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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심층기획 | ‘기업규제 3법’에 기업이 없다

“재벌 때려잡는다는 명분으로 금융 기생충 키우고 있다”

법인 개념 결여된 文 정부 기업관이 옵티머스·라임 사모펀드 사태 불러
기업 3법 도입과 노동법 개혁은 거래 불가능… 김종인은 경제민주화 본질 착각

문 정부 기업 정책에 노(No)라고 말하는 신장섭(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좋은 지배구조가 좋은 경영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좋은 경영성과를 내야 좋은 지배구조“라고 믿는다.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는 ’좋은 지배구조가 좋은 경영성과를 내는 게 아니라 좋은 경영성과를 내야 좋은 지배구조“라고 믿는다.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다론 아제몰루 MIT 경제학과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는 국가의 빈부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가 무엇인지에 관해 연구했다. 그들이 내린 결론은 경제제도였다. 그리고 이 경제제도는 절대적으로 정치제도에 영향 받았다. 부유한 국가는 포용적 경제제도, 빈곤한 국가는 착취적 경제제도를 취했다. 착취적 경제제도에서는 일부 개인이나 집단이 더 큰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인센티브를 끌어내지 못하니 혁신의 필연성이 희박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한국과 북한의 격차가 증명한다. 중국도 대약진운동과 문화혁명의 광풍 뒤 실용주의로 무장한 덩샤오핑이 집권하지 못했더라면, 지금 누리는 G2의 위상은 없었을 터다.
 
2020년 대한민국의 정치는 경제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 것일까. 문재인 정부는 기업 경영에도 ‘공정’의 가치를 입히려고 시도한다. 소위 ‘공정경제 3법’ 도입은 그 화룡점정이다. 이런 기조에 맞서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외치는 학자가 있다. 신장섭(58) 싱가포르국립대 교수는 ‘기업규제 3법’은 국가적 자해가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기업론 분야의 대가인 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9년부터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우중과의 대화] [경제 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 등을 펴낸 신 교수는 2020년 [기업이란 무엇인가]를 통해 기업의 존재론과 가치론을 설파했다. 10월 13일과 15일 두 차례에 걸쳐, 싱가포르에 체류 중인 신 교수와 화상과 이메일 인터뷰를 가졌다.
 
문재인 정부는 기업 3법(상법 일부 개정,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 금융그룹감독법 제정) 도입에 관해 10월 7일 “논의할 만큼 했다”고 선언했다. 정기국회 회기 안(12월 9일까지) 통과가 유력하다. 왜 이렇게 단호할까?
 
“국익이나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보다 정파적 이익이나 사익이 앞서기 때문이다. ‘공정’, ‘개혁’ 같은 겉으로 내세우는 구호는 무시하고, 누가 이 법안을 통해 이익을 보고 손해를 보는지만 따져보자. 그러면 왜 (이 정부가) 부작용을 무릅쓰고도 강행하려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규제에도 정신이 있어야”

9월 22일 박용만(가운데) 대한상의 회장이 기업 3법에 대한 반대 의사를 전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9월 22일 박용만(가운데) 대한상의 회장이 기업 3법에 대한 반대 의사를 전하기 위해 국회를 방문했다.

일반 국민 상당수는 기업 3법의 역효과를 정확히 파악 못하는 게 현실이다.
 
“상법의 기본 정신은 상거래 활동을 촉진하는 것이다. 복잡한 규제가 들어 있지 않다. 그런데 상법에 ‘공정’을 내세워 규제를 집어넣었다. 상법을 누더기로 만들려 하고 있다.”
 
문 정부의 J노믹스(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중 공정경제 이념에 충실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나?
 
“공정거래법이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져 상법과 충돌한다. 상법은 법인(法人)에 입각해 만들어져 있는데 공정거래법은 법인을 껍데기 취급한다. 그러니까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검찰에 고발한 것 중 검찰이 기소한 비율이 31%(2019년 기준)밖에 안 되는 일이 벌어진다. 과징금 물린 것도 법원에서 뒤집혀 연간 수천억원씩 기업에 돌려준다. 그렇지만 공정위가 기업 때리기를 하면서 반(反)기업정서는 더 강화된다. 그 이면에서 공정위 출신 전관예우는 훨씬 더 많아지고 있다.”
 
