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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평화상 뒤엔 한국인 있다? '두번째 군 생활' 그의 사연

"40도 웃도는 날씨에다 생전 처음 보는 다른 나라 사람들까지…. 아침 7시 정시에 차량 타고 같이 움직이고, 식사 같이하고, 비좁은 사무실에서 같이 일하다가 퇴근도 같은 차량으로 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하는 군 생활이었죠. 이등병 시절이 고된 것처럼 처음 6개월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매일 퇴근하면 채용 사이트 들어가서 새로운 일자리 찾는 게 일과였죠."

 
‘두 번째 군 생활’. 2018년 8월 나이지리아 북동부 소도시 마이두구리로 떠난 최동욱(40)씨는 막막했다. 같이 일하는 생면부지 동료들은 군 출신이 많았다. 이슬람 무장단체 보코하람이 있는 지역인만큼 총격전, 폭발도 다반사였다. 그럴때면 안전지대로 긴급하게 대피해야 했다. 

'유엔 항공사' UNHAS의 유일한 한국인
'테러 위험' 나이지리아 근무 최동욱씨

 
 
그로부터 2년여, 그는 여전히 나이지리아를 지키고 있다. 이젠 웃으며 당시를 떠올릴 수 있다고 했다. ‘남’이었던 동료들은 어느덧 ‘가족’이 됐다. 일은 많지만, 그만큼 익숙해지고 보람도 크다.
# 최동욱씨의 자세한 이야기는 영상으로 만나보세요. 
'유엔 항공사' 격인 UNHAS에서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근무 중인 최동욱씨가 나이지리아 근무 초반 직접 항공기 운전에 나선 모습. [사진 최동욱씨]

'유엔 항공사' 격인 UNHAS에서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근무 중인 최동욱씨가 나이지리아 근무 초반 직접 항공기 운전에 나선 모습. [사진 최동욱씨]

최씨가 소속된 기관은 UNHAS(UN Humanitarian Air Service·유엔 인도적 지원 항공서비스). 전 세계 18개국에서 운영되는 유엔 전용 항공사 격으로, 세계식량계획(WFP) 산하에 있다. 여기서 '항공안전담당관'으로 일하는 최씨는 최초이자 유일한 한국인이다.
 
UNHAS는 하늘길을 오가며 꼭 필요한 곳에 식량과 방역물품, 인도주의 단체 활동가 등을 실어나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민간 항공사들이 '개점휴업'인 시기, 유엔 항공사는 더 바삐 움직여야 한다. "코로나로 업무가 예전보다 확실히 늘었다. 항공기도 쉼 없이 운항한다"는 게 최씨 설명이다.
'유엔 항공사' 격인 UNHAS에서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근무 중인 최동욱씨가 공항에서 걸어가는 모습. [사진 최동욱씨]

'유엔 항공사' 격인 UNHAS에서 한국인으로선 유일하게 근무 중인 최동욱씨가 공항에서 걸어가는 모습. [사진 최동욱씨]

최근엔 보람찬 일이 늘었다. WFP는 9일(현지시각)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에 선정됐다.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신음하는 상황에서 '기아 해소'와 '식량 공급'이라는 본연의 업무를 놓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아프리카 등의 차질 없는 식량 운송 뒤엔 '숨은 조력자' UNHAS가 있다. 우리와 관련 없어 보이는 노벨상 한켠에 최동욱씨 같은 한국인의 노력이 담긴 것이다. 중앙일보는 한국에 잠시 들어온 그와 15일 만났다. 최씨는 짧은 휴가를 보내고 25일 다시 아프리카로 돌아갔다.
지난 10일 예멘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인 타에즈에서 한 남성이 WFP로부터 지원받은 식량을 들고 가는 모습. WFP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기아 해소와 식량 공급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AFP=연합뉴스

지난 10일 예멘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인 타에즈에서 한 남성이 WFP로부터 지원받은 식량을 들고 가는 모습. WFP는 코로나19 상황에서 기아 해소와 식량 공급에 기여한 공로로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AFP=연합뉴스

