
-2011년 시즌 중 지바 롯데에서 퇴단할 때 비난을 많이 받았다. 진짜 이유는 뭔가.
“여러 이유가 있었다. 계약에 관한 문제여서 다 말할 순 없다. 2010년 지바 롯데가 일본시리즈 우승(김태균은 타율 0.268, 21홈런으로 활약했다)한 뒤 분위기가 바뀌었다. 리빌딩을 시작한 것이다. 2군에서 젊은 선수들이 올라와 외국인 선수, 간판선수와 함께 훈련했다.
 
-강한 세대교체를 했단 말인가.
“나는 그렇게 느꼈다. 그해 6월 프랜차이즈 스타 오무라 사부로도 요미우리로 트레이드 됐다. 오무라는 그룹 고위층의 지시로 그해 말 지바 롯데로 복귀(FA 계약)했다. 내가 지바 롯데에서 퇴단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도 롯데 그룹에서 찾아왔다.”
 
-무슨 얘기를 했나.
“지바 롯데로 돌아갈 수 없느냐는 말씀을 하셨다. 정말 고맙고 죄송했다. 하지만 이미 롯데 구단과 정리한 상황이었다. ‘후회하지 않을 결정을 해라’는 전언에 ‘후회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답했다.”
 
-지바 롯데와는 어떻게 정리됐나.
“부상과 스트레스 탓에 제 역할을 못 해 죄송하다고 했다. 구단과는 잘 정리됐다. 대신 ‘5년 내로는 일본의 다른 구단과 계약하지 말아 달라’는 조건만 있었다.”
 
-스트레스는 그해 3월 동일본대지진 때문이었나.
“그렇다. 집에 오니 가구가 다 쓰러져 있었고, 벽이 다 갈라져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운행되지 않아 18층까지 걸어서 오르내렸다. 도로가 망가져 차가 다니지 못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었다. 고속도로가 폐쇄돼 차로 20분이면 가는 야구장을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주유하는 데 3시간을 기다렸다. 일상이 무너졌다.”
 
-지진 후에는 방사능 유출 사고가 났다.
“후쿠시마는 지바와 멀지 않은 곳이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는 숨 쉬는 것도 두려웠다. 일본에서 뛰었던 외국인 선수들이 하나둘 돌아가더라. 팀 분위기도 그렇고, 나도 한국으로 복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구단도 흔쾌히 이해해줬다.”
 
김태균이 시즌 중 퇴단하자 일부 팬들은 그를 ‘김도망’이라 불렀다. 그는 다른 사례를 참고하고, 절차에 따라 팀을 떠났으나 비난의 대상이 됐다. 대지진의 공포와 방사능 유출의 위험을 그땐 많은 이들이 인지하지 못했다.
 
-‘김도망’이란 별명이 싫겠다.
“보는 시각에 따라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내 입장에서 생각해주는 건 아니니까. 지금도 다 말할 수 없는 사정이 있다는 걸 팬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일본 선수들과 어울리지 못했다는 말도 계속 듣고 있다.
“음…. 그건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또 내가 말실수를 한 부분도 있다. 해명하면 변명처럼 들릴까 봐 말하기 두려웠다. 지금도 무슨 말을 해도 와전될 거 같은데…. 내가 말을 정돈해서 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해를 받는다.”
 
-‘왕따 얘기’부터 해보자.
“복귀 후 ‘(지바 롯데에서) 누구도 내게 잘했다거나 고생했다며 어깨를 두드려주지 않았다. 난 한낱 용병이었다’는 기사가 나간 적이 있다. 욕을 엄청 먹었다. 한두 명이 그러긴 했다. 모두가 날 좋아할 수 없다는 걸 안다. 외국인으로서 가끔 외로움을 느낀다는 말이 와전됐다. 난 지바 롯데 동료들과 즐겁게 잘 지냈다. 기사가 내 의도와 달리 나와서 놀랐다. 내가 서툴게 표현한 것도 있을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니시오카 쓰요시 사건도 있다.
“아, 그건 내가 잘못한 거다.”
 
