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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다움’은 어떤 모습일까

기자
김용우 사진 김용우

[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29)

성폭력 범죄로 고소한 뒤 상대방을 법정에 세우기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수사를 개시하기 위해 고소인은 당시의 수치스러운 상황을 반복해 적나라하게 진술해야 할 뿐 아니라, 상대방이 무고나 명예훼손으로 문제 삼을 위험도 감수해야 하지요.
 
혹여나 유명인이 관련된 경우 언론 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원치 않는 정보가 유출돼 곤혹스러운 상황에 부닥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성폭력 피해를 신고함으로써 신분이나 비밀이 노출돼 경찰·검찰·법원 및 주변 사람으로부터 받게 되는 수치심과 상처를 견디기보다는 차라리 고소를 포기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2018년 검찰 통계에 따르면 강간과 추행죄로 접수된 사건 가운데 절반 정도는 재판에 넘기지 않는 것(불기소)으로 처리되었는데, 그만큼 수사기관을 설득하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입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목격자나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범죄의 유·무죄는 결국 고소인의 진술에 의존해 판단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중앙포토]

은밀하게 이뤄지는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목격자나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범죄의 유·무죄는 결국 고소인의 진술에 의존해 판단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중앙포토]

 
하지만 일단 기소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법원 통계에 의하면 2018년 강간 및 추행으로 법원에 정식재판으로 접수된 1심 사건 중 약 4%만이 무죄로 판결 났습니다. 성폭력 범죄로 재판정에 서게 된 피고인 대부분은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실제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는 상당히 낮고, 상소한다 해도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일단 성폭력 범죄로 법정에 서게 되면 대부분은 유죄로 결론이 나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은밀하게 이뤄지는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목격자나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범죄의 유·무죄는 결국 고소인의 진술에 의존해 판단되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형사재판에서 피고인이 무죄를 주장하면 고소인은 피고인이 출석한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선서하고 검사와 변호인의 날선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기소돼서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한 고소인이 또다시 피고인을 마주 보고 당시 상황을 상세히 증언해야 합니다. 고소인 입장에서 아주 당혹스러운 일입니다만, 반대로 억울함을 호소하는 피고인의 입장에서는 꼭 필요한 절차이기도 합니다. 물론 형사소송법에 따라 고소인을 위해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부모 등)과 동석하거나 중계 장치 등을 이용해 피고인과 대면하지 않고 진술하는 방법이 있기는 합니다. 어쨌든 고소인은 법정에 출석해야 하고 출석하지 않으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법원은 그렇게 확보한 증인의 진술 신빙성, 즉 ‘증인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성폭력 범죄 판결문은 신빙성 여부에 상당한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는데요. 법원은 증인의 진술이 경찰, 검찰에서 한 진술과 일관되는지, 객관적 사실과 배치되는 점이 없는지 등을 면밀히 살펴 신빙성을 따집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전 도지사 사건과 관련, 제1심 법원이 전 도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하면서 ‘피해자다움’이라는 논리를 제시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피해자다움’이란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고소인이 피해를 당하고 난 후에 한 행동이 과연 성범죄 피해자의 일반적인 행동에 부합하는지를 따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항소심 법원은 ‘수행비서로서 업무를 성실히 수행한 피해자의 모습이 실제 간음 당한 피해자의 모습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면서 사건을 뒤집고 전 도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대법원도 ‘성폭행 피해자의 대처 양상은 피해자의 성정이나 가해자와의 관계 및 구체적인 상황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성인지 감수성’를 강조한 후 ‘피해자다움’ 논리를 배척하며 유죄를 확정 지었습니다(2019. 9. 9. 대법원 2019도2562 판결)
 
법원은 확보한 증인의 진술 신빙성, 즉 ‘증인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성폭력 범죄 판결문은 신빙성 여부에 상당한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합뉴스]

법원은 확보한 증인의 진술 신빙성, 즉 ‘증인의 진술을 믿을 수 있는지’를 판단합니다. 성폭력 범죄 판결문은 신빙성 여부에 상당한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연합뉴스]

 
최근 아동을 피해자로 한 성폭력 범죄 사건에서도 대법원은 피고인이 주장한 ‘피해자다움’의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요. 피해자의 진술을 토대로 한 범죄 사실은, 피고인이 14세 아동인 피해자를 피고인의 집에서 강간하고, 그다음 날 피고인의 집으로 사과를 받으러 온 피해자를 또다시 강간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피고인은 피해자와 합의해 1회 성관계를 가졌을 뿐 그다음 날에는 피해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전날 심각한 폭행 후 강간을 당했다는 피해자가 사과를 받기 위해 혼자 피고인을 찾아가 피고인만 있는 집 안으로 들어가 다시 강간을 당하였다’는 피해자의 진술은 ‘피해자다움’이 결여된 것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했습니다. 그러나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까지 모두 유죄로 봤습니다(대법원 2020. 9. 7. 선고 2020도8016). 판단 이유는 아래와 같습니다.
 
‘범죄를 경험한 후 피해자가 보이는 반응과 피해자가 선택하는 대응 방법은 천차만별인데, 강간을 당한 피해자가 반드시 가해자나 가해현장을 무서워하며 피해야 한다고는 볼 수 없고, 경우에 따라서는 가해자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거나 피하지 않고 나아가 가해자를 먼저 찾아가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특히 피해자로서는 사귀는 사이로 알았던 피고인이 자신을 상대로 느닷없이 강간한 것에 대해서 의구심을 가지고 그 해명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졌던 것으로 보이고, 피해자의 그러한 심리가 성폭력을 당한 여성으로서는 전혀 보일 수 없을 정도로 이례적이고 납득 불가능한 것이라고 한 것은 아니다.’
 
위 대법원의 확고한 취지에 비추어 보면, 성폭력 범죄로 재판을 받게 될 피고인은 적어도 ‘피해자다움’을 근거로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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