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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화의 생활건축] 책의 도시 만든 위대한 계약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

우리나라에서 민간이 주도해 만든 유일무이한 도시가 있다. 건물 한 채를 짓는 일도 어려운데 도시를 만들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정부 주도로 건설되는 흔히 보는 신도시가 아니다. 몇십만호에서 몇백만호 건설 식의 목표량을 앞세우지 않았다. ‘인간성의 회복을 위해 도시를 만든다’는 신념을 앞세웠다. 건설 주체도 방법론도 모두 달랐던 책의 도시, 파주출판도시의 이야기다.
 
지난 27일 폐막한 서울국제건축영화제에서 파주출판도시를 조망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했다. ‘위대한 계약: 파주, 책, 도시’다. 건축전문 영화영상제작사 ‘기린그림’의 김종신·정다운 감독의 작품이다. 건축물을 주로 찍던 이들이 처음으로 찍은 도시 다큐멘터리다. 김 감독은 “기획 단계부터 치면 30년 역사를 가진 이 도시를 100분의 다큐로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지 무척 고민했다”고 전했다.
 
영화 속 파주출판도시의 모습. [사진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영화 속 파주출판도시의 모습. [사진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책장이 벽면 가득히 있는 복합문화공간 ‘지혜의 숲’을 비롯해 출판사들이 한데 모인 동네 정도로 인식되는 도시의 역사는 대단히 독특하다. 영화 제목대로 나보다 공동체를 앞세운 ‘위대한 계약’을 서로 체결하며 탄생시킨 도시가 처음이라서다. 군부독재 시절 출판인들은 출판의 자유를 꿈꾸며 책 잘 만들 수 있는 도시를 꿈꿨고 1989년부터 본격 구상하기 시작했다. 출판·편집·인쇄·유통이 한데 모여 시너지를 낼 수 있길 바랐다.
 
땅부터 찾았다. 출판인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찾은 싼 땅이 파주 교하면 문발리 폐천 부지 약 158만4000㎡(48만평)이었다. 3기 신도시 중 미니 신도시급으로 불리는 과천지구 정도의 규모다. 폐천에서 알 수 있듯, 땅은 습지였다. 땅보다 길(자유로)이 높이 있었다. 한강이 범람하는 통에 제방을 쌓았고 그 위로 낸 길이 ‘자유로’다. 어렵사리 땅을 확보한 출판인은 도시를 함께 구상할 건축가를 찾았다. 건축 코디네이터를 맡은 승효상 건축가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샛강과 갈대숲을 그대로 유지하고, 땅을 메우지 말고 그대로 두며, 도시의 마스터플랜을 새로 짜자.
 
땅이 원래 가졌던 풍경을 유지하는, 생태 도시의 출발점이었다. 싹 밀고 메워 짓는 신도시의 구축법과 다른 지점이다. 여기에 더해 자체적인 건축지침도 만들었다. 쓸 수 있는 건축재료부터 구역별 형태까지 엄격히 제한하는 내용이었다. 책의 도시라는 한권의 크고 아름다운 책을 만들기 위해 들쭉날쭉한 개인의 욕망을 눌렀다. 이를 계약서로 만들어 수백명의 출판인과 건축가들이 한자리에서 사인한 것이 ‘위대한 계약’이다.
 
출판도시는 1·2단계를 거쳐 3단계 예술인의 동네도 꿈꾸고 있다. 각자도생의 시대에서 잊고 사는 단어, 연대와 공동성을 담은 파주출판도시의 미래가 궁금해진다. 영화는 내년께 극장에서 정식 개봉한다.
 
한은화 경제정책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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