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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삶의 무게가 가벼우면 떠날 때도 가벼울까

기자
송미옥 사진 송미옥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163)

요양보호사 일을 할 때 좋은 분들과 친목이 이루어져 꾸준히 만나는 모임이 있다. 그 모임엔 70대에도 요양사 일을 하는 언니가 있는데 모임 시간이 되기 직전 전화가 와서 못 나온다고 한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 돌보는 한 어른이 노환으로 임종이 가까워져 오는데 이틀 전부터 거기에 있단다.

 
백세를 바라보는 노환의 그분은 정신이 맑고 자식에게도 엄한 어르신이다. 당신이 떠날 때가 다가오자 곡기를 끊고는 집에서 죽길 강력히 원하셨다. 혼자서 남편을 떠나보내야 할 할머니 걱정에 근무시간이 아닌데도 함께 배웅해 주기로 한 것이다. 자식들이 알면 주인공(?)의 부탁이고 뭐고 무조건 병원으로 옮기니, 죽고 나면 연락하라는 엄명이 있었단다. 언니는 병원이 아닌 집에서 먼 길 떠나는 고령의 어르신을 도와 임종을 지키는 일을 벌써 몇 년째 한다. 내가 존경하는 요양보호사다. 나의 친정아버지를 보는 듯하다.
 
섭섭하고 서럽게 가셨을 어르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 해오지만, 먼 길 두려운 길을 달래 듯 보낸 할머니의 입담은 생각날 때마다 ‘풋’ 하고 웃음이 나고 짠하다. [사진 pxhere]

섭섭하고 서럽게 가셨을 어르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 해오지만, 먼 길 두려운 길을 달래 듯 보낸 할머니의 입담은 생각날 때마다 ‘풋’ 하고 웃음이 나고 짠하다. [사진 pxhere]

 
시골 살 적에 지금은 돌아가신 구순 어르신의 수양딸이 된 적 있던 언니는 40대 젊은 나이에 죽어가는 남편을 안고 죽음을 지켜본 이야기를 만날 때마다 하셨다. 요즘 같이 먹거리가 흔한 세상에는 이해 안 될 이야기지만, 젊고도 사랑 절절한 그 시절에 굶어 죽은 남편이 새로운 음식을 먹을 때마다 불쑥불쑥 생각나서 눈물을 흘리셨다. 청춘에 사랑하는 사람을, 그것도 배곯아 잃었으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순간일 것이다. 애환과 그리움이 배어 나오는 이야기라 수도 없이 한 이야기를 매번 처음 듣는 듯 듣곤 했다.
 
마지막 가는 길에 쌀은 고사하고 밀 쭉정이라도 얻어 밀국이라도 끓여 한 수저 먹게 해 주고 싶었지만 너나 나나 모두 배고픈 보릿고개라 도와주는 이 없었고, 마지막 날 자존감을 버리고 찾아간 부잣집에선 인격까지 싸잡아 문전박대하고 마음에 큰 상처까지 만들어 주었단다.
 
세월이 흘러 당신 살림은 풍요해지고 그 부잣집은 풍비박산해 마을을 떠났다는 소식에 꽉 막혀 있던 한이 쑥 내려가더라는, 뭐라 할 수 없는 한의 이야기이다. “무섭지 않았나요?” 하니 내 목숨을 줄 수 있으면 살리고 싶은 사랑하는 남편인데 뭐가 무섭냐고 했다.
 
 
유행가 가사에도 ‘그대 품에서 잠들었으면’이란 아늑한 노래가 있다. 남편도 집에서 죽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래서 평상시에 “당신 마지막 가는 길은 내 품에서 죽게 해줄 게”라며 선심 쓰는 농담을 하기도 하고, 끌어안고 제스처도 하며 두려운 죽음을 민방위 훈련하듯 연습하고 준비했다. 마지막 순간에 사랑하는 사람의 품에서 잠들 듯이 죽는 모습은 애절하고 아름다울 듯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못난 나는 혹시나, 행여나 하는 삶의 지푸라기에 욕심을 내고 잘 죽겠다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에 좋다는 온갖 음식과 약을 강제로 먹여 하루라도 더 살게 했다. 막상 죽음이 가까워져 오자 간성 혼수가 오고 경련을 일으키며 쓰러지길 자주하니 그 상황이 혼자 감당하기엔 무섭고 두려웠다.
 
남편은 작은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한 달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내다가 떠났다. 나의 욕심으로 못 이뤄진 그것이 아직도 많이 미안하다. 그러나 다시 그 상황이 온다고 해도 아직은 나이가 덜 들어서인가 무섭고 두렵다.
 
죽음을 생각하면 미소가 지어지는 이야기가 있다. 남편과 병동에 함께 있던 할아버지가 계셨다. 몇 번이나 죽음의 고비를 넘긴 어른이셨다. 부부는 고령이지만 늘 긍정 마인드를 갖고 사셔서 힘든 상황에도 농담과 미소를 잃지 않으셨다. 어느 날 의사는 할머니를 불러 ‘죽음을 준비하라’고 했다. 그 할머니 물음이 ‘큭’ 하고 웃음을 주었다.
 

남편은 작은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마지막 한 달을 호스피스 병동에서 보내다가 떠났다. 나의 욕심으로 못 이뤄진 그것이 아직도 많이 미안하다. [사진 pxhere]

 
“선생님요, 이번엔 확실히 가는 감요?”
며칠이 지나자 꼬부랑 할머니는 수시로 나에게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간다간다 카미 와 안 가는가 모르겠네.”
 
나는 할아버지가 들을까 봐 미안했다. 할머니도 허리가 기역자로 구부러져 살아있는 것이 어쩌면 더 힘들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며칠 뒤 아직 정신은 맑으신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애타게 불렀다.
 
“이보게, 집에 가서 죽게 해주면 안 되겠나? 집에 가서 죽고 싶네.”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흘겨보며 아이 달래듯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보소, 벌써 죽으러 집에 왔다 갔다 한기 몇 번째여. 집에 가도 죽어서 다시 또 나와야 하는디, 애들 성가시게 하지 말고 여기서 그냥 편하게 가요. 자꾸 보채지 말고.”
 
섭섭하고 서럽게 가셨을 어르신을 생각하면 가슴이 짠 해오지만, 먼 길 두려운 길을 달래 듯 보낸 할머니의 입담은 생각날 때마다 ‘풋’ 하고 웃음이 나고 짠해 가까이 함께 한 모든 이들과 함께 오랫동안 기억되었다.
 
백 년을 살다 보면 죽음도 이웃 마실가듯 가볍게 생각되는 것 같다. 할아버지가 떠나고 얼마 후 할머니도 주무시듯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삶의 무게가 가벼우면 떠날 때도 가벼울라나.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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