신 교수가 2020년 9월 펴낸 [기업이란 무엇인가]는 480쪽에 달하지만 ‘기업의 주인은 법인이다’라는 단 한 줄의 문장으로 축약할 수 있다. 기업의 주인은 대주주도, 소액주주도, 노동자도, 국가도 아닌 것이다. 주식회사를 만들면서 기업 관련 자산을 법인 소유로 귀속시켰기 때문이다. 법인은 기업이 장기 투자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준다. 자연인은 죽어 없어지지만, 법인은 불멸(不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법인이 만들어준 영속가능성을 실현하는 게 ‘기업 존재론’이라고 정의한다. 신 교수는 문 정부의 기업 3법을 ‘부차적 가치(공정)를 기업 본연의 존재 이유보다 우선에 뒀다’는 지점에서 비판한다.
 
기업 3법의 최대 쟁점은 상법 개정안에서 감사 선임 시 대주주는 아무리 지분이 많아도 3%밖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게 한 ‘3% 룰’이다.
 
“규제에는 정신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대주주는 힘세고 나쁘다. 그러니 약하고 착한 소수주주들을 착취하거나 무시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감사를 소수주주가 뽑게 만들어야 한다’는 선입견만 깔려 있다. 현실은 다르다. 소수주주 중에도 ‘나쁜 놈’들이 즐비하다. 지금 국내에서 라임, 옵티머스 등 사태로 시끄러운데, 다 소수주주들이다. 행동주의 헤지펀드도 기업에 압력 넣어 주가를 띄운 뒤 ‘먹튀’하는 세력이다. 소수 주주 중에도 ‘힘센 놈’들이 널려 있다. 블랙록·뱅가드·국민연금 등은 재벌보다 훨씬 힘이 센 초재벌 기관투자자들이다. 그렇다면 누가 착한지, 악한지 같은 근거 없는 도덕 기준을 적용해 상법을 바꿔선 안 된다. 주식회사제도 원칙에 따라 정상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3%룰은 헌법 위반(재산권 침해) 소지도 굉장히 높다.”
 
‘재벌이 극히 미약한 지분율로 기업을 제 소유물처럼 다루는 것에 비해 소수주주의 편에 서는 기업경영 방식이 더 정의롭지 않겠느냐’는 시각이 다수 국민의 정서인 듯하다.
 
“세계경제 실상을 너무 모른다. 미국에서는 1980년대 이후 소수주주들의 행동주의가 강화되면서 ‘약탈적 가치 착출(predatory value extraction)’이 벌어졌다. 높은 현금배당이나 자사주 매입을 요구하면서 기업이 벌어놓은 돈만 아니라, 은행에서 돈을 빌려서까지 주주에게 내줬다. 구조조정 명목으로 장기 투자는 줄이고, 근로자들을 잘라냈다. 이 과정에서 GE, GM, 보잉 등이 거덜 났다. ‘1% 대 99%’라는 양극화 구도가 만들어졌다. 소수주주의 힘을 더 강화해주는 건 결코 대안이 아니다. 미국은 기업을 약탈해간 금융자본이 그나마 대부분 국내기관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해외 금융자본이 많이 약탈해갈 것이다. 미국보다 훨씬 나쁜 상황이 만들어진다.”
 
국민적 인식이 전환될 필요가 있겠다.
 
“그래서 내놓은 개념이 ‘자유주의 법인실체론’이다. 주식회사를 만들었으면 재벌 오너(owner)라는 사람들이 오너가 아니다. 법인이 오너다. 그들의 정확한 명칭은 ‘대주주 경영자’다. 전문경영인과 마찬가지로 법인과 계약을 맺고 기업 영속을 실현하는 ‘경영수탁자’일 뿐이다. 따라서 주식회사 법에 맞게 지도력을 행사해야 한다. 과거에는 마치 ‘오너’처럼 행동하면서 비판의 빌미를 줬다. 그래서 이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거둔 성취가 많이 가려지기도 했다. 정부도 법인을 제대로 인정하고 기업의 공과를 가려줘야 한다. 법인 보유 지분을 인정하면 국내 재벌들의 내부지분율이 50%를 넘는다. 정상적 통제력이다. 그러나 정부는 법인 지분을 무시하고 자연인 지분만 계산해 재벌가가 ‘쥐꼬리만 한 지분’으로 ‘비정상적’으로 통제한다고 몰아간다. 재벌을 공격하기 위해 정부가 법인의 실체를 부정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내세워 ‘떡고물’ 챙기는 자들

10월 7일 손경식(가운데) 경총 회장이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경총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다. / 사진:뉴시스

10월 7일 손경식(가운데) 경총 회장이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경총 회장단 회의에 참석했다. / 사진:뉴시스

정치권의 경제민주화와 금융계의 주주 자본주의가 반(反)기업정서를 매개로 동맹을 맺은 모양새다.
 