2010년 지바 롯데 주장인 니시오카는 김태균의 ‘절친’이었다. 그는 어느 날 김태균에게 “내 할아버지는 한국인”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듬해 그걸 한 기자와 대화하면서 말한 게 기사화됐다. 이로 인해 니시오카가 한국계 선수라는 게 일본에도 알려졌다.
 
-어떤 잘못을 했다는 말인가.
“그게 비밀스러운 건지 몰랐다. 니혼햄 모리모토 히초리 같은 선수는 한국어 문신을 했고, 내게 한국말로 인사했으니까. 그래서 한국 기자와 식사하면서 편하게 에피소드를 말했다. 생각해 보면 히초리 말고 다른 한국계 일본 선수들은 그렇지 않았다. 물정을 몰랐던 내 잘못이다.”
 
-쓰요시가 불편해했나.
“그게 일본에서 꽤 이슈가 됐다. 그렇다고 날 원망하지는 않았다. 내 결혼식에도 왔을 만큼 친했고, 기사가 나온 뒤에도 잘 지냈다. 니시오카가 개인 후원회에도 날 초대해줬다. 어쨌든 내가 괜한 말을 했다.”
 
김태균은 이 얘기를 하면서 “괜히 옛날 얘기를 들추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나뿐 아니라 상대에게도 실례되는 일”이라고 염려했다. 기자는 “잘못 알려진 걸 바로잡는 동시에 이 기회에 당사자에게 다시 사과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왜 그런 일들이 있을까.
“내가 말하다 보면 이것저것 가리지 못한다. 친한 사람과 대화하면 더 그렇다. 프로선수로서 그러면 안 되는데. 그래서 인터뷰가 늘 꺼려진다. 지바 롯데 얘기는 외국 생활에 관한 것들이라 오해가 많았다. 그러나 그 팀에서 뛰면서 즐거웠고, 새로운 야구를 배울 기회를 얻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다.”
 
-한국 와서는 인종차별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다.
“그것도 내 잘못이다. 사려 깊지 못한 말을 했다.
 
김태균은 2013년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투수로 쉐인 유먼(당시 롯데)을 꼽았다. 그 이유에 대해 “얼굴이 까매서”라고 말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있는데, 구단 직원이 기자를 대신해 물었다. 유먼에게 약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아 피부색 얘기를 한 것이다. 농담이라고 해도 부적절했다. 그런데 그 말을 기자가 라디오 방송에서 그대로 했다. 내가 잘못한 것이다.”
 
 
 
-후폭풍이 상당했다.
“기사가 나가고 나서 나도 놀랐다. 내가 영어를 못하니까 롯데 운영부장님께 전화해서 사과의 말을 전했다. ‘괜찮다. 유먼은 그런 거 신경 안 쓴다’고 하더라. 또 (롯데 포수였던) 강민호를 통해서도 사과했다. 괜찮다고 하더라. 아내(김석류씨)는 그것도 부족하다고 느껴 영문 이메일을 길게 써서 유먼에게 보냈다. 역시 괜찮다는 답장을 받았다.”
 
김태균이 세 번이나 사과했으나, 유먼은 한 인터뷰에서 “김태균은 내게 정식으로 사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몇 달 후에는 ‘말조심… 누군가 듣고 있다’고 쓰인 티셔츠를 입어 무언의 항의를 했다. 유먼은 2014년 한화와 계약해 김태균과 동료가 됐다.
 
-유먼과 어떻게 지냈나.
“그 사건이 있고 난 뒤 유먼과 다시 만난 첫 타석에서 사구를 맞았다. 내가 잘못했으니…. 그러나 내가 부적절한 발언을 하고도 사과하지 않은 건 오해다. 한화에서 같이 뛰며 유먼과 잘 지냈다. 그 사건 이후 말조심을 하게 됐다.”
 
-김성배 사건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음…. 그건 좀 억울하다. 난 김성배 형이 나보다 선배인지 알고 있었다.”
 
김태균은 2012년 6월 6일 롯데전에서 김성배가 던진 공에 허리를 맞았다. 그는 김성배에게 “사과해”라고 소리쳤고, 김성배는 “내가 왜 사과해야 하는데?”라고 맞받아서 말싸움으로 번졌다. 김태균이 김성배보다 1년 후배인 줄 몰라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지금까지 알려졌다.
 
