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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진과 붙어도 안밀렸다" 함께 떠난 60년지기 이건희·홍사덕

“고등학생 이건희 군은 엉뚱하고 싱거운 친구였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997년 쓴 책『이건희 에세이,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 실린 ‘내가 만나 본 이건희 회장, 애벌레 시절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글을 쓴 이는 지난 6월 세상을 떠난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이다.
 
 
지난 6월 18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의 빈소. 영정사진 양옆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조화가 놓였다. 홍 전 부의장과 이 회장은 고교 동기동창이다. 과거 대학 입시를 앞두고 서울에 왔지만, 머물 곳이 없던 홍 전 부의장의 사정을 알고 이 회장이 지낼 방을 구해주기도 할만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지난 6월 18일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의 빈소. 영정사진 양옆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조화가 놓였다. 홍 전 부의장과 이 회장은 고교 동기동창이다. 과거 대학 입시를 앞두고 서울에 왔지만, 머물 곳이 없던 홍 전 부의장의 사정을 알고 이 회장이 지낼 방을 구해주기도 할만큼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연합뉴스]

홍 전 부의장은 이 회장과 60년 동안 인연을 이어온 친구였다. 홍 전 부의장 장례식 당시 영정사진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는 이 회장 이름이 적힌 조화가 놓였다. 꽃으로나마 친구의 가는 길을 배웅했던 이 회장이지만, 그 역시 불과 4개월 뒤인 지난 25일 세상을 떠났다. 정계와 재계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60년 지기가 같은 해 함께 삶을 끝마친 것이다.
 

‘힘자랑’ 하며 어울린 고교 시절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된 건 서울 사대부고 시절이다. 이 회장 책에 실린 홍 전 부의장의 글에는 두 사람의 학창시절 일화가 소개돼 있다.
 
“방과 후 그가(이 회장) 자기 집에 놀러 가자고 했다. 앞장서 가던 그가 배고프다면서 끌고 간 곳은 군용 천막 안의 즉석 도넛 가게. 시골 촌놈인 내 눈에도 비위생적인 곳이지만 그는 털썩 주저앉아 잘도 먹어 치웠다. 그의 아버지 함자는 물론, 얼마나 엄청난 부자인지 전혀 알지 못했던 나는 속으로 ‘녀석, 가정형편이 우리 집 수준밖에 안 되는 모양’이라고 단정했다.”
 
이병철 삼성창업주(왼쪽)와 함께 사진을 찍은 유년 시절의 이건희 회장(오른쪽). [중앙포토]

이병철 삼성창업주(왼쪽)와 함께 사진을 찍은 유년 시절의 이건희 회장(오른쪽). [중앙포토]

두 사람은 종종 ‘힘자랑’을 하며 몸을 부딪칠 만큼 친밀한 사이였다고 한다. 이 회장은 레슬링을 했고, 홍 전 부의장은 유도를 했다. 홍 전 부의장은 생전 이 회장의 승부사 기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를 중앙일보에 소개하기도 했다. 고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싸움 좀 한다는, 요즘 말로 하면 ‘일진’과 이 회장이 싸움을 벌인 사건이다.
 
홍 전 부의장은 “건희는 말도 잘 안 하고 정말 떡두꺼비 같았는데, 알고 보니 건희가 먼저 붙자고 한 싸움이었다”며 “내가 양쪽 가방을 들고 심판을 봤다. 근데 막상 붙으니까 건희가 힘이 좋았다. 말수는 적었지만, 승부를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않는 ‘싸움닭’ 기질을 갖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고비 때 서로 조언을 주고받는 사이기도 했다. 홍 전 부의장이 중앙일보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 회장의 조언 덕분이었다. 홍 전 부의장 회고에 따르면 이 회장은 고교 시절부터 “나는 사람에 대한 공부를 가장 많이 한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실로 괴이한 두뇌의 소유자"

사회와 산업을 보는 이 회장의 시각에 대해서도 홍 전 부의장은 “남달랐다”고 평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일본에 관해 나눈 대화를 한 예로 들기도 했다. 홍 전 부의장에 따르면, 이 회장은 느닷없이 일본 소학교 교과서 몇 권을 건네면서 “일본어를 배워놔라. 니 정도면 두어 달만 해도 웬만큼 할끼다”고 말했다고 한다. 반일감정이 팽배해있던 시절이라 홍 전 부의장이 ‘그걸 뭐하러 배우노?’ 하고 물었더니, 이 회장은 “일본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봐야 그 속에서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찾게 된다”고 답했다.
 
지난 2000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의 모습. YS와 DJ,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등 거물 정치인들이 고루 중용했던 홍 전 부의장은 생전에 정치권의 '풍운아'로 불렸다. [중앙포토]

지난 2000년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하던 당시 홍사덕 전 국회부의장의 모습. YS와 DJ,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등 거물 정치인들이 고루 중용했던 홍 전 부의장은 생전에 정치권의 '풍운아'로 불렸다. [중앙포토]

 
 
홍 전 부의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전한 일화도 유명하다. 이 회장이 와세다대 재학 중 귀국했을 당시 두 사람이 제2한강교(양화대교)를 지나며 나눈 대화다.
 
홍 전 부의장=“봐라, 이게 우리나라 기술로 만든 다리다.”
이 회장=“이눔아. 생각 좀 하면서 세상을 봐라. 한강은 장차 통일되면 화물선이 다닐 강이다. 다리 한복판 교각은 좀 길게 잡았어야 할 것 아이가?”
 
홍 전 부의장은 이 일을 떠올리며 이 회장을 “실로 괴이한 두뇌의 소유자”로 평하기도 했다.
 
윤정민 기자 yunj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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