“지금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는 많은 정치권 인사들이 사회주의적 성향을 보인다. 그런데 정작 마르크스를 별로 공부하지 않았다. 세상을 도식적인 ‘자본가 대 노동자’ 대결로만 보고 자본가를 약화시키면 좋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마르크스는 세상을 가장 나쁘게 만드는 세력을 금융가로 봤다. ‘기생충’이라 표현했고 ‘피를 빨아 먹어 (…) 생산력을 마비시킨다’고 했다. 그런데 재벌 때려잡는다는 명분으로 금융 기생충들을 키우고 우대해준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왜 그런다고 보나?
 
“경제와 나라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이 경제민주화를 계속 내세우는 것이 나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떡고물’도 많다. 캠프 출신 중에서 대기업 임원으로 영입된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검찰, 공정위, 국세청 등 경제권력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도 좋다. 공정위 고위 임원 출신이 상장사 37곳의 사외이사나 감사로 선임돼(2020년 9월 금융감독위원회 전자공시시스템) 있다. 로펌들도 떼돈을 벌고 있다. 옵티머스와 같은 금융 기생충에 붙어서 돈 빨아먹을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다.”
 
우리나라가 도입하려는 기업 3법의 선례가 해외에 있나?
 
“없다. 정말 전체주의적 개입이다. 주식회사의 투표권은 보유 주식만큼 주어진다. 대주주한테 투표권이 많은 것이고, 소수주주는 투표권이 적은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공정’이라는 무관한 가치를 들이대서 대주주가 투표권 많이 행사하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규제한다.”
 
‘민주적 의사결정’을 내세우는데, 기업경영과 민주주의가 연관성이 있다고 보나?
 
“(단호하게) 없다. 기업의 의사결정은 크게 두 가지 경로에서 이루어진다. 첫째는 기업 내부다. 기업 내부는 위계조직이다. CEO가 결정하면 아래 임직원이 따라야 한다. 물론 소통은 필요하지만 결정권에서는 위아래가 분명하다. 이 결정을 민주적으로 하라는 것은 기업을 파괴하는 짓이다. 프로축구 감독에게 선수선발권을 주지 않고 선수들끼리 투표해서 선발 멤버를 정하는 꼴이다. 둘째는 주주총회에서의 결정이다. 여기에서는 주식에 딸린 투표권 숫자에 따라 결정된다. ‘민주’를 내세우는 사람들은 정치투표에서 ‘1인 1표’가 있는 것처럼 기업도 그래야 한다는 듯 얘기한다. 그러나 주총은 ‘1주 1표’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독일에서 공부한 영향인지 경제민주화를 강조하고, 기업 3법에도 부분적으로 찬성하는 스탠스다.
 
“김 위원장이 독일경제에 대해 제대로 공부했는지 의심스럽다. 독일의 경제민주화는 20세기 초반 사회주의자들에 의해 시작됐다. 그렇지만 2차 대전 이후 서독의 경제 기적을 이끈 사상은 질서자유주의(Ordo Liberalism)다. 경제민주화가 아니다. ‘자유주의’에 방점이 있다. 기업은 자유롭게 활동하고, 정부는 질서만 잡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기업 3법은 대주주 투표권을 3%로 제한하는 등 국가주의 혹은 전체주의 경향이 강하다. 김 위원장은 정직하지도 않은 것 같다. 1987년 경제민주화가 헌법에 들어갔을 때의 개념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을 완화하자는 취지였다. 민간에 보다 자유를 주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경제민주화는 ‘재벌 때려잡자’로 변질됐다. 김 위원장은 마치 처음부터 한국의 경제민주화가 ‘재벌개혁’에 초점을 둔 듯 왜곡하는 것 같다. 지금 기업규제법 쓰나미는 ‘재벌 때려잡자’를 넘어 ‘경제 때려잡자’ 수준이다. 왜 야당 대표라는 사람이 여기에 동의하나?”
 