-처음 듣는 말이다. 김성배가 선배인 걸 알았다고?
“물론이다. 성배 형이 두산에서 던질 때부터 여러 번 상대했다. 전날 공을 맞은 부위에 또 맞으니까 너무너무 아팠다. 그런데 성배 형이 오히려 화를 내더라. 그래서 내가 사과하라고 소리쳤다. 선후배를 떠나 사구를 맞히면 사과하는 게 관례였으니까.”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다르다.
“우리가 싸울 것 같으니 포수 강민호가 달려와서 ‘형보다 형이야’라고 말했다. 그 장면 때문에 내가 선배인 줄 모르고 화냈다가 참은 줄 아는 것 같다.”
 
-다음 날 김성배를 찾아가 사과하지 않았나.
“맞다. 어쨌건 내가 반말을 했으니까 사과한 것이다. 공을 맞을 땐 너무 아파서 그랬다. 나중에는 감정이 다 풀렸다. 그런데 다음 날 기사에는 내가 ‘선배인 줄 몰랐어요’라고 나갔다. 허허.”
 
 
사구 사건 다음날 진행된 훈련 중 김성배에게 사과하는 김태균의 모습. 오른쪽 사진은 김성배에게 사과하러온 김태균에게 장난스레 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시늉을 하고 있는 홍성흔.

사구 사건 다음날 진행된 훈련 중 김성배에게 사과하는 김태균의 모습. 오른쪽 사진은 김성배에게 사과하러온 김태균에게 장난스레 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시늉을 하고 있는 홍성흔.

 
-차라리 선배인 걸 몰랐다고 말하는 게 나은 거 아닌가.
“그럴지도 모른다. 선수생활을 정리하는 마당에 오해를 남겨두긴 싫다. 내가 잘못한 거니까. 성배 형, 죄송합니다.”
 
-오늘 참 사과를 많이 한다.
“팬들께도 여러모로 죄송하다. 응원해주신 분들이 많은데, 그 마음을 다 충족시켜드리지 못하다. 이제 사회인이 됐으니 말과 행동을 더 조심하겠다.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지만, 잘 봐 달라. 헤헤.”
 
-이제 미래 얘기를 좀 해보자. 앞으로의 계획은.
“은퇴를 결심하기까지는 혼자 고민이 많았다. 막상 은퇴를 발표하니 갈 곳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더라.”
 
-내년은 단장 보좌역을 맡는데.
“그러면서 야구 공부를 더 할 생각이다. 실전에서 벗어나 이론과 데이터를 보고 싶다.”
 
-방송 섭외 요청이 많은 것 같던데.
“이번 주 야구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괜히 신소리 하면 안 된다. 조심할 거다. 잘 될지 모르지만. 크크.”
 
 
김태균은 이제 '강한 몸'이 아니라 '멋진 몸'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얼굴에 미스트를 뿌리는 등 피부 관리도 시작했다. 대전=김식 기자

김태균은 이제 '강한 몸'이 아니라 '멋진 몸'을 만들어보겠다고 했다. 얼굴에 미스트를 뿌리는 등 피부 관리도 시작했다. 대전=김식 기자

 
-그 외에 어떤 과제가 있나.
“은퇴 후에도 운동은 계속한다. 이제 야구에 필요한 웨이트트레이닝이 아니라 멋진 몸을 위한 훈련을 해볼까 한다.  
 
-지금 멋진 몸이라고 했나.
“선수가 아니라고 늘어져 있을 순 없다. 선수 때는 다치지 않는 운동이 가장 중요했지만, 지금은 역기 무게를 늘리고 있다. 살이 안 빠질 수가 없다.”
 
-정말인가. 자신 있나.
“김영한 관장님(K&K PT스튜디오) 도움으로 체지방을 걷어내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이 분을 믿고 해볼 것이다. 내 몸이 변하는 과정을 V로그로 담을 계획도 있다.”
 
사회인이 된 김태균은 말도, 몸도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대전=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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