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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다] 독감백신 탓 아니라고? 장애인 된 남자의 6년 싸움

26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에서 만 62~69세 사이의 어르신들의 무료독감 예방접종 안내문과 독감 예방접종 주의시항을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

26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가톨릭대 인천성모병원에서 만 62~69세 사이의 어르신들의 무료독감 예방접종 안내문과 독감 예방접종 주의시항을 보여주고 있다. [뉴시스]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을 맞은 뒤 사망하는 사례가 늘고 있습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6일 0시 기준 독감백신 접종 후 사망자는 59명입니다. 이틀 만에 11명이 늘어난 건데요. 이상 반응 신고도 1200건이 넘었지만 질병청은 백신과의 인과성은 확인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예방접종 전문위원회 등 전문가들이 사인을 검토한 결과 접종과의 인과 관계가 매우 낮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합니다. 그런데 최근 법원은 예방접종 후 장애를 얻었지만 질병청으로부터 “관련성이 없다”는 통보를 받은 70대 남성에게 국가가 피해를 보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놨습니다. 법정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 걸까요.
 

판다-판결 다시보기

독감 접종 맞은 후 11일 뒤 응급실행

2014년 10월 7일 경기도의 한 보건소에서 인플루엔자 예방접종을 받은 A씨(74)는 엿새 뒤 설사 증상으로 내과를 찾았습니다. 과민성대장증후군이라고 진단한 의사는 “3일 전 과음 후 발생한 수양성 설사”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5일 뒤인 10월 18일 갑자기 A씨의 오른쪽 다리와 허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응급실에 실려 간 그는 ‘길랭-바레 증후군’ 판정을 받습니다. 급성 마비 증후군의 일종으로 주로 다리에서 시작해 몸통과 팔로 마비가 빠르게 진행되는 희귀 질환입니다.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외부 물질이 침입했을 때 감염체를 공격하는 대신 자신의 정상 조직을 공격하는 ‘자가 면역질환’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돼지 독감 예방 접종 주사, 감기를 일으키는 다양한 바이러스들이 길랭-바레 증후군을 일으키는 요인으로 지목되기도 합니다.  
 

2년 만에 나온 결정 “예방접종과 관련성 없다”

2015년 6월 장애 1급 판정을 받은 A씨는 그해 9월 질병관리본부에 예방접종 피해보상을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6개월이 지나 A씨에게 전달된 건 “예방접종과 증상 간의 관련성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기 위해 정책연구용역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 심의를 보류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4개월이 흐른 2017년 7월 예방접종 피해보상 전문위원회는 “예방접종과 A씨 증상 간의 근접성은 있다”면서도 “해당 신경병은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후 발생에 대한 보고가 없어 백신에 의한 가능성이 불명확하다”고 밝혔습니다. 예방접종과의 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현재 질병관리청이 백신 접종 후 사망한 이들에게 하는 이야기와 일맥상통합니다.    
 
A씨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이의 신청을 냈습니다. 하지만 2017년 12월 열린 피해보상 위원회는 역시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A씨가 응급실을 찾기 전 설사 증상으로 의원을 방문한 점에 주목한 건데요. 백신 때문이 아니라 길랭-바레 증후군의 주요 원인인 ‘위장관 감염’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고 결정합니다. 
 

정부 손 들어준 1심 “위장관 감염 가능성 높아”

27일 서울 시내 한 병원을 찾은 내원객들이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예방 접종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서울 시내 한 병원을 찾은 내원객들이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예방 접종을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A씨는 2018년 2월 법원을 찾았습니다. 재판부에 “질병관리본부가 예방접종 피해보상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예방접종 이전에는 마비 증상을 전혀 앓지 않았는데, 예방접종 후 불과 10여 일만에 증후군이 나타났으므로 자신의 병은 예방접종에 의해 발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로부터 또 1년 10개월이 흐른 지난해 12월 드디어 나온 1심 재판부의 결과, A씨는 패소했습니다.  
 
1심이 말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소송을 너무 늦게 걸었다’는 겁니다. 행정소송법에 따르면 행정기관이 내린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은 이를 알게 된 날로부터 90일 이내에 제기해야 합니다. A씨가 피해보상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된 건 2017년 7월 13일이고, 그가 소송을 제기한 날은 2018년 2월 26일이므로 소송 자체가 부적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A씨가 겪는 증상이 예방접종이 아닌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는 겁니다. 그 근거는 대한의사협회의 조사 결과에 있었습니다. 협회는 “길랭-바레 증후군과 인플루엔자 예방접종 및 감염과는 연관성이 떨어진다는 논문이 여럿 있다”며 “예방접종이 증후군을 유발할 가능성이 높지 않아 보인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반면 “설사와 복통은 위장관 감염의 대표적 증상이고, 위장관 감염은 길랭-바레 증후군의 대표적인 선행 질환”이라며 위장염이 원인일 가능성을 더 높게 봤습니다.
 

달라진 2심 “질병청, 피해보상 해야”

2심에서 결과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지난 22일 서울고법 행정3부(이상주 재판장)는 청으로 승격한 질병관리청에 A씨에 대한 피해보상 신청을 거부한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했습니다. 2심까지의 소송 총비용도 질병청이 부담하라고 결정했죠. A씨가 병원 신세를 진지 6년 만에 피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일단 2심 재판부는 A씨가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시작점을 2017년 7월이 아닌 12월로 봤습니다. 결론이 같았더라도 두 번의 심의가 이뤄졌고, 두 번째 처분을 기산점으로 본다면 2018년 2월의 소송 제기는 적법하다는 겁니다.  
 
결정적으로는 대학병원장인 신경과 B교수의 신체 감정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B교수는 대한의사협회와 달리 “위장관 감염을 원인으로 확정할 수 없다”는 소견을 제시했습니다. A씨가 길랭-바레 증후군을 앓게 된 건 예방접종과 위장관 감염 모두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 겁니다. 이에 따라 2심은 “예방접종과 증상 발생 사이에 시간적 밀접성이 있고, 인과 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며 “A씨의 청구는 이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예방접종과 부작용의 인과관계, 폭넓게 인정한 대법원

이번 서울고법의 판결은 2014년 대법원의 선고 취지에 따른 것입니다. 생후 7개월에 보건소에서 예방접종을 맞은 홍모(17)군은 다음 날 경련 등 장애증세를 보였고, 증상이 계속 악화해 장애 등급 1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질병관리본부는 “백신과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며 장애 보상금 지급을 거부했고, 홍군의 부모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국가보상을 받기 위한 인과관계 증명의 정도를 폭넓게 해석했습니다.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하기 위해서는 질병, 장애 또는 사망이 예방접종으로 인한 것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인과관계가 반드시 의학적‧과학적으로 명백히 증명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봤습니다. 예방접종과 장애 등의 발생 사이에 시간적 밀접성이 있고, 다른 원인으로 장애가 발생한 건 아니라는 정도의 증명만 있으면 사실상 피해구제를 받을 수 있다는 취지입니다.  
 
의료법 전문가는 “예방접종 이후 부작용이 발생했을 때 개인이 이를 입증하기는 어려운 만큼 구체적인 근거가 없더라도 국가가 피해를 보상해주는 것이 옳다는 판례”라며 “최근 독감 예방접종 후 이상 반응을 보인 이들도 질병청에 보상을 신청할 수 있고, 거부당하면 이처럼 행정소송을 고려해볼 수도 있다”고 조언했습니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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