“마르크스도 통탄할 한국의 노동 시장”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오른쪽)와 장하준(가운데)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해 장기투자를 유도하라고 당부한다. / 사진:전경련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경제학과 교수 (오른쪽)와 장하준(가운데)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의 경영권을 보장해 장기투자를 유도하라고 당부한다. / 사진:전경련

한국 사회에서 양극화가 심화할수록 경제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호응이 커진 것 아니겠나?
 
“경제민주화론자들은 재벌 체제 때문에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내세운다. 그렇지만 1990년대 재벌이 세계적 성공을 거뒀을 때에는 오히려 분배가 더 좋았다. 투자를 계속 늘려 고용이 늘어나고, 임금도 증가하는 선순환이 이어진 덕분이다. 한국의 분배는 어떤 지표로 보든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서 ‘구조조정’ 한 이후 나빠졌다. ‘주주 자본주의’에 입각해서 구조조정을 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가 생긴 것도 이때부터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었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은 정리해고에 반대했지만 정부와 IMF가 밀어붙였다. 노조 지도자들까지 동의했다. 정치권이 잘못한 것을 재벌에게 떠넘기고 있다.”
 
진보 성향 정부가 들어서도 불평등이 해소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현재 한국에서 ‘진보’라고 하는 세력을 ‘퇴보’라고 부른다. 국민의 삶이 좋아져야 진보라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진보를 칭하는 정부에서 경제성장도 떨어지고 분배도 더 나빠졌다. 이념에 사로잡혀 경제운용의 기본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경제가 나빠지면 가난한 사람들이 더 타격을 받는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기업 3법’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노동법 개혁을 내세웠다.
 
“기업 3법은 노동법과 ‘거래’할 대상이 아니다. 국가와 경제를 나쁘게 만들 것이 뻔하니 무조건 막아야 하는 것이다. 노동법은 별도로 따져야 한다. 마르크스가 지금 한국 노동 시장을 보면 통탄할 것이다. 지금 한국 노동 시장은 굉장히 분절돼 있다. 일단 노조원들이 전체 근로자에서 극소수이고, 일부는 ‘귀족’이 돼 있다.”
 
문재인 대통령 성향상, 노동법 개혁을 기대하기 어렵지 않겠나?
 
“기대하지 않는다. 경제운영이나 노동시장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이념이나 정파적 이익으로만 밀어붙이는 것 같다.”
 
'기업이란 무엇인가'에서 기업을 ‘장기번영공동체’라고 썼다.
 
“기업에서 일하는 경영자나 근로자들은 모두 공동체 구성원이다. 주주는 모두 다 공동체 구성원이라고 하기 어렵다. 대주주는 당연히 구성원이다. 하지만 소수주주 중에서 단기 투기하는 사람들을 구성원이라고 할 수 없다. 관광객이나 단기체류자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업 3법의 문제는 기업공동체의 구성원이 아닌 사람들에게 기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한을 너무 많이 주는 데 있다. 공동체에 오래 있으면서 책임도 지고 성과도 나누는 사람들에게 권한이 많아야 한다.”
 
현재 한국 기업들에게는 차등의결권도 없고, 증여·상속세(대주주 상속세율 60%)도 크게 높다.
 
“많은 사람이 이 사안을 가족에게 승계하는 문제로만 착각한다. ‘왜 금수저들 좋은 일 시켜줘?’라는 질문이 바로 나온다. 그러나 장기번영공동체라는 관점에서, 장기투자를 북돋는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많은 사람이 ‘전문경영체제’로 넘어가면 ‘통제구조’ 문제가 해결되는 듯 얘기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에서 전문경영체제가 등장하던 19세기 말, 20세기 초에는 대주주들이 물러나면서 그 주식을 일반주주들이 샀다. 당시는 기관투자자나 사모펀드, 헤지펀드가 거의 없던 시절이다. 일반주주들은 주식에 딸린 기업 통제력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배당, 주가 차익 등 금전적 권리에만 관심 있었다. 따라서 기업통제력은 창업 대주주와 함께 일하며 창업정신을 공유했던 전문경영인들에게 넘어갔다. 전문경영인들이 대주주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장기투자를 하면서 미국 대기업이 번성했다. 그런데 지금은 강력한 기관투자자, 헤지펀드, 사모펀드가 판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대주주 지분을 해제하면 사모펀드, 헤지펀드 등이 사서 구조조정에 나선 뒤 다른 회사에 팔려고 할 것이다. 우리 기업이 해외 자본에 약탈되는 결과가 나오게 된다. 이게 과연 누구에게 좋은 일인가?”
 