최씨는 공공기관에서 일하던 평범한 항공 연구원이었다. 하지만 2018년 초 이름도 몰랐던 UNHAS 채용 공고를 보고 덜컥 지원했다. 당시 8살이던 딸이 쉽지 않은 결정에 힘이 됐다. 그는 "딸 아이가 평소 남을 돕는 일과 국제 원조, 국제 개발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항상 ‘나중에 크면 그런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 아빠도 나중에 그런 데서 일해보면 좋겠다’ 이야기를 들어서 지원하게 됐다"며 웃었다. 가족들은 '험지'로 떠나는 최씨를 100% 지지했고, 따로 떨어져 있어도 늘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UNHAS 합격 후 최씨는 당연히 조직 내 한국인이 있을 줄 알았다. "막연히 '먼저 들어간 선배가 있을 테니 그분에게 도움받으면 되겠다' 생각하고 첫 근무지 나이지리아에 도착하자마자 한국인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도 없었고, 지금까지도 없다"고 했다.
 
현재 그가 하는 일은 항공 안전 담당이다. 나이지리아에서 운항하는 모든 유엔 항공기의 안전을 책임진다. 조종사 자격증이 있어 근무 초반엔 직접 운항에 나서기도 했다. 안전 담당자도 매시간 긴장을 늦출 수는 없다. 활주로가 없거나 열악한 곳이 많아 8, 10인승 항공기나 헬리콥터를 띄우는 경우가 다반사다. 

무장 단체 보코하람의 총격을 받아 구멍 뚫린 UNHAS 항공기 모습. 위험 지역에서 운항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사진 최동욱씨]

무장 단체 보코하람의 총격을 받아 구멍 뚫린 UNHAS 항공기 모습. 위험 지역에서 운항하는 경우가 많아 이런 상황이 종종 발생한다. [사진 최동욱씨]

나이지리아는 무장단체 보코하람의 근거지다. 치안이 불안하다 보니 테러·납치를 피하려 육로 운송보단 UNHAS 항공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아찔한 일이 종종 생긴다. 그는 "7월 나이지리아와 니제르 국경에 헬리콥터 한 대가 착륙하던 중 보코하람에 피격당했다. 다행히 일부만 파손돼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고 했다. 최씨가 보여준 기체 사진엔 총격 흔적이 선명했다.
 
힘든 상황에서도 생명의 꽃은 다시 피어난다. 난민 캠프 등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UNHAS 비행기가 뜨곤 한다. 지난해 11월엔 국경없는의사회(MSF) 연락을 받고 생후 4일, 7일 된 아기들을 긴급 이송했다. 최씨는 당시 아이 한명을 들것에 들고 앰뷸런스로 직접 옮겼다. 병원 수술을 마친지 2~3시간쯤, MSF 측으로부터 수술을 잘 마쳐 아이들이 살았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동료들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그날 날짜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UNHAS는 식량 보급 등 일반적인 업무 외에도 환자 이송 같은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항공기를 띄운다. [사진 최동욱씨]

UNHAS는 식량 보급 등 일반적인 업무 외에도 환자 이송 같은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항공기를 띄운다. [사진 최동욱씨]

한국인 근무자는 단 한 명이지만, 한국 정부의 존재감은 크다. 올해 외교부에서 3년간 500만 달러(약 56억원)를 UNHAS에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팀 동료들이 "땡큐 초이, 땡큐 코리아"라고 인사했다고 한다. 그래도 최씨는 선배로서 한국 후배 '모집'을 잊지 않는다.
 

"UNHAS엔 전 세계 항공 전문가들이 굉장히 많이 모여있어요. 하지만 한국인이 들어오면 조금만 일 해도 다들 '굉장히 열심히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만 신경 쓰면 조직 내에서 인정받고 칭찬받으면서 일할 수 있죠. 기회가 되면 채용 공고 보고 언제든 지원해줬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개인적 목표는 뭘까. "체력이 허락할 때까지는 계속 근무하고 싶다"고 미소를 지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할 일이 남았다고 한다. "UNHAS 운항 국가 중 가장 바쁘고 힘든 지역 1위가 남수단입니다. 힘들고 어렵겠지만, 남수단에 가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습니다."
 
정종훈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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