“이재용·정의선, 이사회 중심으로 경영하는데도…”

 
한국 재벌의 원죄(原罪)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예전에는 재벌 경영자들이 법인에 대한 개념도 약했고, 당시 정부도 법 집행을 제대로 안 했다. 이것이 반(反)기업정서의 빌미를 줬다. 그렇지만 지금은 대주주라고 전횡을 휘두르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세상이 됐다. 이미 많은 재벌 경영인들이 ‘오너’처럼 행동하다가 배임이나 횡령 등으로 기소되거나 감방도 다녀왔다. 3세 체제로 넘어가면서 법인 원칙에 맞는 이사회 중심 경영이 자리 잡는 것 같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대부분 이사회에 참석하고 이사회를 통해 지도력을 행사하려 한다. 그런데 지금 상법 개정안의 대주주 3% 규제는 그것조차 하지 말라는 것 같다.”
 
민주당 일각에선 ‘삼성이 잘하는 것이지, 이재용 부회장이 잘하는 거냐?’라는 목소리도 들린다.
 
“삼성도 잘했고, 삼성의 리더들도 잘했다. 이병철, 이건희 회장의 기여가 하나도 없다고 말할 수 있겠나? 삼성 내부에서 지도력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느 누구도 바깥에서 기업 내부 사정을 판단하기 어렵다. 회사의 경영 판단은 그 회사의 자율이다.”
 
최태원 SK 회장의 사회적 책임 경영은 어떻게 평가하나?
 
“기업은 주주가치론, 주주가치론과 사회적 가치의 적절한 조합, 사회적 가치의 폭넓은 스펙트럼에서 어떤 목적을 추구할지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갖고 있다. 한 가지 가치만 추구해야 한다고 외부에서 규정할 수 없다. SK는 최종현 선대회장 때부터 장학사업을 적극적으로 하는 등 사회적 가치 추구에 강했다. 최태원 회장이 이를 보다 체계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 3법 이전에 정부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라는 무기도 손에 쥐고 있다.
 
“금융권(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은 자기들 힘이 세지니 좋다고 생각한다. 정부도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흔들 수 있으니 좋다. 이해관계가 일치하니 연대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국민의 노후 자산이다. 정파적 판단을 배제하고 국민 자산을 잘 굴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또 지금 세대가 다음 세대를 착취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게 세대 간 평등을 살피면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정부는 두 가지 원칙을 모두 망가뜨리고 있다. 왜 국민연금 운영에 ‘공정’이라는 정치적 가치를 집어넣고 대기업을 흔드는가? 실상은 연금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유럽 일부 기업에서는 노동자들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나?
 
“그런 회사는 경영 참여 구조가 이원화돼 있다. 감독이사회와 집행이사회가 그것이다. 노동자나 소수주주는 집행이사회에 안 들어간다. 이사회에서는 회사의 중요 사항을 논의하기 때문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다. 집행이사회에서 결정한 사안에 대해 감독이사회에서 따져볼 때나 노동자·소수주주가 참여하는 것이다.”
 
장하성(문재인 정부 초대 정책실장, 현 주중대사)이 벌였던 소액 주주 운동은 어떻게 생각하나?
 
“장하성씨는 법인에 대한 개념이 없다. 법인을 ‘가짜’로 취급한다. 그래서 ‘소액주주가 기업의 주인’이라는 말을 한다.”
 
이러다 한국 경제가 일본처럼 활력을 잃는 것 아닌가?
 
“일본보다 심각하다. 가계부채 문제에다가 생산가능인구 감소가 일본보다 빠르다. 그렇다면 더 강력한 성장 정책을 펼쳐야 하는데 그러지 않는다. 4% 이상 성장해야 하는데 청사진이 있는가? 경제성장은 새로운 기업이 나오거나 기존 기업이 더 커지면서 이루어진다. 기업 3법은 창업과 성장을 모두 가로막고 있다.”
 
 
- 글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 녹취 정리 김재현 월간중앙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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